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생태숲』 하필 이런 날씨에
연못 한 귀퉁이가 얼어붙기 시작합니다.
짙은 회색 하늘이 잔뜩 내려앉았고 연못 가장자리에선 누르스름해진 갈대와 억새들이 고개를 숙이며 숨죽이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바람이 코끝을 에이듯 스쳐 지날 때면 차라리 살얼음 낀 수면 아래에 갇혀있는 수초들이 따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그런 풍경을 바라보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새까맣게 익은 열매들을 떨어내지 못하고 굳건하게 부여잡고 있는 ‘콩배나무’입니다.
그런데 콩배나무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까만 열매를 매달고 있는 가지마다 잔뜩 붉어진 겨울눈들이 불쑥 불쑥 솟아나왔는데 이 사이에 하얀 꽃봉오리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 추위에 어쩌자고 꽃잎을 펼쳐버린 것인지, 하얀 꽃봉오리에 따뜻한 기운을 한껏 불어넣어준다 해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콩배나무는 종종 불시개화(不時開花)를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우연찮게 피어난 꽃이 어여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제때 피는 꽃이 풍성하고 활기 넘쳐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콩배나무의 꽃은 4-5월에 핍니다.
짧은 가지 끝마다 5-9송이씩 모여 핀 모습은 그렇게 풍성하고 화사할 수가 없지요.
열매는 10월에 녹갈색에서 흑색으로 익습니다.
열매는 먹을 수 있으며 한방에서는 녹리(鹿梨)라는 약재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묘목은 배나무의 대목으로 쓰입니다.
우연찮게 발견한 꽃 때문에 가지 끝마다 붉게 솟아난 겨울눈들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군요.
유난히 예민해 보이는 콩배나무에게 따뜻한 눈길이라도 한껏 건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