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산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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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산세미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02.0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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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651.6m 비고:102m 둘레:2,444m 면적:382.100㎡ 형태:말굽형


산세미

별칭: 산새미. 삼산이. 산심봉(山心峰). 삼산악(三山岳). 활천악(活泉岳)

위치: 애월읍 고성리 산 127번지

표고: 651.6m 비고:102m 둘레:2,444m 면적:382.100㎡ 형태:말굽형 난이도:☆☆☆

 

 

두 개의 굼부리와 천연의 못을 지닌 채 드넓은 목장에 우뚝 솟은 화산체...

 

제1산록도로변 신엄 공동목장과 천아오름 입구에 위치한 옆에서 만나게 되는 산세미는 오름들 중 몇 안 되는 샘물이 있는 곳이다. 이 오름의 남서쪽 기슭에 샘이 있으며 반대편 북동쪽 기슭에는 진수못(김수못)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살아 있는 샘이라 하여 활천악(活川岳)으로도 표현을 하는데, 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솟아난다고 해서 세미(새미. 샘)가 붙여졌듯이 산(活)세미로 쉬운 이해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결국 산세미는 오름 기슭 아래에 샘이 있음에 연유하여 명칭이 붙었으며 산새미로도 표기를 하고 있다. 또한 봉우리가 셋이어서 삼산(三山)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산심봉(山心峰). 삼산악(三山岳). 활천악(活泉岳) 등으로 표기를 하고 있다. 여러 한자어가 등장을 하지만 제주도 대부분의 오름이 그러하듯 구전되는 명확성을 거론하기 이전에 아무래도 산세미가 어울릴 것 같다.

화산체가 크지는 않지만 산록도로변인 북쪽에서 바라볼 때는 세 개의 봉우리가 이어진 듯한 형세를 지니고 있다. 지금의 산록도로가 생기기 이전에 드넓은 목장을 이루고 있는 한쪽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로 나타났던 만큼 이 주변에서는 돋보였을 것으로 짐작을 할 수 있다.

화산체를 따라 기슭과 능선 등에는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잡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북동쪽 기슭 아래에 천연의 연못이 있다. 동서로 길게 흘러내리는 등성을 따라 북향의 굼부리가 두 개 있는데 방향은 달리하기 때문에 봉우리가 세 개로 보이면서 삼산악이라는 별칭도 나왔고 삼심봉(三心) 이라는 별칭도 지니게 된 것이다.

행정구역 상으로 애월읍 고성리에 위치하며 산록도로변 신엄 공동목장 입구 옆의 천아오름 표석과 나란히 보인다. 오르미들에게 있어서 큰 인기를 얻거나 탐방으로서의 깊고 그윽한 맛이 있는 곳은 아니다.

주변에 워낙 걸쭉한 오름들이 많이 있는 것이 그런 사유가 되겠지만 부분적으로 역사적 의미가 깃든 곳이고 천연의 못이 있는 등 관심을 두고 만나볼 필요가 있다. 102m의 비고(高)가 말해주듯 오름 탐방으로서의 적정 수준이며 울창한 숲과 정상부에서 부분적으로 전망을 할 수 있다.

 

 

 

-산세미 탐방기-

산록도로변 옆을 따라 입구로 들어갔다. 초입의 선택은 양방향이며 산 체를 빙 둘러 돌아오게 되기 때문에 전진형의 탐방으로 이뤄진다. 바로 직진을 선택할 경우 샘터 쪽으로 이어지게 되지만 묘들이 많아서 혼선이 오기 때문에 돌아오는 코스로 하고 진입은 출입구에서 우측으로 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으로 조금 들어가면 경방 초소가 있으며 일정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관리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산기슭 아래쪽으로 향했다. 오름의 진입로에 유난히도 묘들이 많이 있으며 견고하게 산담(묘 둘레를 쌓은 돌담)까지 보였다. 심하게 혼선을 빚지는 않지만 진입로를 찾는 것이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진행 방향을 알리는 리본을 찾는 것이 중요하며 이때부터 바닥 층의 흔적을 따라가면 되었다.

