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친구는 도백이처럼 해사주."..정방동 이도백별장(멸실)터

이 집은 김일우의 소설 "섬사람들"에 나오는 서귀포 아지트이다.

2020-04-25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정방동 이도백별장(멸실)터
 

李道白別莊址
위치 ; 서귀포시 정방동 129-1
시대 ; 일제강점기~대한민국
유형 ; 건물터

 


이도백은 남로당 도당부의 거물로서 서귀포에서 활동하였다. 1931년 5월 16일 강창보, 오대진, 신재홍, 이익우, 김한정, 김유환, 김민화, 문도배, 강관순, 한형택, 송성철, 고운선, 한구현 등과 더불어 제4차 조선공산당 제주 야체이카를 결성하였다. 1947년 3월 파업투쟁을 주도했고, 1950년8월부터 서귀포지역 토굴에서 본토와 접선을 시도하던 중 1954년 3월 15일 체포되었다.(역사문제연구소, 제주4․3연구. 69쪽)

정방폭포에서 서쪽으로 약 500여미터 가면 동산 위에 크고 낡은 건물이 서 있었다. 원래 반지하 형식의 2층 건물이었는데 정방교회로 쓰기도 했었다. 윗층은 화재를 당하여 소실되었고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지금은 다시 지어 '바당이보이는집' 음식점으로 쓰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5월에는 제주도 야체이카 책임자로 검거되어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었다가 탈출한 강창보가 거지·엿장수·미치광이 등으로 변신하여 도피 생활을 하다가 며칠 동안 은신하기도 했던 이 건물은 4.3 당시 남로당 제주도 부위원장이었으며 서귀면 인민위원장이었던 이도백의 백만환 짜리 돌집이었다.


이 집은 김일우의 소설 "섬사람들"에 나오는 서귀포 아지트이다. 이도백은 원래 대정면 사람으로 일본에서 공부한 후 항일운동을 했고, 광복 이후에는 자주국가 건설을 위한 활동을 했다.

당시 서귀포 지역을 이끌었던 인물은 이도백과 송태삼이었고 그들의 비밀 아지트가 여기였다.
4.3 이후 이도백이 수배를 받고 있을 때 3년6개월이나 숨어 있던 집이기도 하다.

당시 경찰서장이 이도백의 친구였기 때문에 숨어 있는 줄을 알면서도 모른 체해서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하며, 한 동안 사람들 사이에
"친구는 도백이처럼 해사주."
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도백의 '7년 은신생활'(실제 은신기간과는 다르지만 그렇게 이야기된다)은 지역에서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인데 1954년 이 건물 지하에서 검거되어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그의 잠적으로 아버지와 아내, 아들, 친동생, 사촌동생까지 '도피자가족'으로 희생된 후였다. 이도백은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옥고를 치른 후 일본으로 건너가 살다가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