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빈네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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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빈네오름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01.2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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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251.7m 비고:117m 둘레:2,968m 면적:474,001㎡ 형태:말굽형

 

빈네오름

별칭: 채악(釵岳). 잠악(簪岳)

위치: 제주시 오라동 산 28번지

표고: 251.7m 비고:117m 둘레:2,968m 면적:474,001㎡ 형태:말굽형 난이도:☆☆☆

 

 

주인을 만나지 못한 빈네의 설움은 끝내 허리마저 골프장에 빼앗기고...

 

빈네는 제주 방언으로 비녀를 뜻하며 여인네들이 머리에 꼽는 빈네의 형상을 두고 명칭이 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 한자로 채악(釵岳)이나 잠악(簪岳)이라 표기를 하고 있지만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이를 반영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더러 억지가 필요하다. 과거의 모습과 환경이 달랐을 수도 있지만 선인들이 이런 명칭을 부여하는 데는 무척이나 고민이 따랐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다른 견해로는 오름의 한 면을 차지한 빌레 때문에 빌레오름으로 칭한 것이 표기가 잘못되었거나 변음이 되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는 빌레가 있는 지역의 오름을 두고서 빌레ㅡ빈네로 변하는 표기상의 오기(記)가 되었을 것이라는 내용이며, 방언으로 빌레는 용암이 흐르면서 굳어졌거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너럭바위 등을 의미한다.

역시 이 부분도 이해를 하기는 힘들기는 하지만 제주의 오름을 두고서 이것이다 하고 정의를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만약에 빈네오름의 표기가 아니었다면 빌레오름으로 명칭이 붙여졌을 수도 있을 법 하다. 명칭만을 두고서는 연약하게 느껴지기도 하련만 왠지 정상으로 향하는 틈새는 좀처럼 받아주기를 꺼려하는 오름이다.

거부와 외면으로 일축하는 기슭과 능선의 일대는 숲과 덤불로 하여금 오르는 이들에게 제목이 없는 탐방을 막으라고 강한 지시라도 내린 모양이다. 일대의 내놓으라 하는 소문난 오름들조차 이토록 강한 반항은 안 하지만 유독 빈네는 저만의 한을 쏟아내듯 방해를 한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주인은 여인네가 확실하지만 연약하지 않은 여자로서의 한을 드러내면서 이방인의 출입에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러한 데는 빈네 자신으로서도 충분히 이유가 있다. 빈네의 북동쪽 사면 아래로는 과거 목장으로 이용이 되었으며 일대의 기슭은 드넓은 벌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을 포함하는 골프장이 빈네의 허리 아래까지 잘라내어 차지를 하고 있다. 사실상 빈네로서는 자신의 살을 도려내어 골프장에게 내어준 셈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허리와 어깨를 지탱하게 했던 부위를 잘라서 내어줬는데 어찌 순순히 이방인들을 반갑게 맞아 주겠는가. 결국 지금의 빈네는 자신을 필요로 하며 머리에 꽂아줄 여인네를 그리워하면서 애달프게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르는 과정도 정상에서의 조망권도 빈네는 쉽게 허락을 안 해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감추면서 남조차 만남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그의 자세는 스스로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고나 할까.

100m가 채 안 되는 비고(高)이면서도 진입과 등정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차라리 이러한 운명 때문이라고 여기고 싶은 것도 그런 사연이 깃든 때문이다. 남에서 북으로 길게 이어진 두 봉우리를 사이로 남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굼부리를 형성하고 있다.

남쪽 봉우리가 정상이며 일대에는 바위들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으면서 기슭을 따라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연유로 빌레, 빌레오름이란 명칭이 나온 것이 아닐지 짐작하게 만든다. 빈네오름의 입지와 환경에서 나오는 특징은 한라산 북쪽을 중심으로 동서로 이어지는 일대의 오름 군락을 전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정확한 탐방로의 초입과 안내 등은 보잘것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골프장이 들어선 이후에 오름 주변 자체의 관리는 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지정 단체에서 부분적인 정비와 뚜렷한 탐방로를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빈네오름 정상에 올라서 골프장에 빼앗긴 허리 아래를 바라볼 수 있는 권리는 오른 이들 모두가 지니는 것이 아니겠는가......

 

 

-빈네오름 탐방기-

평화로 봉성 교차로에서 화전마을 진입로를 따라서 이동을 하다가 타미우스 골프장을 지나다 보면 좌측에 소로가 나온다. 예전에는 골프장이 있는 곳을 통하여서 진입이 쉬웠으나 지금에 와서는 섣부른 침입자가 되기에 다른 진입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초입이 딱히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보편성을 감안한다면 대기오염측정소 주변이 좋을 듯하다. 이 마을은 솔도라고 부르는 옛 화전마을이다. 지금도 많지 않은 가옥들이 있으며 웃드르(중산간) 권역이기는 해도 청정의 이미지와 조용한 마을로서의 입지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일대에 골프장들이 들어서면서 조용함의 영역은 좀 사라졌을 것이다.