바야흐로 숲 안의 세상을 만나게 되었는데 별도의 탐방로가 없으며 오름 사면은 해송을 비롯하여 울창한 잡목과 수풀이 차지하고 있었다. 친환경 매트는 둘째하고 그 흔한 타이어매트조차 안 깔린 바닥이고 사람들의 출입이 많지 않은지 흔적도 구분하기 힘들 만큼 희미했다.

그래도 수북하게 쌓인 낙엽들을 밟으며 걸어가는 느낌이 좋아서 방향감각과 느낌을 최대한 살려 기슭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어 갑자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놀랐는데 거대한 몸집의 누렁소 한 마리가 길목을 막고 있었다. 놀란 것은 나만이 아니라 황소도 마찬가지였다. 순간적으로 둘이는 서로 눈싸움을 하게 되었으나 승자와 패자를 가리지 않고 이내 서로의 갈 길과 할 일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지금은 내가 침입자가 된 만큼 비켜주고 피해주는 게 도리라 생각하였다. 오름 일대가 목장이라서 기슭 아래를 포함하여 허리 능선에서도 소를 만날 수가 있었는데 중요한 사실은 곳곳에서 이들이 영역과 경계 표시를 해놓은 노출형 지뢰들을 만나는 과정이었다.

매설이 된지 오랜 것은 그나마 화약 성분이 떨어졌지만 축축하게 남아 있는 지뢰는 잘못 밟는 순간 신발과 바지 깃이 엉망이 되고 만다. 숲은 자연 생태가 비교적 잘 살아있는 모습이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처럼 소 떼들 역시 이 공간을 헤집겠지만 곳곳에서 생명력을 이어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때문에 오름의 허리 부분까지 느낌이 촉촉하게 다가왔다. 정상부로 올라오는 동안에도 몇 곳의 묘들을 만나게 되었고 심지어는 최정상으로 보이는 곳에도 묘가 차지하고 있었다. 국가기준점 표식이 있었는데 오름의 정상 지점이 아닌 곳에 세워져 있었다.

 

구분을 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거나 묘들이 있어서 부득이 근처로 선택을 한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gps를 통하여 확인을 하고 정상부라고 여길 즈음 표식이 보였다. 어떤 곡이 담겼는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나뭇가지에 CD를 매달아뒀다.

정상부에서는 해송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편백나무와 다른 잡목들도 볼 수 있었다. 역시 숲을 헤치면서 지나야 했는데 워낙 숲이 울창하여 외부를 가리고 있는 때문에 전망은 포기를 했다. 사람들이 다닌 흔적은 희미하게 나 있으나 탐방로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그만큼 자연미가 넘쳐나고 분위기는 있지만 전망대나 휴식 공간은 없었다.

정상에서 자리를 뜬지 얼마 안 되어 이슬을 머금은 쥐똥나무 열매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매달린 물방울을 바라본다는 절대 조건으로 잠시 눈싸움을 하고 그 흔적을 담았다. 어쩌면 정상에서 특별한 만남이 이뤄지는 것이 없는 때문이기도 했다. 선 님들의 흔적을 따라서 내려오니 마침내 숲 바깥세상이 보였고 기슭에도 여전히 묘들이 주변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김수 장군 묘지도 근처에 있다.

이제 마무리 과정으로 연못 근처로 가려 하는데 소 때들이 일제히 째려봤다. 왜 자기들 영역에 와 있냐고 이방인을 향하여 눈으로 경계를 보내는 것이었는데 조심스럽게 한쪽으로 진입하였다. 진수못(김수못)은 소들의 쉼터이기도 했다.

'김수'는 삼별초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고려 관군을 이끌고 제주에 들어와 싸우다 전사한 장군이다. 당시 이곳에서 김수 장군이 진을 쳤다고 전해지면서 이 못의 이름도 진수(김수)못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오름의 동쪽 기슭에는 김수 장군의 묘가 있고 현장에 안내판도 세워져 있으며, 근처에 광산 김 씨 문중에서 세운 김수 장군 비석도 만날 수 있다.

돌아 나온 후 초입에서 바라보면 산세의 일부가 나타나는데 처음 진입 시 방향으로 입구에 들어선 후 우측으로 갔다가 직진으로 나오는 둘레 탐방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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