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국립제주목장 공포..송당리 국립송당목장진숫내저수지

밴플리트 장군은 송당목장의 사실상 창업자였다.

2020-05-14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송당리 국립송당목장진숫내저수지
 

위치 ; 구좌읍 송당리 2808번지(하천) 중에서 송당리 2657번지 옆. 대천동 잔디운동장 동쪽 진숫내(자배남수)
유형 ; 수리시설(목장용)
시대 ; 대한민국(1956~)

 

 


1954년 12월 1일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제주도에 육우 생산을 위한 국립목장 설치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농림부 축정국장 명재억(明在億)이 미국 CAC 직원 3명과 함께 구좌읍 송당리, 표선면 녹산장터, 산천단 일대를 답사하였다.

1956년 9월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정부가 제주도 국립목장 건설을 계획한 후, 8월에 송당목장 터에 목장 건설 공사에 착수하였다. 11월에 1차로 육우를 도입했으며, 동시에 대통령령에 의해 ‘국립제주목장’으로 공포되었다.

1957년 1월 29일에는 제주도 축산개발 1차년 사업비 1억 5,000만 환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3월 28일 한미재단 고문(?) 밴플리트 장군이 구좌읍 송당리 지역을 국립목장지로 확정하였다. 4월 15일에는 농림부의 목장 개발 계획이 발표되면서 목장 명칭을 ‘국립제주도송당목장’으로 하였다.


밴플리트 장군은 송당목장의 사실상 창업자였다. 1956년 6월 한미재단의 후원으로 건립이 시작되어 1957년 10월말 1차로 준공되었는데 밴플리트 장군이 당시 한미재단 이사장이었던 것이다.

밴플리트 장군은 1957년 3월 제주도를 직접 방문해 목장 후보지를 돌아보고 송당 지역을 목장지로 선정했으며 4월 2일에는 최영희 제2군 사령관과 미국인 수의사 스틴스와 함께 송당 일대를 돌아보며 목장 설계를 구상했었다.

송당목장은 국내 최초의 대단위(300만평) 육우목장으로 밴플리트 장군의 고향인 플로리다주에서 소를 들여와 사육이 시작됐다.(제주일보 2011년 7월 1일 김영관 前제주도지사 증언)


건물 등 시설 공사는 서울 소재 동명토건에 낙찰되었다. 7~800m 정도 떨어진 송당리 ‘진수내’를 막아 소규모 댐을 만들었으며, 이 물을 가축 급수장과 식수로 공급하기 위해 풍차도 설치했다. 저수지 옆에 살고 있는 주민의 말로는 이곳 물을 펌프로 송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 송당목장에서 사육중인 소들에게 부르셀라병이 발병하는 등 목장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자 5.16 이후에는 국회에서 목장 폐쇄를 주장하게 되었다. 1962년 5월 15일 농림부 업무보고시 송당목장의 부실문제가 제기되었고, 1962년 5월 24일에는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송당목장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목장을 방문하였다. 이 때에는 밴플리트 장군도 동행했다.(제주일보 2011년 7월 1일 김영관 前제주도지사 증언)


이 내창 이름이 송당리에서는 자배남수, 성읍 가까이 가면 진숫내, 하천리로 내려가면 천미천이라고 부른다.

제주도 내창의 특성이 건천임을 생각할 때 이렇게 항상 물이 고여 있다는 것은 특이한 일인데 내창 바닥과 옆을 보면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어 물이 고일 만한 여건이 됨을 알 수 있다.

이 물을 막았던 둑은 두 군데에 남아 있다. 많이 부서져서 이제는 둑으로서의 기능은 다하였다. 풍차의 흔적은 찾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