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무장대와 토벌대에 많은 희생..종달리 동중동마을성담

사태후 밭담, 집담, 산담 등으로 환원..지미봉과 마을 사이에 높이 2m, 길이 30m 정도 남아 .

2019-08-27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종달리 동중동마을성담

위치 ; 종달리 995번지 일대
유형 ; 방어유적(성)
시대 ; 대한민국

 


종달리는 무장대와 토벌대 양쪽으로부터 희생을 치른 마을이다. 주민 100여명이 희생되었다.

토벌이 강화되던 1948년 가을부터 종달리 주민들은 마을 어귀에 소년들을 '빗게'로 세우고 토벌대의 마을 진입을 경계했다.


종달리의 축성은 다른 마을보다 비교적 일찍 시작되었다.

1948년 12월 들어 무장대의 습격으로 인명이 희생되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마을 주민들은 서둘러 마을 둘레에 성을 쌓고 입구에 참호를 만들어 출입자를 감시했다. 또 밤에는 성의 요소요소마다 보초를 서고 순찰을 돌며 경비하였다.


한국전쟁 후에도 범위를 넓혀 더욱 견고하게 쌓아 여자들도 밤낮으로 돌아가며 보초를 섰다. 사태가 끝나자 성담은 밭담, 집담, 산담 등으로 환원되었다.(제주도/제주4·3연구소, 제주4·3유적Ⅰ. 2003. 521~522쪽)


동중동 방어성은 지미봉과 마을 사이에 높이 2m, 길이 30m 정도가 남아 있다.

종달리 거주 채정옥씨의 증언에 의하면 산에 가서 숨어 살다가 마을로 돌아올 때 새벽까지 이 곳 성담 밖에서 숨어 기다리다가 경찰이 보초를 서고 있는 주민에게 주의사항을 말해 주고 돌아간 뒤에 이 성담을 넘어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였다.(2008년 2월 24일 증언)

필자는 이 날 이 성담 돌 틈에서 4·3 당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철창 1개를 발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