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이 다 얌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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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이 다 얌체족"
  • 박대문
  • 승인 2018.10.11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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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유령 식물 수정난풀

유령 식물 수정난풀

 <수정난풀 (노루발과) Monotropa uniflora >

 

 사람 사는 세상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듯이 꽃의 세계에도 별의별 꽃이 다 있습니다. 작고 앙증맞으면서도 깜찍하게 고운 꽃이 있는가 하면 허우대는 크지만 볼품 없는 꽃도 있습니다. 곱고 화려한 꽃이 있는가 하면 이게 어찌 꽃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찮아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곱든 하찮든, 크든 작든 간에 우리가 보는 모든 식물은 다 꽃이 있습니다. 무화과라 부르는 것도 실은 밖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지 과피(果皮) 안에서 꽃이 핍니다.
   
같은 꽃이라 할지라도 아름답거나 하찮아 보이는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긴 합니다. 하지만 모든 꽃이 가지는 종족 번식을 위한 수단의 기능은 한결같습니다. 다음 세대를 이어 갈 씨앗을 남기고 한살이를 마무리 짓는 것이 꽃입니다.

후대를 이어 간다는 것은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에도 마찬가지인 모든 생명체로서의 기본 소명(召命)이라 여겨집니다. 모든 식물이 아무리 어렵고 고달픈 여건 속에서도 눈물겹게 한 송이 꽃을 피워 올리는 이유입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어둑한 깊은 숲길에 희끗거리는 하얀 물체가 눈에 띄었습니다. 깊은 숲속의 그늘지고 음습한 곳, 썩은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는 곳에 드물게 보이는 수정난풀이었습니다. 잎과 줄기와 꽃이 모두 흰색으로 투명해 유령의 꽃처럼 보이기도 하며 괴기스러울 정도의 오싹함도 느낄 수 있는 꽃입니다.

온통 하얀색에 투명한 모습이라서 숲속의 요정이라고도 합니다. 엽록소가 없어 어둑한 숲 바닥을 하얗게 밝힐 만큼 독특합니다. 맑고 투명한 비늘 같은 하얀 잎이 서로 어긋나게 달리며 하얀 줄기 끝에 담배파이프 머리통과 같은 꽃이 핍니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서양에서는 수정난풀을 유령 식물, 유령 파이프, 인디언 파이프 또는 시체 식물이라고도 합니다. (also known as ghost plant (or ghost pipe), Indian pipe or corpse plant.)
   
습하고 어둡고 도저히 식물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열악한 여건에서 괴기한 꽃을 피워야만 하는 수정난풀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공기 잘 통하고 햇볕 좋은 곳도 아닌, 명계(冥界)와 같은 음습한 곳에서 자라나 유령처럼 꽃을 피우는 수정난풀이 때로는 애잔해 보이기도 합니다.

엽록소가 없어 온통 흰색이지만 그래도 자세히 살펴보면 뾰족한 비늘 같은 잎이 있고 줄기가 있고 고개 숙인 꽃망울이 있습니다.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 활동을 하지 못해 낙엽 등 죽은 식물체로부터 양분을 흡수하여 살아갑니다.

햇빛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숲속의 매우 어두운 환경에서도 자랄 수 있습니다. 생의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도 하지 못하고 썩은 낙엽이나 죽은 나무를 분해하여 영양을 섭취해야 하는 부생식물(腐生植物)입니다.

다른 식물이 살 수 없는, 경쟁이 안 되는 열악한 곳까지 밀려 꽃을 피워 씨앗을 남기려 하는 생의 노력이 처절해 보이기도 하는 꽃입니다. 고적한 깊은 숲속의 고단한 생이 외로워서인지 다복다복 한데 뭉쳐나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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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의 정화와 생태계의 물질순환을 돕는 부생식물, 수정난풀>

 

모든 생물은 살아가는 데 생(生)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쓰는 물질이 유기물입니다. 오직 엽록소를 가지고 있는 식물만이 햇볕, 공기, 물을 가지고 탄소동화작용이라는 광합성을 통해 유기물을 합성합니다.

그러나 모든 식물이 다 탄수화물 생산자는 아닙니다. 엽록체가 없는 기생(妓生)식물과 부생(腐生)식물은 광합성을 하는 식물로부터 영양분을 빼앗거나 얻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이들은 광합성 식물이 이미 만들어 놓은 유기물로 살아갑니다. 기생식물은 변형된 뿌리를 이용하여 다른 숙주(宿主)식물로부터 양분을 빨아들입니다.

때로는 숙주(宿主)식물보다 더 크게 자라 양분을 빼앗고 빛을 차단하여 숙주를 죽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식물 세계도 생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만만하지 않아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기생식물과 달리 다른 식물의 영양물질로 살아가지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 식물도 있습니다.

사체(死體) 기생식물이라고도 하는데 각종 동식물의 고사체(枯死體)나 배설물들을 분해하여 유기물을 흡수하는 식물입니다. 이 식물들은 자연계에서 물질순환을 돕는 분해자로서 자연생태계를 건전하게 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평온해 보이기만 하는 자연 속 식물 세계에도 이처럼 열심히 광합성을 하여 살아가는 식물도 있고 강탈하거나 무위도식하는 얌체족이 있는가 하면 영양분을 스스로 생산하지는 못하지만,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주변 생태환경을 정화하는 부생식물도 있습니다.
   
식물탐사를 하면서 기생식물을 보면 얌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공존, 공생하며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대자연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연의 신비가 하도 오묘하여 어쩌면 이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의미 있는 기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연 세계를 크게 보면 광합성 식물을 빼고 나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이 다 마찬가지로 얌체족입니다. 모두가 광합성 식물이 만들어 놓은 생의 에너지로 살아가는 소비자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며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인간도 햇볕, 물, 공기를 가지고 생의 에너지인 먹거리를 만드는 능력은 없습니다.

인간도 식물이 만들어 놓은 생의 에너지를 무위도식하는 얌체의 무리에 속합니다. 자연 생태계의 유일한 생의 에너지 생산자인 식물을 먹고 사는 초식동물은 1차 소비자이며 초식동물을 먹고 사는 육식동물은 2차, 3차 소비자입니다.

이들 소비자가 자연계의 먹이사슬을 이룹니다. 먹이사슬과 자연 속에서 파생된 사체(死體)는 다시 분해자가 분해하여 생산자인 식물을 자라게 함으로써 자연계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며 생태계가 지속합니다. 이 순환의 중심이 바로 식물입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온갖 사회, 경제, 문화 활동을 한다고 하지만 궁극적인 생의 원천, 먹거리는 오직 식물에서만 나옵니다. 생의 에너지를 일차적으로 생산하는 광합성 주체는 식물뿐이기 때문입니다. 물속의 어류도 식물성 플랑크톤과 이들을 먹이로 삼는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삽니다. 가축인 소나 양도 1차 소비자인 초식동물입니다.

식물이 모든 생물의 에너지원입니다. 푸른 숲을 이루어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고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주어 모든 생명체를 이 땅에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식물입니다. 발밑에 밟히는 하찮은 풀, 풀때기라 비하하지만, 그 식물이 인간도 도저히 할 수 없는 신비의 광합성을 합니다.

우리의 생을 이어 가게 해주는 풀때기의 위대한 공로와 고마움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습니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과 삶을 함께해온 우리 식물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생각해봅니다.


   
(2018. 9. 15 제주도 서귀포 고살리 숲길에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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