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같은 다리에서 어떻게 그런 놀라운 힘이 나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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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같은 다리에서 어떻게 그런 놀라운 힘이 나오는 걸까.."
  • 고현준
  • 승인 2019.07.0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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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제남아동센터-서귀포터미널까지 7-1코스는 풍요로운 생물다양성의 길

 

 

보라색 엉겅퀴 꽃 위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황금색 바탕에 현란한 무늬를 자랑하는 호랑나비과 나비였다.

꽃 위에 앉아 꿀을 머금을 즈음, 세찬 바람이 불었다.

작은 강도의 바람이 아니었다.

모자가 날라갈 정도의 아주 센 바람이었는데..

날개를 황급히 접은 나비는 꽃 위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꽃과 나비와 바람의 흥미로운 모습은 꽤 오래 계속 됐다.

그리고 꿀을 다 딴 나비가 꽃 위를 날아오르자 바람이 그 나비를 아주 먼곳으로 보내버렸다.

조금 있다 보니 이번에는 표범나비 한 마리가 또 나타났다.

노랑색 바탕에 검은 점이 점점이 박힌 표범나비였다.

그 나비도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자 날개를 가운데로 나란히 접고 그 바람결을 잘 견디고 있었다.

나비의 그 실 같은 다리에서 어떻게 그런 놀라운 힘이 나오는 것일까.

 

 

올레7-1코스의 고근산 정상에 올라 지친 다리를 뻗고 그늘에서 잠시 쉴 때 목격한 바람을 대하는 나비의 생존방식이었다.

나비는 종류가 너무 많아 이름조차 찾아내기가 쉽지가 않다.

호랑나비 흰나비 부전나비 네발나비 팔랑나비 등이 있고..

호랑나비 하나만 해도 북한산나비 남방꽃줄나비 모시나비아과 등 종류가 많아 전문가가 아니면 나비를 말할 수조차 없다.

이조차 어떤 나비였는가 알아보려다 보니 새롭게 알아낸 이름들이다.

나비생태원에 따르면 나비목의 종류는 세계적으로 약 150,000여 종이며, 그 중에서 나비는 약 20,000여 종이고 나방은 약 130,000여 종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중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나비는 미접나비를 포함하여 5개 과 268종으로 남북으로 긴 지형으로 인해 면적에 비해 다양한 종의 나비를 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환경문제는 나비 등 다른 생명체에게도 그들의 존재를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동안 여러 번 하프올레를 걷는 동안 지난 6일 7-1코스의 반이 남은 제남아동복지센터에서 서귀포버스터미날까지 가는 구간처럼 그렇게 오래 걸었던 기억이 없다.

10시 47분에 시작된 올레걷기가 오후 5시(16시50분)가 다 될 때까지 걸었으니 6시간이 꼬박 걸린 힘겨운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끝까지 꼬닥꼬닥 걷기는 했으면서도 걷는 내내 힘든 날이었다.

날씨는 여름의 한가운데인 듯 무더웠고, 다리도 이날은 많이 무거웠다.

그래도 7-1코스의 하프코스의 경우 중간중간 숲속길을 걷도록 새로이 길을 낸 것으로 보여 그나마 쉬엄쉬엄 견디며 걸을 정도라 많은 도움이 됐다.

 

 

걷는 내내 개망초나 하늘타리, 수국, 셸비어(깨꽃) 등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길을 빛내고 있었고, 더욱이 고근산 정상 근처에는 예쁘기만한 비비추라는 꽃이 군락을 이뤄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많은 종류의 꽃들이 만개한 그런 모습 속에서 벌써, 감귤은 열매가 달려 가을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걷다가 만난 고바위격인 고근산을 오르기는 쉽지 않았지만..

다 오르고나니 정상에는 동그란 굼부리(분화구)가 다소곳 하고, 이 분화구를 한바퀴 돌아가도록 이어진 올레길은 명상의 길처럼 나무숲이 이어져 있었다.

그 오름 분화구 저편에는 백록담이 우뚝한..

정면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위용은 꼭대기에 걸린 하얀 구름과 어울려 반갑게 맞이했다.

