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지, 한 번 훼손되면 다시 복원 해도 그 가치는 상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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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지, 한 번 훼손되면 다시 복원 해도 그 가치는 상실.. "
  • 박대문
  • 승인 2019.02.2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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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전설이 되어 가는 착생란

전설이 되어 가는 착생란

차걸이란 (난초과) Oberonia japonica

 

 

지난 1월 일본 대마도 타테라산〔龍良山〕과 아리야케산〔有明山〕 식물탐사 산행에서 차걸이란을 만났습니다. 국내에서는 말만 들었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한국식물도감」에서만 보았던 식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비자림에 몇 개체 있다고 전하지만 인터넷에 뜨는 사진이 대부분 자생지 야생란이 아니라 채취해서 식물원 등에서 재배하는 사진일 것으로 여겨진다는 종(種)입니다.

아무튼 자생지가 극소수 있다고 해도 거의 만날 수 없는, 점차 전설이 되어 가고 있는 차걸이란을 원시림과 같은 대마도의 자생지에서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은 마치 사라져 가는 전설과 직면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들려주던 전설 속 옛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옛날 옛날 한 옛날 어느 깊은 산골에... ”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 시골 앞마당에 놓인 평상에 드러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동네 이야기꾼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듣다가 어느새 더위도 잊은 채 스르르 잠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들을 때마다 신기한, 체험하거나 보지 못한 전설 속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전설’의 사전풀이를 보니 「옛날부터 민간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주로 구전되며 어떤 공동체의 내력이나 자연물의 유래, 이상한 체험 따위를 소재로 한다.」로 나옵니다. 하지만 전설은 반드시 멀고 먼 옛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불과 수년 사이에 전설이 되어가고 있는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에 00란이 참 많이도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지금은 꽃은커녕 그 씨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러한 말을 어렵지 않게 듣습니다.

야생 호랑이도 야생 곰도 이 땅에서는 전설 속의 동물이 되어버렸지만, 식물 또한 그러한 종의 수가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기후 변화 등 자연현상의 변화가 아닌 사람의 무분별한 행동과 욕심에 의해 이러한 사태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식물 중에서도 특히 난, 그중에서도 착생란(着生蘭)이 전설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예로부터 난은 꽃이 소박하면서도 곱고 향이 은은하며 잎이 사철 푸르기에 선비의 기품이 있는 식물로 여겨 사군자의 하나로 고려 말부터 선비를 중심으로 한 시인 묵객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난이 일반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 사회 전반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난 애호가들의 전문적인 난 채취가 이루어졌으며 야생란이 시중에서 거래되었습니다. 그 결과 짧은 기간에 전국의 수많은 난들이 수난을 당하게 되자 정부에서는 멸종위기 희귀식물에 대한 법적 보호를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환경부에서는 「야생생물보호및관리에관한법률」에 따라 267종 (이중 식물은 88종)을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는 자에게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엄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만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약초와 나물 등 수많은 식물 중에서 특히 난초 종류가 가장 많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환경부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식물 88종 중 24종이 난초과 식물이며 그중에서도 석곡, 풍란 등 나무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착생란이 10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들 착생란은 나무나 바위에 붙어 자라기에 소위 목부작(木附作)이나 석부작(石附作)이라는 난 애호가의 상품이나 소장품 용도 그리고 식물원이나 개인 재배 목적으로 채취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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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붙어 거꾸로 자라며 꽃을 피우는 차걸이란.

 

차걸이란은 숲속의 큰 나무에 붙어서 밑을 향해 자랍니다. 크고 작은 여러 개체가 함께 붙어 포기를 이루며 납작한 잎이 좌우 2줄로 배열하며 끝이 뾰족하고 밑 부분이 줄기를 감쌉니다.

꽃은 4∼6월에 노란빛이 도는 연한 갈색으로 수상꽃차례를 이루며 땅을 향해 피는데 꽃이 자생란 꽃 중 가장 작은 종에 속해 꽃차례만 보이지 꽃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나무 줄기에 붙어 거꾸로 자라는 그 모양이 자동차에 장식용이나 손잡이로 쓰이는 차걸이를 닮아서 ‘차걸이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멸종위기에 내몰린 착생란의 대표적인 풍란, 석곡도 이미 1990년대 이후 아직 공식 확인된 자생지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자생지가 한 번 훼손되면 다시 복원한다고 해도 그 가치는 상실되고 맙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의 미선나무 자생지입니다. 1917년 이곳에서 최초 발견된 미선나무가 한국 특산 신종으로 밝혀졌고 1962년 정부는 이곳 용정리 자생지를 천연기념물 제14호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때부터 주민들이 미선나무를 대단한 것으로 여겨 너도나도 무단 채취하여 자생지가 훼손, 보존 가치를 잃게 되어 정부는 1969년에 천연기념물 목록에서 삭제하기에 이릅니다. 뒤늦게 진천군은 훼손된 자생지에 더 많은 미선나무를 심고 정성껏 가꾸었으나 이는 단순히 식재지 일뿐 자생지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잃었습니다.

대신에 정부는 2011년 새로 발견된 괴산군 장연면 송덕리 미선나무 자생지를 천연기념물 제147호로 새로 지정하여 미선나무 본고장으로 보호를 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식물의 자생지는 한 번 훼손되면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게 되며 그 가치와 의미는 복원되지 않습니다.

차걸이란의 경우 꽃이 매우 작아 관상 가치가 커 보이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관심이 없었던 식물도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면 부쩍 관심을 갖고 채취, 남획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식물은 자생지 여건이 매우 까다로워 미묘한 여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아무 데서나 살지 못하고 극히 한정된 지역에서만 자라기에 희귀종이 된 것입니다.

멸종위기에 있는 종을 보전하는 것은 생물 다양성 보전뿐만 아니라 종자 주권 확보를 위한 것으로 자생지 보호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생물자원을 이용한 나라는 그 자원을 제공한 나라와 이익을 나눠야 한다.’는 「나고야의정서」가 2018. 8. 18부터 시행되어 종자 주권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입니다.

관상 가치가 별로 없음에도 멸종위기종을 남몰래 채취, 이식하는 사람은 그 식물이 희귀한 식물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식물을 아는 식물 애호가가 왜 멸종위기종을 불법 채취, 이식하는 행위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합니다.

오직 자기만의 만족과 욕심만을 채우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아무 데서나 자랄 수 없기에 희귀종이 된 것이므로 옮겨 심으면 그 식물은 결국은 죽고 맙니다. 보기에 하찮은 식물 한두 포기 옮겨 심는 것 같지만 멸종위기에 있는 식물 한두 포기 옮겨 심는 행위는 그 종의 멸종을 초래하는 중차대한 불법행위입니다.

이 땅에서 그 종의 자생지를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 사는 세계로 치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일으키는 행위입니다. 국내에 자라고 있는 착생란인 금자란, 나도풍란, 비자란, 풍란, 석곡, 지네발란, 차걸이란, 콩짜개란, 탐라란, 혹난초 등 10종 모두가 멸종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멸종위기종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식물원은 물론 개인이 재배하고 있는 멸종위기 식물에 대해서도 반드시 그 출처를 밝히는 거래 증서 확인을 확실하게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착생란을 비롯한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을 잘 보전하고 관리함으로써 우리 눈앞에서 전설이 되어 사라져 가는 자생종의 멸종이 더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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