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이야기)안개 속에서 만난 울릉도 고추냉이, 원산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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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이야기)안개 속에서 만난 울릉도 고추냉이, 원산지는?
  • 박대문
  • 승인 2019.05.2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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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울릉도에만 자생하는 한국 특산식물 일본 와사비와 다른 종

안개 속에서 만난 울릉도 고추냉이, 원산지는?

고추냉이 (십지화과), Wasabia japonica (Miq.) Mat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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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던 울릉도 성인봉을 오르기로 하고 나리분지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새벽에 깨어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가뭄 끝에 내린 반가운 비이지만 산행길이 미끄러울까 봐 조바심이 나기도 했습니다.

빗줄기가 제법 거셌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아침이 되자 비가 자지러들어 실비처럼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전에 비가 갤 것이라는 기상예보를 믿고 산행길을 나섰습니다. 오래전부터 벼르고 벼른 성인봉 탐사 길인데 설사 비가 온다고 하더라도 그만둘 수 없는 일정이었습니다.

가느다란 실비가 오락가락하더니만 점차 날이 개는 듯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년 동안 식물탐사차 산행을 하면서도 매번 그날 하루 현지 일기를 예측하지 못해 걱정하며 오로지 TV 기상예보에만 의존하는 나 자신이 참 바보스럽게 여겨졌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 가기 전 우산을 가져가야 하는지 여부를 부모님께 여쭈면 하늘 보고 앞산 한번 휘둘러보고 나서 “오늘 날씨 괜찮다. 그냥 가거라.” 하시면 그 말씀이 거의 틀림이 없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가방끈 매본 적 없는 옛 어르신들의 일기 보는 지혜에 견주어보면 최고 학부를 나와 ‘지식 빵빵’이라고 자부하는 오늘의 우리들은 현장의 하루 일기도 예측 못 하니 청맹과니나 다름없습니다. 그만큼 자연을 가까이할 기회가 없고 과학과 기계에의 의존도가 높아 스스로 자연을 보고 느끼는 감이 무디어지고 자연과의 교감력이 퇴화한 탓입니다.

미물이라 여기는 쥐, 뱀, 새들도 지진을 미리 알고 대피하며 그해의 태풍 강도를 예측하여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연 속에 의존하며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어느 사이 자연 위에 군림하는 자연의 지배자가 된 듯한 착각 속에 빠져 자연성이 퇴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과 멀어져 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참을 걷는 사이 다행히 비가 그쳤습니다. 대신에 안개가 가득 끼어 운무 속에서 헤매야만 했습니다. 10m도 안 되는 시계 속에 산길을 걸으니 신비감도 들었습니다. 가렸다 펼치기를 반복하는 운무 사이로 성인봉 기슭의 야생화를 눈 맞춤하며 신비감 감도는 오월의 신록과 안개 속을 걸으니 온몸에 생기가 충만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알봉과 성인봉 사이 계곡을 타고 오르는 길에는 갓 피어나는 큰두루미꽃, 섬노루귀, 울릉제비꽃이 한창이었습니다. 가지마다 솟아나는 담록의 새싹들이 꽃처럼 아름다운 계절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연초록 숲길을 걸으면서도 쉴 새 없이 야생화를 찾는 일행의 눈길은 매섭게 작동을 합니다. 드디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습니다.

안개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계곡 아래의 한 무더기 풀꽃, 조심스레 내려가 보니 귀하디귀한 고추냉이가 튼실한 포기를 이루며 하얀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습니다. 울릉도에 몇 차례 왔지만, 꽃은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시기를 맞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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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봉 산행길에서 만난 고추냉이의 꽃

 

 

고추냉이의 일본 이름인 와사비(Wasabi)와 겨자(mustard)를 혼동하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음식의 매운맛을 내는 데에 우리의 재래 음식은 고추를 사용했지만 최근 생선회와 냉면 등에 와사비와 겨자가 사용됩니다.

와사비는 고추냉이의 뿌리를 말려 가루를 내서 녹색 물을 들이고 겨잣가루를 첨가하여 만든 것입니다. 겨자는 중앙아시아 원산인 노란 꽃이 피는 겨자의 씨를 말려서 가루를 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선회를 초장에 찍어 먹는데. 일본에서는 생선회를 먹을 때 간장에 와사비를 풀어서 찍어 먹습니다. 와사비 특유의 톡 쏘는 매운맛이 생선의 맛을 더욱더 좋게 해준다고 합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인 초밥(すし)을 만들 때도 와사비를 쓰는데, 이것은 와사비의 맛과 그 안에 있는 방부제 성분 때문에 생선의 변질을 막아주기 때문이라 합니다. 생선을 보관할 때에는 고추냉이의 잎을 같이 넣어두기도 했다고 합니다.

흔히 울릉도 고추냉이를 두고 일본인이 심은 종(種)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한국 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울릉도의 봉래폭포와 성인봉 일대의 계곡에 자생하고 있으며, 울릉도에만 자생하고 있는 한국 특산식물로 일본의 와사비와 다른 종이다. 산림청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 후보 종으로 지정되어 있다.’라고 명기 되어 있어 우리의 자생식물로 보입니다.

한편 ‘국립생물자원관’의 홈페이지 설명을 보면 ‘땅속줄기는 굵은 원기둥 모양이다. 땅속줄기를 갈아 매운맛이 나는 향신료 '와사비'를 만드는 식물로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향신료로 이용하는 대표적인 식물로서 유전적인 가치 때문에 해외반출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경상북도 울릉도에 나며, 러시아 사할린,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국내에서는) 울릉도에만 분포하고 개체 수도 많지 않으므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라고 기재하면서 말미에 ‘원산지에 대한 분류학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기재 되어 있습니다.

‘분류학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자생종이라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참으로 아리송합니다. 원산지 검토가 그토록 어려운 것인지? 필요하면 조사, 연구해야지 국가기관에서 언제까지 필요하다고만 운을 떼고 미룰 것인지 답답합니다.

혹여 일본인이 심은 종이라 하여 뽑아내자고 달려들까 봐 겁이 나기도 합니다. 하기야 나라의 존망이 걸린 촌각을 다투는 사태, 북한에서 쏘아 올린 발사체가 미사일인지 아닌지를 여러 날이 지나도 ‘분석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작금의 상황에 비하면 답답할 일도 아니긴 합니다만.

(2019. 5월 울릉도 성인봉 산행길에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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