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섯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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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섯알오름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03.2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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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60.7m 비고:21m 둘레:704m 면적:29,094㎡ 형태:말굽형

 

섯알오름

별칭: 서란악(西卵岳). 서난악

위치: 대정읍 상모리 1,618번지

표고: 60.7m  비고:21m  둘레:704m 면적:29,094㎡ 형태:말굽형  난이도:☆☆

 

 

낮고 허름하지만 지난 세월 아픔과 슬픔의 역사를 지닌 화산체...

 

동알오름과 섯알오름은 행정상으로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했지만 송악산 주변이나 사계 해안 인근 정도로의 인식이 더 쉽다.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두 오름을 두고서 탐방을 운운하는 것은 부끄럽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이들 오름에 부여가 된 큰 의미가 있어서 무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될 곳들이다.

이 일대에 좀 더 정확성을 두고서 오름의 지형을 살핀다면 동서알오름 사이에 또 하나의 화산체가 있다. 이를 두고서는 셋알(中)오름이라고 별칭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곳 세 오름을 합친다 해도 전반적인 산 체의 높이나 크기가 작아서 뚜렷한 기준을 구분하지는 않는 편이다.

또한 이 알오름들을 거론하면서 오름으로서의 가치나 볼품을 운운하는 것조차도 미약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섯알오름은 동알오름보다도 낮으며 비고(高)가 불과 21m의 나지막한 동산 형태이다.  화산체 형성이 될 당시에 용암이 흘렀을 것으로 추측이 되는 곳은 현재 대부분 농작지로 개간이 되어 있다.

하나의 소화산체로서의 성질과 형태의 분명함은 있으나 산 체의 크기나 비고(高) 등이 여느 오름에 비하여 작고 낮기 때문에 특별한 명칭 없이 알오름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섯알오름의 동쪽에 위치해 있어서 동(東)알오름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치적으로는 맞는 셈이다.

이 두 알오름을 중심으로 하는 일대는 지질학이나 고고학을 떠나서 제주의 역사가 살아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동알오름은 과거 일제시대에 일본군들의 고사포 진지로 억울하게도 산 체의 머리 자리를 내주었으며, 섯알오름은 자신의 일부를 열고서 제주 4.3 당시 비명에 간 영령들이 매장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비극을 안고 있다.

그러기에 현재에 이르러서 동.서알오름을 만나는 것은 하나의 오름 탐방으로서의 묘미를 느낀다기보다는, 과거를 돌아보고 제주가 처했던 아픔의 현장을 찾아보는 정도로 이해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알오름들을 옆에 있는 절울이악(송악산)과 관련하여 명칭이 붙여졌다면 절울이 알오름 정도로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환경이나 입지가 그러하듯 절울이오름을 오른 후 송악산 둘레길을 거쳐서 함께 한다면 더없이 좋은 행보가 될 것이다. 역사와 문화 탐방을 함께하는 도보여행을 통하여 지난 세월의 아픈 흔적도 느끼겠지만 제주를 아는데 보다 많은 도움이 되리라.

어차피 송악산 일대는 최고의 전망과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면서 제주의 아픔이 서린 곳이지만, 이 동알오름의 일부는 중국 자본에 의하여 리조텔 등이 들어서게 된다고 한다. 머지않아서 일부 지역에는 높고 큰 콘크리트 건물 등이 가로막을 것이고 자유로운 출입과 전망이 불투명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곳의 알오름들은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큰 수난을 겪고 있는 셈이다.

 


 -섯알오름 탐방기-

송악산둘레길에서 낭만과 즐거움을 안고 이어지는 알오름으로의 발길도 가벼운 행보가 될 법도 하련만, 화창한 날씨와 트인 전망들조차도 무색하게 입구에서부터 마음이 무거워졌다. 동알오름에는 일제 강점기의 군사시설물이 있고 섯알오름에서는 4.3의 아픔이 서린 백조일손 유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알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은 제주올레(10코스)가 연계된다. 행여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송악산~알오름~알뜨르 비행장으로 이어가는 도보여행도 좋은 여정이 된다. 겨울의 중심에 서 있지만 화창한 날씨는 계절을 외면하고서 지나는 발걸음에 도움을 줬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뿐만 아니라 맑은 공기조차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응원을 보내왔다.

돌아서서 주변을 전망했는데 산방산과 바굼지오름(단산)이 한 눈에 들어왔고 멀리 오름 군락과 열린 하늘은 언제나 한 폭의 그림을 그리게 해주는 대상인지라 이날도 변함이 없었다. 동알오름을 거쳐 섯알오름으로 가는 순서를 따르게 되었는데 일제 고사포 진지가 있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세월을 달리하지만 그 흔적 중 터는 그 모습 그대로이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알뜨르 비행장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 시설이며 수세에 몰렸던 일본군들이 취한 발버둥의 현장이라고나 할까. 계속해서 지나던 방향으로 이동을 하면 구부렁 문이 있고 이곳에서 소로를 통하여 나아갔다. 제주올레 이전에는 목축이나 농업용 출입 외에는 별다른 통행이 없던 곳이며 아직도 부분적으로 어수선한 곳도 있다. 

셋알오름과 섯알오름이 나누어지는 곳에는 오름의 한 부분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개간이 되어 농지로 사용이 되고 있다. 오래전에 침식이 된 상태라서 용암이 흘렀거나 굼부리의 장소임을 상상할 겨를조차 없다. 섯알오름으로 이동을 하면서 만나는 해안 일대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썩 좋은 가시거리는 아니지만 최남단 마라도를 비롯하여 가파도의 모습이 가까이 보였다. 퇴색된 억새 군락지 뒤로는 수확을 마친 허허한 밭이랑과 초록의 물결이 대조를 이루며 식상하지 않은 볼품을 안겨줬다. 반대편의 바굼지오름(단산)도 지루하지 않은 발걸음이 되는 데에 한몫을 했다. 한가롭다.

 

한적하면서도 고즈넉한 풍경을 향하는 눈싸움도 제법 오래도록 이어졌다. 평화로움의 표현에 이 일대의 농경지를 포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마침내 섯알오름의 백조일손 유적지에 도착을 했다. 지난 1950년 7~8월에 거쳐 해병 모슬포부대 분대장급 이상 하사관들에 의해 민간인을 학살한 장소이다. 당시 중대장의 지시에 의하여 한 사람이 한 명씩 총살을 감행했다. 그리고는 시신을 호 안으로 떨어지게 했던 장소이다.

현장에는 당시 희생되었던 인골과 유품 그리고 탄피 등을 수거하여 일부 진열을 한 함도 있었다. 엉성하게 만들어진 전시함이라 그런지 마음은 더 애달프기만 했다. 두 개로 나눠진 발굴 현장의 호 중 한 곳은 한림 어업조합 창고와 무릉 지서에 예비 검속 되었다가 희생이 된 후 유해를 수습하고 한림 금악의 만벵디 공동장지에 안장이 된 영령들의 희생 장소라고 한다. 

백조일손..... 조상은 백이라도 자손은 하나이다! 호 안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고 오래도록 희석이 되지 않은 상태라 바라보기조차 서글프고 민망스러웠다. 퇴색이 된 잡초들과 두 개의 웅덩이 주변은 영혼들의 소리 없는 울부짖음이 나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공교롭게도 이곳의 호는 일본군들이 탄약고로 사용했던 장소라고 했는데 콘크리트 구조물은 유해 발굴 당시 드러난 탄약고 잔해물인 것이다. 호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든 데크 로드는 추모의 길로 명명이 되었다. 가슴 아픈 현장을 둘러본 후 슬픔만큼이나 화가 치밀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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