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봐야 새봄이지..왜 이리도 설레발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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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봐야 새봄이지..왜 이리도 설레발치는가.."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19.03.28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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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꽃길 유랑 재촉하는 봄소식,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미나리아재비과, Eranthis byunsanensis B.Y.Sun

 

이 땅에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꽃 중의 하나인 야생화, 변산바람꽃이 드디어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봄마다 도지는 되풀이 꽃길 유랑의 신호탄인 셈입니다.


지난겨울은 눈도 오지 않고 건조하여 유난히도 황량하고 삭막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봄이 더욱더 기다려지기도 했습니다.

산에 가 봐야 꽃도 못 보는 겨울 한 철 지내다 보니 ‘봄’이라는 말만 들어도 귀가 번쩍 뜨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봄이 뭐고 왜 봄이라 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어원과 연유가 궁금해졌습니다.

‘봄’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비유적 언어 의미로는 ‘인생의 한창때’, ‘희망찬 앞날이나 행운’을 말하고 천문, 기상과 관련한 의미로는 ‘한 해의 네 철 가운데 첫째 철. 겨울과 여름 사이이며, 달로는 3~5월, 절기(節氣)로는 입춘부터 입하 전까지를 이른다.’라고 나옵니다.

그밖에 기상학적 의미로는 ‘일 평균 기온이 5℃ 이상으로 올라가 9일간 유지될 때, 그 첫 번째 날을 봄의 시작일로 정의한다.’고 합니다.

다시 의문이 생깁니다. ‘봄’이라는 어원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여기에도 몇 가지 설이 있었습니다. 정답은 없나 봅니다.

한국어의 어원이 르완다에서 비롯된다는 설에서부터 다양한 설이 떠도는데 나름 그럴듯한 이유 3가지를 보면 ①볕이 본격적으로 쬔다는 ‘볕’, ②불처럼 환하고 따뜻해진다는 ‘불’, ③새싹 등을 눈으로 본다는 ‘봄’을 어원으로 설명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불’과 ‘오다’의 명사형이 합한 ‘불+옴’이 ‘봄’이 되었다는 설과 ‘보다’라는 동사에 명사형 접미사 ‘옴’이 붙어 ‘봄’이 되었다고 하는 설이 설득력이 있어 보였는데 ‘불+옴’ 보다는 ‘보다+옴’이 ‘봄’이 되었다는 설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봄’을 뜻하는 한자, 춘(春)은 뽕나무 상(桑)자의 옛 상형문자와 해를 뜻하는 날 일(日)자의 옛 상형문자가 합하여 춘(春)이 되었다고 합니다. 즉 ‘따사한 봄 햇살을 받아 자라나는 뽕나무의 어린 싹을 볼 수 있는 날을 춘(春)이라 하였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언어가 과학이 아니고 사람 사는 세상에 따라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산물이다 보니 어원도 한 가지 설로 단정 지을 수 없나 봅니다.

봄이 왔습니다. 낙엽이 지고 앙상하고 발가벗은 나뭇가지에 푸른 새싹이 돋아나고 꽃망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얼어붙은 계곡과 땅이 녹아 실개천이 흐르고 물소리가 들리며 회색의 맨땅에 생명의 기운이 감돕니다.

여린 새싹아 흙을 뚫고 고개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이른 봄꽃은 성급하게 꽃대부터 밀어 올립니다. 여기저기 꽃소식이 바람 타고 풍문으로, 인터넷으로 전해 옵니다. 남쪽으로부터 북으로 하나둘 차례차례 전해 오는 봄소식입니다.

겨우내 기다림에 지친 꽃쟁이, 꽃 찾아 남쪽으로, 제주도로 꽃 마중을 떠나기도 합니다. 필자도 이미 제주도로, 대마도로 꽃 마중을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한 해 꽃 유랑의 본격적인 시작은 주변의 야생화가 피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롯됩니다.

이른 봄에 일찍 피는 꽃으로 복수초, 풍년화, 매화 등이 있습니다. 이들을 흔히 봄의 전령이라 합니다. 하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할 때 이들보다 더 먼저 피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변산바람꽃입니다.

