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편지)비자림로 삼나무 숲이 사라진다는 의미
상태바
(발행인편지)비자림로 삼나무 숲이 사라진다는 의미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9.03.26 1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절대로 모르는.. 인간의 생각, 나무의 생각
 

 

“살아 있는 모두는 이 땅의 주인이며, 모두가 잠시 머물다 가야 하는 여행객일 뿐이다(참개구리)

 

”자연엔 직선이 없다. 인간이 행한 농토나 건축물은 직선으로 표현되지만 그 밖의 모든 것은 곡선이고 부드러운 선들뿐이다.”(주엽나무)

 

자연변호사(Naturelawyer)인 남효창 (사)숲연구소 이사장은 그의 저서 ‘나는 숲으로 매일 출근한다“라는 책을 통해 나무와 숲의 메카니즘에 대해 아주 상세히 설명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절대로 모르는 숲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런 아름다운 숲을 만들기 나무들이 얼마나 힘겨운 전쟁을 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는 ”생태란 생물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각각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며, 그 각각의 역할에는 더 많이 또는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구분은 없다. 나름의 역할들이 균등하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이 직선적이라면, 자연의 생각은 곡선이요, 포물선이요, 둥근 원이다“라고 말합니다.

더욱이 ”나무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는 지구의 이치에 잘 순응하는 지상의 가장 대표적인 생물이지만 인류가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 방법은 나무처럼 감각으로 획득된 과학이 아니라 지각에만 의존하는 과학적 삶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고 전합니다.

그는 ”해가 남쪽으로 지는지 서쪽으로 지는지, 밤과 낮의 변화가 자전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인지조차도 알 필요가 없을 만큼 인류의 삶은 자연의 이치와는 먼 삶을 살아가고 있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풀벌레 소리를 듣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는 일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우리에겐 참으로 낯선 일“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는 ”현대인은 매우 편리하고, 또 세련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모두 과학기술 문명의 혜택이라 할 수 있지만 편리하고 세련된 삶을 위해 치뤄야 하는 불편한 대가는 분명 있어 이상기온이나 황사, 각종 피부 질환, 사스, 메르스와 같은 질병 등이 우리를 성가시게 하거나 때로는 위협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자연관에 대한 개념 변화와 생활태도 변화 없이는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더 우리의 삶을 압박해올 것“이라는 우려를 전합니다.

그게 ”바로 환경의 위기, 환경의 역습“이라며 ”이러한 위기 현상은 서서히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고 있다“고 걱정합니다.

 

도시의 삶에서 자연이 살아 있는 농촌으로 거주지를 옮기거나, 자녀를 위해 농촌이나 대안학교를 선택하기도 하고 우리가 먹는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으로 유기농산물을 선호하거나 거주하는 주거 공간 또한 친환경적인 재료를 선택하는 경향도 그런 이유로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단지 이러한 노력들이 환경의 역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대안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먹을거리와 주거 공간, 주변 자연환경 중 어느 하나가 오염되었다거나 불안전할 때 부분적으로 유기농 음식을 섭취한다고 해서, 내가 사는 주거 공간만 친환경적이라 해서 과연 건강한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과학기술 문명의 발전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전한 이 과학자는 ”모든 과학기술의 발전이 오로지 인간을 위한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 이 땅의 주인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전합니다.

특히 ‘환경’이란 개념과 ‘생태’란 개념에 대해서도 그는 ”환경이란 사전적 의미는 ‘나의 주변’ 내지는 ‘나를 둘러싼 살아 있거나(생물) 죽은(무생물) 모든 것’이다. 인간의 환경이란 인간을 뺀 또는 인간이 그 중심에 있고, 그 나머지 모든 주변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극히 자기중심, 즉 인간중심적 사고의 출발이다.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인간에게 유익한 것은 보존되고, 보호되거나 사육 또는 재배되어진다“고 강조합니다.

