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허물어진 집 재건..색달동 성담

마을 집들이 거의 다 들어갈 정도로 크게 쌓았다.

2020-01-24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색달동 성담
 

위치 ; 서귀포시 색달동 1980-1번지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유적(성)

 


색달동은 동쪽으로는 천제천을 사이에 두고 중문동과 접해 있고, 서쪽은 색달천을 사이에 두고 상예동과, 서북쪽은 안덕면 그리고 북쪽은 애월읍과 접해 있다. 당시 색달리는 본동과 자연마을인 천서동, 감수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색달리의 4·3 피해는 초토화작적이 시작되던 1948년 11월 초순께 마을에 온 경찰이 김부윤(20세)을 붙잡아 즉결총살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 후 11월 중순에는 천서동에 소개령이 내려졌다. 경찰은 소개령을 내리면서 청서동을 방화했지만 이 날 희생된 주민은 없었다.

본동은 12월이 되어서야 소개령이 내려졌는데 이 때 집들은 방화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대부분 중문으로 소개됐다.


색달동은 1948년 12월 소개되면서 방화되지는 않았지만 살던 집들을 다 허물어야 했다. 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중문에서 살다가 1949년 봄부터 마을을 재건했다.

주민들은 우선 허물어진 집들을 다시 지었고 마을을 둘러 성을 쌓았다. 성은 내·외 이중성으로 쌓았으며 성담 위에 가시덤불을 올려놓아 사람들이 함부로 넘나들지 못하게 했다. 마을 집들이 거의 다 들어갈 정도로 크게 쌓았다.


지금은 성담 흔적이 거의 없어졌고 마을 북쪽의 노인회관 들어가는 쪽 과수원 주위로 길이 30m, 높이 1m 정도 남아 있을 뿐이다. 마을 안 슈퍼 앞쪽으로도 겨우 흔적이 남아 있는 정도이다.(제주4·3유적Ⅱ 2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