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별방진에 소속된 연대..월정리 무주연대(멸실)터

월정리 옛 이름인 무주애를 한자차용표기로 쓴 無注浦 ..엉뚱한 곳에 푯돌 세워

2020-04-14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월정리 무주연대(멸실)터
 

위치 ; 구좌읍 월정리 797번지.
시대 : 조선
유형 : 방어유적

 

 

 


무주연대는 별방진에 소속된 연대였다. 이 연대는 월정리 옛 이름인 무주애를 한자차용표기로 쓴 無注浦 또는 無住浦를 따서 한자로 無注浦(無住浦)烟臺 혹은 無注(無住)烟臺라 했다. 이증의 《남사일록》에는 무주애연대는 무주애 서안에 있다고 했다.


무주연대는 동쪽으로는 좌가연대(직선거리 4.5㎞), 서쪽으로는 서산봉수, 함덕연대와 교신했다(제주의 방어유적)고 되어 있으나 서우봉(직선거리 10.3㎞)이 가로막고 있어서 함덕연대와는 직접 보이지 않는 위치이다.

따라서 서쪽으로는 가까운 입산봉수(직선거리 3.0㎞)와 응신했을 것이다. 소속은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월정리 일주도로와 붙어 있는 취락구조개선마을 북서쪽으로 가면 월정리 마을과 김녕해수욕장 중간 지점에 해안과 인접하여 주위 지형보다 3m 정도 높은 모래 언덕에 연대가 있었다. 주민들은 예로부터 이곳을 연대동산 또는 연대망이라고 부른다.

주변 환경이 평지여서 동쪽으로는 행원리 해안, 서쪽으로는 김녕리 해안까지 시야가 트여 있다. 이 언덕은 지적도 상에서는 797번지 동쪽이다.

지금도 월정리에 살아있는 고로(古老)들의 말을 통해서 이곳이 연대가 있었던 곳임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구좌중앙초등학교 출신들이 만든 《월정향우회 20년》(2008)을 보면, 연두망을 월정리사무소 서쪽 800m(실제로는 600m) 지점, 곧 797번지 동쪽 일대라고 했다. 또한 그 설명에서 옛날에 봉화로 연락하던 장소이며 무주연대가 있었던 곳이라고 했다.(제주일보 101028 오창명 글)


그런데 그 동산에 대한 위치 비정이 조사자마다 다르게 표시하면서 엉뚱한 곳에 푯돌에 세워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제주의 방어유적」에는 월정리 산19번지라고 하였고, 지금은 마을길을 포장하면서 연대 자리의 모래를 옮겨가서 연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주변에 무주연대의 주춧돌로 사용했던 돌들이 간혹 보인다고 했고 지형도에는 월정리 서동 바로 서쪽 바닷가(월정리 730번지)에 표시해 놓았다.

그런데 다음이나 네이버지도에서는 산19번지가 없는 것으로 나오며 지형도 표시 위치는 서로 다른 곳이다. 그러므로 지형도 표시가 잘못되어 있다고 추정된다.

곧 김녕리와 월정리 경계 일대에 연대가 설치되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월정리 포구 서쪽 600여m 지점 언덕 위에 연대가 있었던 것이다.


표석은 하수종말처리장 서쪽 길가 월정어촌계식당(월정리 1400-45번지) 인근에 있고 주변에는 초석 같은 것은 전혀 없다.(『제주의 방어유적』(제주도, 1996), 『북제주군 비지정문화재 조사보고서』(북제주군․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05)

이곳은 옛날에는 공유수면으로서 번지도 부여되지 않은 곳이며 해안도로 개설 때 매립된 곳이다.
《작성 090119, 보완 18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