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육군 제9연대 등 창설..상모리 육군제1훈련소지휘소

한국전쟁 당시 전방에 배치할 신병을 이곳에서 교육했으며 서울 재탈환 등 반격의 발판 마련한 곳.

2020-03-05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상모리 육군제1훈련소지휘소

 

문화재지정 ; 등록문화재 제409호(2008년 10월 1일)
위치 ; 대정읍 상모리 해병91대대 안(정문 남쪽 건물)
유형 ; 건물(석조 단층 1동 637㎡)
시대 ; 일제강점기~대한민국

 

 

옛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돼 광복 전까지 일본해군(오무라부대)이 주둔했고, 1946년 11월 6일 향토방위 임무를 띠고 1개 대대 규모의 육군 제9연대가 창설되었으며, 1948년 5월 15일에는 국방경비대(후에 육군으로 개편) 제11연대 본부 및 보병 1개 대대를 수원에서 창설하여 제주도로 이동하여 모슬포에 주둔했다가 토벌작전 후 7월 24일 수원으로 복귀하였다.

7월 23일 재편성된 9연대 3대대가 모슬포에 주둔했다. 1948년 12월 29일에는 육군 제2연대가 9연대와 교체하여 제주도로 이동하여 3대대가 모슬포에 주둔했다.


북한군에 밀려 퇴각하던 1951년 1월 21일 육군 제1훈련소 창설시 지휘소(연대본부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1953년 11월 26일에는 제29사단(육군 1,5,8연대 병력)이 창설된 역사적 가치가 큰 시설물이다.

한국전쟁 당시 전방에 배치할 신병을 이곳에서 교육했으며 서울 재탈환 등 반격의 발판을 마련한 곳이다.

이곳에선 약 50만 명의 신병이 훈련받았으며 1956년 4월 30일 해체되었다. 주변에는 훈련소 정문 기둥, 의무대 건물 등이 남아 있다.


초기에는 하루 500명 정도가 입소했으나, 전방의 전투가 한창 치열할 때는 동시에 8만 명 정도의 병력이 입소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당연히 부대의 규모도 확대되었는데, 안덕과 화순, 서귀포까지 확대되었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 제1숙영지, 상예동에 제2숙영지, 하원동 법화사에 제3숙영지, 상효동에 제5숙영지를 설치하여 신병을 훈련시켰다.

또한 안덕면 서광리에는 하사관 교육연대 제1숙영지를 설치하여 중간 간부를 육성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끝난 후 교통의 불편 등으로 해체되었다.(디서문)


광복 직후 한국군 창설과 이어지는 한국전쟁 당시 훈련 상황 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건군 60주년을 맞아 옛 육군제1훈련소 지휘소 등 한국전쟁 관련 유적 6건을 10월 1일 국군의 날에 맞춰 문화재로 등록했다.(이슈제주, 제민일보, 제주의소리, 제주일보 2008년 9월 30일)


석조건물로서 1동 1층으로 슬레이트 우진각 지붕 형태이고 내부에는 가운데 복도와 좌우로 나뉜 칸막이 시설이 되어 있다.

제주산 현무암을 다듬어 쌓고 시멘트로 마감한 벽에는 가로 약 1m, 세로 약 1.5m 정도의 창이 약 1.5m의 간격을 두고 배치되었으며 건물의 북쪽 중앙에 현관이 있다. 지붕이 매우 낡아서 타이어를 올려놓고 강철선으로 잡아매는 등 바람에 날릴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

그대로 둘 경우 자연적 훼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이 건물을 활용하지 않고 있으며 부대에서는 지붕을 보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작성 081207, 보완 1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