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동쪽 비탈..동피랑마을 가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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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동쪽 비탈..동피랑마을 가 보니.."
  • 김평일 명예기자
  • 승인 2018.05.07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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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일 명예기자,미술이 도시 살린 동피랑 벽화마을을 가다.
 

통영은 한려수도의 비경을 간직한 예향의 도시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심장부에 위치한 통영시는 충절과 구국의 혼이 서린 역사의 도시이며 한국현대사를 걸어간 걸출한 예술인들의 향기 가득 배인 문화의 도시다.

따뜻한 기후와 아름다운 풍광으로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한 흔적인 연대도 패총, 봉평동 청동기 지석묘 등 유적들이 분포해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성웅 이순신 장군의 호국의 얼이 배어있는 임진왜란 당시의 격전지를 비롯하여 3도수군통제영사의 본영 등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귀중한 문화유산이 산재하고 있다.

세병관, 충렬사, 통제영지, 두룡포 기사비,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통영향교를 비롯한 유형문화재, 통영오광대, 나전장, 승전무, 남해안별신굿, 두석장, 소목장, 염장 등 무형문화재도 간직하고 있다.

 

유치환, 유치진, 윤이상, 박경리, 김상옥, 김춘수, 김용익, 김형근, 전혁림, 이한우 등 기라성 같은 예술인들이 배출된 도시이다.

통영은 조선에서 한양과 함께 두 번째로 만든 계획도시라고 한다.

임진왜란 후 선조는 다시는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604년에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두룡포에 삼도수군통제영을 만들었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전란 중에 한산도에 통제영을 둔 것과 같은 의미다.

통영성은 동포루, 북포루, 서포루를 경계로 한 계획도시다.

그 중앙에 통제영이 있고 통제영의 중심 건물이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세병관(400년 된 목조건물인 국보 제305호)이다.

 

통영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벽화 마을인 ‘동피랑마을’이 있다.

통피랑은 통영시 정량동에 있는 마을로 산비탈에 만들어진 오래된 마을이다.

동피랑마을이 있는 산정에는 동포루가 있다.

동포루는 조선시대 해발 174.2m에 둘레가 3,660m에 성을 쌓고 그 위에 누각을 지어서 이곳을 동포루라 하여 왜적의 침입에 대비했던 곳이다.

동포루에 오르면 통영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피랑은 ‘동쪽’과 ‘비랑’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생긴 이름이다.

즉 ‘동쪽’에 있는 ‘비탈’로 여기서 ‘비랑’은 ‘비탈’을 뜻하는 통영의 사투리라고 한다.

 

동피랑마을은 동쪽에있는 비탈진 곳에 만들어진 마을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얕으막한 산정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이곳 동피랑마을은 벽화마을로 유명한데 전국의 수많은 벽화마을 중에서 유일하게 성공을 한 벽화마을로 수많은 관광객이 이 마을을 계속해서 찾고 있으며 통영을 관광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마을을 다녀가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곳 산비탈마을은 서민들이 오랜 삶의 터전이고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생활의 터전으로 언덕마을에서 보는 통영바다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지금부터 10여년전 동포루의 복원과 공원을 조성할 목적으로 언덕에 있는 동피랑마을을 철거하려 하자 '푸른 통영21 추진협의회'가 앞장 서서 도시재생 사업을 색다른 방향에서 모색하는 방안을 강구하다가 동피랑마을을 벽화마을로 만들기로 하면서 동피랑벽화마을이 탄생하게 됐다고 한다.

 
 
 

공공미술을 통한 마을 살리기 사업으로 마을 벽 곳곳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림의 내용은 바다와 항구, 이순신장군, 유명시인의 시, 어린이들의 꿈등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그림들을 그렸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들과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통영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 등으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민관포럼 최우수상, 전국 마을만들기 대회 등에서 수차례 수상을 했고 TV드라마와 영화가 이마을을 배경으로 촬영이 되면서 그 진가가 전국에 알려져서 통영을 찾는 발길들이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동피랑은 벽화마을의 선구자 마을이다.

동피랑이란 마을 이름 또한 참으로 정겹고 예쁜 이름이다.

 
 
 
 

동피랑 마을은 그리 예쁘지 않은 서민들이 살던 터전으로 한 때는 허름한 마을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지만 이대로 허물 수는 없다며 마을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던 와중에 젊은 예술가들이 마을의 골목골목 사이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벽화마을의 작은 골목 사이사이에 그려져 있는 벽화와 바다가 잘 어울린다.

전국의 벽화마을 중에서도 성공한 사례로 통영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가 되었다.

동피랑벽화마을의 벽화들은 언제 보아도 새롭고 깨끗하게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이는 이마을에서 2년마다 벽화내용을 공모를 해서 벽화를 새롭게 단장하는 전략으로 방문객 및 재방문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고 이 마을은 협동조합과 공동매장을 운영하여 주민자치와 공동체 경제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벽화마을로 이름이 높다.

이 마을 사람들 스스로 훼손된 벽화를 보완하고 오손된 곳은 닦아내어 벽화가 아름답게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한 때 전국적으로 도시 농촌 구분없이 마을마다 벽화그리는 붐이 조성된 적이 있다.

서울에 조성된 벽화마을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으나 지금은 마을사람들이 벽화를 훼손시키고 지워버려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찾지 않는 사막과 같은 삭막한 마을로 되돌아 갔다는 소식을 접한적이 있다.

벽화마을이 유명해지니 수 많은 사람들이 시도 없이 찾아서 길을 막고 사진을 찍고 심지어는 사생활이 보장되어야 할 집안까지 기웃거리는 실정이 되어 마을 사람들이 자진해서 벽화마을을 폐쇄 시켰다고하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동안 벽화를 만들기 위해 투입된 인력과 재정적 손실은 누가 책은을 져야 하는지.

국민의 혈세를 유행따라 펑펑 쓰고는 누구하나 책임을 지지도 않고 반성을 하는 사람도 없다.

 
 

우리 고장 제주에도 유명한 벽화골목이 있다.

제주동초등학교 앞 두멩이골목 벽화다.

지금 두멩이 골목에 벽화를 보려고 찾아오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벽화를 그려놓으므로 그 지역 사람들이 얼마나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는지 관계당국에서는 관심이나 갖는지나 의심이 든다.

‘용두사미’라는 말이 있다.

이제 제주의 벽화마을 프로그램이 지금은 용두사미가 되는 전철을 밟고 있지 않나 관계기관이나 단체가 반성을 할 시간이다.

관게기관이나 단체가 통여 동피랑마을에가서 그곳 벽화마을의 성공사례를 배워올 필요는 없는지 고심해 봤으면 한다.

통영의 동피랑벽화마을을 오감으로 느끼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비탈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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