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금산공원..납읍리 포제단

옛날에도 풍류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2019-05-13     고현준

납읍리 포제단
 

제주도무형문화재 제6호(1986년 4월 10일 지정)
위치 ; 애월읍 납읍리 1457. 금산공원내(납읍리는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서 중산간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2.5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보유단체 : 납읍리마을제 보존회
시대 ; 조선∼현대

유형 ; 민속신앙(마을제, 포제)

 

 


애월읍 납읍리 납읍초등학교 바로 남쪽에 있는 조그만 동산을 금산공원이라 부른다. 이 곳은 북제주군의 서부 지역에서 평지에 남아 있는 유일한 상록수림으로, 학술연구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주로 후박나무·생달나무·종가시나무 등이 상층목을 이루고, 하층에는 자금우·마삭줄 등이 全面을 덮고 있으며, 송악이 상층목의 樹冠을 감아 올라가고 있다. 수종의 구성은 비교적 단순하나 전형적인 난대림相을 이루고 있다.(제주의 문화재 42쪽)


이 고장의 원로들의 말에 의하면, 납읍 마을은 600년전에 설촌됐고, 당시 이 자리는 돌산이었으며 풍수에 따르면 화재를 당할 형국이라 하여, 이를 방지하고자 이 곳에 나무를 심고 포제단을 설치하며 벌채나 화입 및 입산을 금하도록 했는데 이 때문에 이곳의 지명이 '禁山'으로 오랫동안 전해져 왔다.(제민일보 95.2.9.)


이 마을은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많은 인재를 배출한 바 있는 전통적인 유림촌이다. 따라서 이 마을의 모든 민간신앙 의례는 유교식 색채가 농후한 것이 많이 눈에 띄며 아울러 포제도 예전 그대로 유교적 제법으로 유지·보존되고 있다.


각종 난대림이 우거져 있는 금산공원 가운데에 포제단(脯祭壇)이 설치되어 있다. 다른 마을에도 포제단이 남아 있는 곳이 더러 있으나 이 곳이 가장 크고 깨끗이 보존되고 있다.


포제는 이사제(里社祭)라고도 부르는데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마을을 지키는 신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보통 음력 정월초에 날을 정하여 제를 지내는데, 제일이 정해지면 마을의 입구에 금줄을 치고 며칠 전부터 제관들이 한 곳에 모여 지내며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한다.


①제일 ; 春祭와 秋祭로 연 2회 춘제는 정월 초정일, 추제는 칠월 초정일에 치르다가 30여년 전 마을 회의의 결의로 추제는 폐지되었다. 정월 초정일 마을이 부정하여 제를 치르지 못하면 그 다음 중정일 또는 해일에 치른다.


② 祭神 ; 西神, 土神, 포신 세 신위를 모신다. 서신은 홍역신, 토신은 촌락 수호신, 포신은 객신으로 人物災害神(인물재해신)이다.


③ 제관 ; 제관은 12제관이 있으니. 곧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집례, 대축, 찬자, 알자, 봉로, 봉향, 전작, 사준, 봉작, 전사관이 그것이다.


제관 각각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초헌관(初憲官. 제관 중 으뜸가는 제관이며 처음 폐백과 잔을 신위에 올린다) 아헌관(亞憲官. 둘째 잔을 드린다.), 종헌관(終憲官. 셋째 잔을 드린다.), 집례(執禮, 제의 순서가 적힌 홀기를 보며 낭독하며 포제 거행을 총지휘함. 오늘날의 사회자. 전사관과 함께 제물을 진설하는 책임을 맡음.), 대축(大祝, 폐백과 축문을 초헌관에게 드리고 축문을 읽음. 나중에 분폐(焚幣) 분축(焚祝)을 함), 알자(謁者, 제관의 행동을 안내함), 찬자(贊者, 집례를 도움, 집례가 '국궁배 - '한 후에 '흥(興)- '하고 구령함), 전사관(典祀官, 제물 준비 전반을 관리하고 제물을 진설하는 책임을 맡음), 봉로(奉爐, 향로를 헌관에게 드림. 집사의 역할을 함), 봉향(奉香, 향목을 준비했다가 헌관에게 드림. 집사의 역할을 함), 봉작(奉爵. 헌관에게 술잔을 드림) 전작(奠爵, 헌관으로부터 술잔을 받아 신위께 올림) 사준(司樽, 술단지에서 술을 떠서 술잔에 채움) 도여차(都與次, 제관 중 유고가 생겼을 때 대신 맡음), 차지(次知, 궂은 일을 제관 대신 함) 등으로 한다. 전사관은 제례를 집행하는 데 역할을 맡은 제관이 아니라 제물관리를 담당한다.


헌관은 학식 있고 덕망 있는 고령자를 향회에서 선출하는데 24∼25년 전부터 이장이 초헌관을 맡게 되었다. 집례는 예절과 제법을 잘 아는 자가 선출되며, 대축은 축을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자가 선정된다.


④ 입제와 금기 ; 행제할 때 쓸 靑衿(청금)과 儒巾(유건)을 준비해야 한다. 제관들은 3일 전에 제청에 입제하여 합숙하게 된다. 입제 전후 몸정성을 하고 불상사가 없도록 한다. 시체를 보지 말며, 개고기 따위를 먹지 말아야 한다. 또한 비늘 없는 고기로 만든 음식은 삼간다.


⑤ 행제(行祭) ; 집례가 부르는 홀기에 따라 제의를 집행한다. 홀기는 향교 석전제 홀기와 대동소이한다. 홀기에 따른 제의의 순서는 奠幣禮(전폐례) → 初獻禮(초헌례) → 讀祝(독축) → 亞獻禮(아헌례) → 終獻禮(종헌례) → 철변두 → 望燎位(망료위)의 순으로 다른 마을과 같은데, 신위가 3위이므로 존폐례 이하 각례를 각 헌관이 토신, 포신, 서신 순으로 행하여 원위치로 돌아온 뒤 4배를 하는 것이 조금 다르다.


⑥ 음복 ; 제가 끝나면 마을의 사환을 시켜 희생으로 썼던 돼지를 잡아 제관과 참가자들이 나누어 먹는다. 이를 '각반분식'이라 한다. 이때 마을제에 대한 평가를 하고 마을의 여러 문제를 논의한다.


제단은 세 개 마련되어 있는데 정면(북쪽)은 서신단(西神壇, 홍역신)과 토신단(土神壇, 마을수호신)이며 오른쪽이 포신단( 神壇,  神은 客神으로 人物災害之神이라 함)이다. 상석(床石)은 모두 현무암을 다듬어서 만들었으며, 상석 뒤에 비석 형태로 자그마한 돌을 세워 지방 붙이는 자리로 쓰고 있다. 상석 주위에는 쇠말뚝을 박고 쇠사슬을 설치하여 제상을 보호하고 있다. 서신단 왼쪽에 망료위가 있다. 행제는 토신제→포신제→서신제 순으로 한다. (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Ⅱ 52∼53쪽,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 게시판)


공원은 숲이 울창하고 경치가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데 옛날에도 풍류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입구를 곧 들어서서 왼쪽 동산에 올라 보면 대(臺)를 만들어 놨는데 거기에는 〔仁庠亭〕이라고 새긴 비석과 같은 돌이 반쯤 부서진 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