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체계적인 보존 대책 필요..조수1리 고시락동산 1차성

1차 축성 때 너무 좁아서 ‘너집내집’ 없이 아무나 성에 들어가서 마을별로 움막을 짓고 살았다

2021-07-13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조수1리 고시락동산1차성

 

위치 ; 한경면 조수1리 1297번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유적(성)

 


4․3 항쟁 당시 조수리 축성은 1차 복구 때인 1949년 5월부터 시작됐다. 1차 복구에는 조수초등학교 삼거리를 중심에 놓고 중동과 대동마을 일부를 둘렀다.

그러나 이 때 복구된 성은 저지리 수동, 조수, 낙천 주민들까지 모여 살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래서 그 해 가을에는 1차 성 양쪽으로 중동 일부, 신동이 포함되도록 확장했다.

그리고 다음해 봄에는 3차로 성을 늘려 쌓았는데 이 때에는 현재의 한양동이 포함되면서 한양동이라는 마을이 생겼다.

1차 축성 때에는 너무 좁아서 ‘너집내집’ 없이 아무나 성에 들어가서 마을별로 움막을 짓고 살았다. 돌이나 나무를 세우고 새를 덮으면 집이었다.

시락동산 성터는 1차 축성의 흔적으로 현재 높이 2m, 밑폭 3m, 윗폭 1.5m 정도의 성이 길이 50m 가량 남아 있다.(제주4․3유적Ⅰ 870~871쪽)

이 밭의 주인은 김소정 씨인데 '밭 가운데 있어서 불편한데 자신이 게을러서 지금까지 치우지 못했다. 유적으로서의 별 가치가 없다. 시간이 되는 대로 치우겠다.'는 생각을 피력하였다.(111230 면담)

체계적인 보존 대책이 필요하다.
《작성 11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