“4.3,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

3일 제주4.3평화공원서 4.3 70주년 추념식 봉행

2018-04-03     김태홍 기자

3일 화창한 날씨에 4.3당시 희생된 가족들의 넋을 위로하고 영면을 기원하기 위해 많은 유족들이 제주 4.3평화공원을 찾았다.

행사에 앞서 유족들은 위령제단 뒤쪽의 위패봉안소를 찾아 제를 지내거나 4.3당시 희생된 가족들의 이름을 찾아 어루만지며 눈물을 짓기도 했다.

제주 4.3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행정안전부(장관 김부겸) 주최, 제주특별자치도 주관으로 3일 제주4․3평화공원 일원에서 4.3 생존희생자, 유족 등 1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됐다.

이번 추념식은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를 주제로 오전 9시 종교의례 및 제주도립제주합창단과 제주도립서귀포합단의 ‘빛이 되소서’ 등의 합창, 제주도립무용단의 진혼무 공연 등의 식전행사로 시작됐다.

추념식에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각 정당 지도부를 비롯해 국회의원 70여명 등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추념식은 △헌화·분향 △추모글 낭독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고충홍 제주도의회 의장 인사말 △추념사 △유족 추모편지 낭송 △4·3평화합창단의 '잠들지 않는 남도' 합창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추념식 인사의 말씀에서 “70년 전 이 땅 제주에 불어 닥쳤던 4.3의 비극은 너무도 많은 것을 가져가 버렸다”며 “사상과 이념의 굴레가 씌워진 채 이유 없이 도민 30만명중 3만명이 국가 권력에 의해 처참하게 학살되었고, 집과 마을이 불에 타고 공동체가 완전히 파괴 됐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국민을 지켜주어야 할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인권을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이곳 제주도 대한민국이며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대선 당시 각 당의 대선 후보자 분들도 한결 같이 특별법 개정을 포함한 4.3해결을 약속했다”며 “그래서 우리 유족들과 도민들은 오늘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4.3의 미결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개정이 반드시 전제 되어야 하고 특별법 개정 없이는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절박하다”며 “우리에게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국가의 입장이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 답을 찾아 줄 것”을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됐다”며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말 못할 세월동안 제주도민들의 마음속에서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4.3을 역사의 자리에 바로 세우기 위한 눈물어린 노력도 끊이지 않았다.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다.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한다”며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자료로 대체한 제 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 인사말씀에서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라며 “4·3은 분단과 건국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당한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라고 말했다.

원 지사는 “4·3은 오랜 기간 침묵 속에 불명예와 불이익을 겪어오다 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헌신으로 진실과 명예를 회복해가는 민주화의 역사이기도 한다”며 “또한, 4·3은 위대한 제주도민이 화해와 상생으로 과거사의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와 인권의 미래 가치를 키워나가는 현재진행중인 역사”라고 말했다.

원 지사는 “4·3의 역사를 이어 받아 앞으로 국민과 함께 써 나가야 할 과제를 말씀드리고자 한다”며 “국회는 4·3특별법 개정안을 조속히 심사·통과시켜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4·3희생자 추념일의 지방공휴일 지정을 수용해 줄 것을 촉구한다”며 “제주도의회의 만장일치 의결을 거친 지방공휴일 지정을 정부는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 지사는 “4·3희생자와 유족을 위한 공간인 ‘4·3유족복지센터’와 고령자인 희생자와 유족을 위한 ‘의료요양시설’ 건립, 4·3유족들의 자활·자립을 위한 ‘4·3유족공제조합(가칭)’ 설립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원 지사는 “정부는 국립 세계평화인권센터 설립과 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적극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고충홍 제주도의장도 자료로 대체한 추도사에서 “우리 도의회가 의원입법으로 제정한 조례에 의해 지방공휴일로 지정된 첫 추념일이기도 하다”며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의 역사로 풀어내려고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는 후손들의 정성을 노자삼아 억울함을 푸시고 영면”하기를 기원했다.

고 의장은 “올해 추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참석해 주셔서 그 의미가 더욱 크고 소중하다”며 “2006년 고 노무현 대통령님이 참석하셔서 ‘국가원수로서 공권력의 과잉진압에 대해 4‧3희생자와 도민들에 공식 사과’하신 후 무려 12년 만의 일”이라고 말했다.

고 의장은 “우리 현대사에서 6·25 한국전쟁을 제외하고는 최대 인명피해를 기록한 제주4·3, 살아남은 사람들은 4·3이라는 말조차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숨죽여 살아왔던 한 많은 세월들이 돌고 돌아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며 “지나온 시대가 아팠던 만큼 우리의 미래는 더 더욱 소중하다”고 말했다.

고 의장은 “우리 도의회는 공식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4·3을 거론하고 4·3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왔듯이, 앞으로도 4·3 완전해결에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4.3평화공원에만 오면 왜 그리 많은 까마귀들이 하늘을 날며 울음을 터트리는지 매번 뒤를 돌아보게 하는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