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自足)하면 그것이 곧 행복의 길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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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自足)하면 그것이 곧 행복의 길임을 ..
  • 박대문
  • 승인 2019.04.25 0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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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아야가}털조장나무 찾아 남도 천릿길

털조장나무 찾아 남도 천릿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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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조장나무 (녹나무과) 학명 Lindera sericea (Siebold & Zucc.) Blume

 

 

무등산국립공원 깃대종인 털조장나무의 꽃 핀 모습입니다. 노란 꽃송이에 둘러싸인 줄기 끝 잎눈이 마치 촛대의 촛불처럼 보입니다. 어떤 이는 잎눈이 노란 꽃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꽃만 놓고 보면 산수유나 야산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생강나무 꽃과 헷갈릴 수도 있는 꽃입니다. 털조장나무는 일본과 국내 남쪽에서만 자라는 희귀식물입니다. 내한성이 약해 광주광역시의 무등산을 중심으로 순천 조계산 및 그 주변의 낮은 계곡에서 자라며 전북 순창의 강천산에도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른 봄 꽃소식이 인터넷과 지인을 통해서 남쪽으로부터 전해오기 시작하면 겨울 동안 꽃에 눈이 고팠던 꽃쟁이들의 새봄 설렘이 시작됩니다. 기다림 끝에 복수초, 변산바람꽃, 노루귀, 산수유, 생강나무 등 이른 봄꽃을 대면하고 나니 불현듯 남쪽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털조장나무 꽃이 보고 싶었습니다. 꽃을 좋아하는 꽃쟁이 친구 중 네 명이 서로의 마음이 통했던지 무등산의 털조장나무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멀리 특정한 곳에만 있는 꽃을 찾아가려면 그 장소와 개화기에 대한 정보가 우선 필요합니다. 무등산의 털조장나무 자생지와 개화 시기를 알아보고자 지인의 소개를 받아 무등산국립공원에 전화했습니다.

현재 상태로 봐서 꽃은 4월 중순쯤 되어야 만개할 것 같다고 하면서 한 곳의 현재 꽃망울 상태의 사진을 스마트 폰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동행할 꽃쟁이들과 의논 끝에 털조장나무의 겨울눈도 함께 볼 겸 만개 시기보다 조금 일찍 가기로 했습니다.

다시 공원 측에 사진을 보내 준 장소를 구체적으로 알려 줄 수 있겠느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아무런 회신이 없었습니다. 서운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꽃쟁이 인구가 하도 많다보니 알려진 희귀종을 보려고 너도나도 많은 사람이 몰린 탓에 식물 보호를 위해 그러려니 했습니다.

이른 봄에 꽃 사진을 찍을 때, 삼각대, 랜턴, 가리개 등 소품을 사용하면서 사진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꽃 주변 환경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꽃쟁이들 간에도 특정 식물 장소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기도 합니다.

특히 작품 사진을 찍는답시고 여러 사람이 무리 지어 그럴듯한 모델 한두 송이를 대상으로 주변에 자리를 깔고 뭉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꽃 주변의 갓 자란 새싹을 밟고 주위를 초토화하는 경우를 필자 또한 수차례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발에 밟히는 키 작은 새싹 식물도 아닌 키가 큰 나무의 군락지인데 지인의 소개를 받아 전화했는데도 그렇게까지 숨겨야 하는가 하는 섭섭함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경로를 통해 그 장소를 파악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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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 끝마다 새순을 에워싸고 촛대의 촛불처럼 꽃들이 피어나고 있는 털조장나무
줄기 끝마다 새순을 에워싸고 촛대의 촛불처럼 꽃들이 피어나고 있는 털조장나무

 

   

드디어 꽃쟁이 일행 네 명이 아침 일찍 서울 SRT 수서역에서 만나 SRT를 타고 광주 무등산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광주송정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들어가 또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서 한참을 가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산길을 오르내리며 찾아가니 멀리서 희미하게 생강나무 같은 노란 꽃이 달린 나무가 보였습니다. 바로 털조장나무이었습니다.

털조장나무는 잎이 어긋나며 잎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가 밋밋합니다. 꽃은 생강나무보다 약 보름 늦은 4월 중에 핍니다.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산형꽃차례에 노란 꽃이 모여 달립니다. 암수딴그루라 하지만 최근에 간혹 암수한그루도 있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수꽃은 수술이 9개이고, 그중 안쪽 3개에는 선체가 좌우 1개씩 있고 암꽃은 수꽃보다 약간 작으며, 9개의 헛수술과 1개의 암술대가 있습니다. 생강나무처럼 향이 있으며 어린 가지가 녹색을 띠고 꽃 모양이 생강나무와 비슷하여 쉽게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잎 모양이 다르며 꽃과 잎눈 달린 모양에서 현저하게 차이가 납니다. 생강나무는 꽃이 줄기에 붙어 바로 피며 줄기 끝에만 잎눈이 있는데 털조장나무는 줄기에서도 작은 가지가 나와 꽃이 피고 꽃 가운데에 반드시 잎눈이 촛불처럼 달립니다.

서울에서 무등산까지 새벽부터 서둘러 내려와 어렵사리 털조장나무를 보고 나니 시장기가 들었습니다. 각자 준비해 온 빵 조각과 김밥으로 허기를 달래야만 했습니다. 목적한 대로 털조장나무를 만났으니 쉬엄쉬엄 산길을 걸으며 길마가지나무, 산자고 등 다른 봄꽃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봄날의 낮이 길다고 산속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만 했기에 왔던 것과 반대로 다시 버스, 지하철을 갈아타고 광주송정역에 도착했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역전에서 설렁탕으로 저녁을 급히 때운 후 SRT 귀경 고속철을 타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 기나긴 하루의 여정이었습니다.

고속철을 타고 서울로 오는 동안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꽃 한 송이 보고자 서울에서 남도 천릿길 무등산까지 가서 온종일 헤매야만 했던 하루였습니다.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도 않고, 장소를 알려주지도 않는 머나먼 산속을 찾아가, 점심을 간식으로 때우고 음식 맛 좋기로 이름난 광주광역시에 갔으면서도 남도의 맛을 즐겨보지도 못한 채 시간에 쫓겨 역전에서 설렁탕 한 그릇으로 저녁을 해결했습니다. 값비싼 SRT를 타고 서울역- 광주송정역을 오갔습니다. 이게 무슨 짓일까?

나는 오늘 과연 행복했는가? 행복이란 단어가 갑자기 서먹해졌습니다. 멀리 있는 아득하고 희미한 그림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만족하는가? 뭔가의 서운함과 긴 여정의 피로감, 변변하지 못한 점심과 저녁, 값비싼 고속철 운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 털조장나무 꽃을 찾고, 솜털 보송보송한 꽃을 직접 보고, 사진을 찍고, 확실히 인식할 수 있었다는 만족감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오늘 하루 일상에서 갑자기 득도(得道)한 듯한 흥취가 일었습니다. 행복감은 뭔가 막연하지만, 만족감은 자기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자족(自足)하면 그것이 곧 행복의 길임을 알 듯한 하루 여정이었습니다.

 

행복 술법(術法)

행복
항상 멀리 있는
잡히지 않는 파랑새.

만족
지금 손안에 있는
내가 만드는 자적(自適), 자족(自足)

행복 술법 따로 없네.
분수 알아 안분(安分)하니
나는 만족하네.

고로 행복하네.

(2019. 4월 광주광역시 무등산에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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