풍년화, 매화 등은 야생화라기보다는 정원 등에 가꾸는 정원식물이며 복수초도 대부분 화단이나 정원에 많이 심어 가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산바람꽃은 깊고 외진 산속에 자라는 야생화로서 이른 봄에 꽃을 피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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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외진 산속에서 숨은 듯 다소곳이 피었다 지는 변산바람꽃.

   

아마도 중부 내륙에서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것이 변산바람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꽃은 2월에서 3월 사이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에 쉽게 보기 어렵습니다.

변산바람꽃은 비교적 최근에 알려진 우리 꽃입니다. 1993년 전북대학교 교수 선병윤이 변산반도에서 채집해 한국 특산종으로 발표하였기 때문에, 학명에 발견지인 변산과 그의 이름(B,Y.Sun)이 들어가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 식물 학명에 붙은 이름이 나카이 다케노신을 비롯한 외국인인데 최근에 국내 신종으로 발견된 덕에 우리 학자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다. 변산바람꽃이 외래종도 아닌데 이토록 늦게 발견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식물학자들이 식물조사를 할 때 대부분 꽃이 피기 시작한 4월부터 조사를 시작하는데 변산바람꽃은 그 이전에 꽃이 피었다가 져버려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거의 같은 무렵에 피는 너도바람꽃과 비슷해서 유심히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최근에는 개체 수는 적지만, 전북 마이산, 부안군, 경기도 수리산뿐만 아니라 서해안과 거리가 먼 경상북도 경주시, 울산시 등 일부 내륙지방, 전남 여수, 지리산, 무등산, 한라산에서도 발견되어 전국적으로 이 땅에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는 꽃이 되었습니다. 여름이면 잎이 지상부에서 없어집니다.


간혹 산에서 캐어 심는 경우가 있는데 십중팔구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생태 환경에 민감한 꽃입니다. 꽃도 특이합니다.

다섯 장의 하얀 꽃받침이 마치 꽃잎처럼 보이며 연두색 암술과 연한 보라색 수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빨판이 달린 연초록 깔때기 모양이 바로 꽃잎입니다. 파란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 깊고 외진 산속의 낙엽 더미에서 새어드는 봄볕을 가장 먼저 알아차립니다.

주변 풀과 나무가 새잎을 내서 햇볕을 가릴세라 이른 봄에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광합성으로 덩이뿌리에 영양분을 저장하고 사라집니다. 발 빠르고 부지런한 생존전략으로 대를 이어가는 꽃입니다.

‘바람의 딸’이라는 아네모네(Anemone) 속명을 지닌 바람꽃 종류는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가냘프게 흔들립니다.

이른 봄에 연약하고 희맑은 줄기를 내어 큼직한 꽃판으로 벌을 유인하려다 보니 실바람에도 쉼 없이 흔들립니다. 이런 모습의 바람꽃을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람의 신’ 제피로스(Zephyros)를 기다리는 아네모네의 애절함과 간절함이 깃든 것만 같아 더욱더 애잔해 보이면서도 새봄에 보는 첫 꽃인 만큼 앙증맞고 고운 꽃입니다.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봄의 전령, 제피로스와 아네모네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신비감을 더하는 변산바람꽃입니다.

이제는 겨우내 꽃 소식을 기다리던 꽃쟁이 임들이 한 해의 꽃 유랑 길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만나고 싶어 하는 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신화 속의 바람꽃을 찾아 짝사랑에 들뜬 애타는 마음으로 봄마다 되풀이하는 끝없는 꽃길 유랑이 올해에도 변산바람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변산바람꽃(2)

어제 본 네 모습
오늘 못 봤다 안달 대면
병이라 할랑가?


지난해 보았던
그 자리에 그 모습.
새로 봐야 새봄이지.
새봄 들어 못 봤다고
왜 이리도 설레발치는가.

깊고 외진 산속, 바람조차 차가운데
한 오라기 실낱 햇살에 치켜세운
희맑은 여린 몸매, 기다림의 봄소식!

알랑가 몰것네.
봄마다 도지는 되풀이 꽃길 유랑.
설레는 마음으로 종종대는
숨 가쁜 이 발길이
올해도 어김없이 너로부터 시작한다.


(2019. 3. 11 변산바람꽃을 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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