 

 

 

올레길에서 오름을 오르는 일은 또 하나의 선물이다.

바닷길에는 오름이 없고..

바다가 주는 그 분위기가 선물이지만, 오름은 아주 힘들게 올라 주변을 다 살펴보고 편안히 내려오는 묘미가 있다.

그래서 오름에서 내려다보는 여러 풍경은 하나의 덤이다.

고근산을 내려와 들길 숲을 지나자 두 번째 나타난 숲은 거의 곶자왈 수준의 어두컴컴한 숲속 길로 이어졌다.

어두운 숲길을 걷는 동안 오른쪽으로는 가파른 절벽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 길을 빙 돌아 나오니 엉또폭포로 가는 길로 이어진다.

어두컴컴한 그 숲길은 엉또의 윗길을 걸어 나온 것이었다.

 

길에서 멀리 보이는 엉또의 웅장함..

가히 아마존의 모습처럼 거대한 나무군락이 이채롭다.

이날 힘든 발길은 나를 엉또폭포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게 했다.

어차피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코스이니 이번에는 폭포가 없는 엉또는 지나쳐 걷기로 했다.

엉또 입구까지 겨우 걸어 나와 중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걷기를 마무리하려 했다.

식당에 앉아 택시를 부르려 했지만 몇 군데 전화를 해 봐도 그곳까지 오겠다는 택시조차 없었다.

다시 걷는 수 밖에 없었다.

내려가다 보면 택시가 나타나려니 했다.

한 블록 정도의 길을 걸었을까.

오늘 목표로 했던 이날의 종점인 월드컵 경기장이 아주 가깝게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하고..또 쉬었다가..

어느 새 단번에 내려가면 닿을 듯한 거리까지 걸었다.

전에 걸을 때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한 기억이 있어 이번에는 올레리본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걸어서 그런지 이날은 종점까지 잘 찾아갈 수 있었다.

드디어 이날의 종점인 서귀포 버스터미널 앞, 몇 번이나 걸었던 길이지만 이날은 유독 새롭게 느껴지기만 했다.

어쩌면 다른 길로 찾아와서 그럴 것이었다. 그곳에는 올레안내센터도 함께 있었다.

스탬프를 찍고보니 택시정류장이 바로 코앞이었다.

그렇게 애타게 찾았던 택시가 그곳에는 줄을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 탓이긴 해도 힘겹게 걸었던 이날..

그나마 끝까지 걸을 수 있어서 스스로 대견해졌다.

만약 중간에 택시를 타게 됐다면 언젠가는 또 한 번 걸으려 다시 와야 하기 때문이다.

올레는 아무리 힘들어도 걷다보면 끝이 나온다는 것.

그래도 목표를 정하고 갈 수 있는 종점이 있다는 것.

이날은 검정 옷을 위 아래로 입고 2개의 지팡이까지 들고 걷는 온통 새까만 올레꾼을 한명 밖에 만나지 못했지만-사실 7-1코스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길을 아닌지 올레꾼이 많이 보이는 그런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지역도 야금야금 좁은 길을 넓혀가고 있었고 그렇게 넓혀진 곳에 별장처럼 주거지역이 하나둘씩 늘어난다는 것은 걱정스런 일이었다.

서귀포를 도시화한 거대한 아파트단지 등은 서귀포라는 아름다운 이름과 맞바꾼 폭력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숲이 많은 7-1코스에는 유독 새소리가 많이 들렸다.

모습을 볼 수 없는 이름모를 새들..

인간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 영롱한 아름다운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그리고..

길옆 작은 돌에는 나름 자기의 삶을 마련해가는 모습처럼, 돌길을 기어오르는 식물의 기하학적 무늬가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게 만들었다.

인생이란 여정도 힘들 때가 있지만 가다보면 시간이 다 해결해 주기도 하듯, 이날이야 말로 그냥 걷다보니-시간은 꽤 많이 걸렸지만-종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종점은 다시 다음 목적지를 찾아가는 시작점이다.

도달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나는 또 유유히 다음 올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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