”인간을 위해 유익하다면, 모든 것은 개발되어진다. 그렇지 못한 것은 무관심 상태에 있거나 죽음을 당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생태’란 의미는 그와 다르다고 강조합니다.

”생태란 생물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각각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며, 그 각각의 역할에는 더 많이 또는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그와 같은 구분이 없다. 그 나름의 역할들이 균등하게 중요한 것이다. 생태계는 그러한 역할들이 함께 묶여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환경은 우리의 삶 깊숙이 있고, 생태는 먼 곳에 있다“고 전한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도시 서울의 주거 공간은 대부분 빽빽이 들어선 연립주택이나 고층 아파트다. 반면 서구의 주거 지역은 대부분 주택과 더불어 주변에는 늘 푸른 녹지와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과연 서로 다른 두 주거 공간에서의 삶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는 ”지난 200년이란 긴 세월 동안에 익숙해진 편리함과 비교 속도란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환경이란 곳에서 생태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라며 ”직선의 길이 아닌, 곡선의 길 위에서 때로는 원의 길 위에서 가끔은 나무를 어루만질 수 있는 여유를 부려보는 것이 생태적 삶이다. 가만히 자세히 그리고 가끔은 멈춰 바라보면 아름다운 것들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삶을 우리에게 이렇게 전합니다

”따뜻한 날 오후 신발을 벗고 숲길을 느긋하게, 여유롭게 걸으며, 물소리와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듣는다. 내 일터엔 절대 속도와 절대 경쟁이 늘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그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느림과 여유를 자연에서 보충한다“.

 

숲 전문가의 이같은 걱정 속에서도 제주에서는 지금 비자림로 도로 확장공사로 백년 이상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숲이 사라지고 있는 중입니다.

이곳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시민들이 전하는 내용을 보면 가히 충격적입니다.

숲은 우리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동물들에게는 삶의 터전이 되는 곳입니다.

이들 나무가 주는 혜택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지만 개발을 앞세운 폭력으로 제주도의 숲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숲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수많은 나무들이 서로 경쟁하며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과실이나 물과 공기 등 많은 것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개발론자들의 눈에는 그런 자연의 혜택들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스스로를 자연변호사라고 말하는 남효창 박사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산림생태학을 전공했습니다. 동 대학 산림환경정책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석사(1994년)와 박사(1998년) 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임업과학연구소 특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는 숲연구소를 설립해 이 땅에 숲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환경부 환경교육자문위원, 세계생명문화포럼 추진위원, 생태 체험 교육 전문지『애벌레』발행인, 한국휴양학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들에게 경고합니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수백년의 미래를 심는 것이며 우리의 미래를 심는 것이니만큼, 나무의 마음으로 그것이 깊이 뿌리내리고 숲을 이룰 수 있는 곳에 심어야 한다.

나무들은 나뭇잎의 크기 하나까지도 조율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것은 나무가 대대로 생명을 이어오면서 터득한 자기만의 지혜다.“

”때로 보잘 것 없게 보이는 나무 한 그루나 박새 한 마리도, 사실은 위대한 자연의 걸작품이며, 어느 순간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뿌리에게 거처할 곳을 빌려준 땅과, 호흡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기, 그리고 매일 이파리를 촉촉하게 적시는 새벽이슬을 통해 의미있는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자연환경을 지배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인간의 생각은 얼마나 교만한가?

인간이 개발하고 있는 과학기술은 모든 동식물들을 사멸시킬 수 있으며, 유전자를 조작하여 생태계를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오로지 빛을 이용해서 모든 생물을 먹여 살리는 위대한 광합성을 변함없이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이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않겠다고 파업이라도 하는 날이면, 우리 모두는 영락없이 삶을 마감해야 할 판이다.

아니 지금 인간의 행태로 봐서는 나무들이 스스로 파업하기 전에 숲이란 실체가 더 이상 기능을 못하게끔 몰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환경에 무지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이같은 숲에 대한 만행(?)이 언제까지 계속 돼야 합니까..

우리들은 나무를, 또는 숲을, 너무나 모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