대기오염측정소 인근의 적당한 공간에 주차를 하고서 진입을 하였는데 이 방향 이전의 초지와 농지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여러 정황을 참고한다면 아무래도 이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초지에 들어서면 빈네의 모습이 보이는데 우측으로 부터 내려진 비녀의 모습을 그려보면 빈네오름으로서의 칭호도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초지는 인위적으로 잔디를 파종하고 키우는 곳이기 때문에 행여 신나는 걸음으로 중앙 돌파를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스릴과 긴장을 늦추지 말고서 한쪽 면으로 얌전히 진입을 해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기보다는 시작만큼은 어수선한 길을 통과해야 했고 기슭 아래에 도착을 한 후 숲을 지나기 시작하였다. 삼나무가 주를 이룬 숲은 자연스러움이 넘쳐서 어지러울 정도였다.

일부 뽑히고 잘린 나무들이 길을 막고 있고 쓰러진 나무 더미를 넘으면서 낮은 경사를 따라 오르기 시작하였다. 빈 커피 캔이 떨어져 뒹굴고 있었는데 어쨌거나 사람의 출입을 알리는 흔적이 아니겠는가. 행여 다음의 누군가를 위해서 캔을 주워서 가지에 매달아뒀다.

그리고는 마침내 길의 흔적을 만났는데 수북하게 쌓인 숙대낭 잎과 가지들이 바닥을 장악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뚜렷하게 보였다. 패인 바닥의 일부는 붉은색 송이와 화산재가 보일 정도로 분명한 탐방로였던 셈이다. 고개를 쳐드니 트인 하늘이 보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고 체력의 고갈을 느낄 만큼의 심한 경사도 아니건만 버거움이 따랐다.

비로소 빈네의 한이 서린 이유를 알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서 만나는 빈네의 어깨는 한없이 반갑기만 하였다. 정상부로 이어지는 동안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동굴인데 일제 강점기에 파 놓은 인조동굴이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옆으로는 수직으로 파 내려간 웅덩이가 또 있다.

빈네의 정상을 향하기 전에 만나고 올라야 하는 바위들을 거쳤는데 사실상 오름의 정상을 차지하는 바위들이고 올라서면 정상인 셈이다. 빈네의 모습과 견줄 때 길게 능선이 이어지므로 뾰쪽한 형세가 아닌 만큼 한 쪽에서 사방을 전망할 수는 없었다.

정상이라고 특별한 표식은 없고 이를 대신하여 누군가가 막걸리를 마시고 난 후 빈병을 가지에 매달려 놓은 것이 전부였다. 정상을 정복하고 한 사발 들이켤 때 얼마나 맛이 있었을까... 두리번거리기를 시작했는데 한라산의 머리와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눈이 덮인 모습을 실어서 영롱하고 영험하게 아낌없이 보여줬고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층도 오른 자에게 실컷 보라면서 힘찬 응원을 보내줬다.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더러 차갑기는 하였지만 청정함을 실은 겨울이 불어왔다. 한라산 정상부의 설경을 바라보며 신비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였고 그 아래를 지키는 오름 군락들이 실루엣처럼 이어지면서 눈을 뺐었다.

이돈이오름과 서영아리를 비롯한 일대의 오름들이 사정권 안에서 우쭐대고 있었고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국토 최남단 마라도를 비롯하여 산방산 등 일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인색하고 거칠 것으로 여겨졌던 빈네이지만 어차피 내어준 정상인지라 실컷 바라보라 하였다.

 

앞쪽의 멀지 않은 곳으로는 여진머리(병악. 오름)가 보였는데 이는 여자의 얹은머리 형태를 의미한다. 행여 이곳의 비녀는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주인으로 여진머리를 선택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그토록 사모하는 님을 두고 있건만 지금은 신체의 일부를 빼앗긴 상태라 짝사랑의 정도마저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가 애써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방향을 돌려 화구 안쪽을 들여다봤다.

제법 빽빽하게 잡목들이 차지를 하고 있지만 겨울의 굼부리 방향은 허허한 모습을 더 느끼게 했다. 길을 열어준다면 화구 안쪽을 만나고 오겠지만 난공불락이었다. 다시 방향을 돌리니 한대오름이 어머니 한라산을 섬기며 다소곳이 눈 마중을 해오고 우측으로 시야를 넓히니 돌오름이 수고에 응대를 하듯이 반겨줬다.

내친 김에 골프장 방향을 살피러 이동을 하려 했는데 부득이 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상부의 입지상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면 내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쥐똥나무와 꽝꽝나무 그리고 찔레가 장악을 한 정상부의 이동은 이들이 있어 곤란과 버거움을 느끼게 하였다.

허리를 굽히고 앞쪽을 헤치면서 천천히 움직여 나아갔다. 이미 바지 깃과 손등의 일부는 긁혀있는 상태라 2판 4판으로 진행을 할 도리밖에 더 있겠는가. 마침내 맞은편으로 다래오름이 보였는데 빈네의 상처를 만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위치는 다래오름에 올랐을 때이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한동안 살펴봤다.

빈네오름을 만나기 전에 반드시 다래오름에 올라서 빈네의 외모와 상처를 봐야 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산은 부득이 백(back) 코스를 이용한 후 마을 소로를 나오는 길목에 옛 분교장이 보였다. 폐교가 된지 오래되었고 지금 교실 자리에는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어지럽게 보이는 운동장 자리가 애달프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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