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 같은 야생화.. 그래서 함박꽃은 천녀화(天女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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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 같은 야생화.. 그래서 함박꽃은 천녀화(天女花)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19.07.11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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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희맑고 환한 산중 미소 천사, 함박꽃나무

희맑고 환한 산중 미소 천사, 함박꽃나무

함박꽃나무 (목련과) Magnolia sieboldii K.Koch

 

 

경기 지방에서는 가장 높은 광주(廣州)산맥의 주봉을 이루며 38도선이 가로지르고 있는 화악산(1,468m)을 오릅니다. 정상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산세가 중후하고 높아 정상이 아니라도 그 일대에 귀한 꽃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진한 남청색 빛깔이 고운 금강초롱이며 닻꽃도 이곳 아니면 쉽게 만날 수 없습니다.

따가운 초여름 햇살을 등에 지고 화악산을 오르면 숨은 가쁘지만, 가슴이 설렙니다. 툭 터진 시야로 들어오는 초록 들판과 야산에서 만나지 못한 곱고 귀한 꽃을 보노라면 형언할 수 없는 나름의 희열이 있기 때문입니다.

쉬엄쉬엄 산길을 따라 걷자면 바리톤의 산비둘기 소리, 고음의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산속의 고요를 타고 맑게 들려옵니다. 스쳐 가는 꽃 한 송이 한 송이에 눈길을 줍니다.

산길의 개망초도 곱습니다. 꿀풀, 큰뱀무, 꽃쥐손이, 양지꽃, 물참대, 고광나무 등 야생초가 반겨줍니다. 참조팝나무꽃이 한창이어서 길 양쪽에 호위무사처럼 에워싼 꽃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산새 소리 고적한 꽃 숲길을 걷다가 함지박 같은 커다란 환한 미소로 반기는 희고 맑은 하얀 꽃, 함박꽃나무의 꽃을 만났습니다.

바로 함박꽃입니다. 인적 드문 숲속에서 화사하게 반겨 주는 참으로 고운 자태. 싱싱하게 미소 짓는 함박꽃에 생의 환희가 넘쳐나는 듯했습니다.

보는 이에게도 힘찬 정기가 뻗칠 듯하니 큼직하면서도 소박한 듯 화사한 하얀 꽃이 볼수록 정겹습니다.

목련은 이파리도 나지 않은 이른 봄에 휑뎅그렁하게 꽃송이 올려 잘난 체 고개 쳐들고 긴 겨울에 항거하듯 일제히 피어나서 불가항력의 어떤 기세에 짓밟힌 듯 일순에 사그라집니다.

목련과 달리 함박꽃은 긴긴 봄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달구고 달궈 키워낸 잎새에 살짝 숨어, 커다란 꽃송이가 다소곳이 고개 숙인 듯 아래를 향하여 핍니다.

녹음 짙어진 청산에 화사한 함박웃음을 주는 나날의 축복인 양 매일매일 몇 송이씩 두고두고 피워냅니다.

티 없이 고운 해말간 미소와 매끈한 수피가 귀하고 순수하고 기품 있는 규수의 자태를 간직한 선녀 같은 야생화입니다. 그래서 천녀화(天女花)라고도 부르나 봅니다.

환하게 반기는 천녀화(天女花), 함박꽃

 

   

함박꽃나무는 우리나라 각처의 깊은 산 중턱 골짜기에서 나는 낙엽 소교목입니다. 함박꽃나무는 함백이꽃, 함박이, 옥란, 천녀목란이라고도 합니다. 꽃은 하얗게 피는데 큼직하며 수술은 붉은빛이 돌며 꽃밥은 밝은 홍색이며 향기가 있습니다.

함박꽃나무를 북한에서는 ‘목란(木蘭)’이라 부르며 북한의 국화(國花)입니다. 김일성이 1964년 5월 황해북도의 어느 휴양소에 들렀을 때 그곳의 함박꽃나무를 보고 난(蘭)처럼 고결하고 향기롭다는 의미에서 목란(木蘭)이라 이름 짓고 나라꽃으로 삼게 했다고 합니다.

이후로,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무궁화를 국화로 여기고 사랑했던 북한 사람들은, 목란을 국화로 삼았으며 1991년 4월 10일 공식적으로 국화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목란이 북한에서는 국화이지만 국화 이상의 대접을 받는 꽃은 따로 있습니다. ‘김일성화’(영명 Kimilsungia)와 ‘김정일화’(영명 Kimjongilia)입니다.

‘김일성화’는 인도네시아 식물학자 분트(C. L. Bundt)에 의해 교배 육종된 덴드로비움 속(屬)의 원예품종으로 1965년 4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김일성에게 수카르노 대통령이 선물한 꽃입니다.

‘김정일화’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베고니아 속(屬)으로 1988년 2월 16일 김정일의 46세 생일 때 일본 식물학자 가모 모토테루(加茂元照)가 품종 개량한 것을 선물했던 꽃입니다.

해마다 2월과 4월이 되면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화 축전'이 열리며 부족한 에너지난 속에서도 조선중앙식물원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 약 40여 개 온실과 그 외 지역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며 애지중지 재배하고 있다 합니다.

국화이면서도 국화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북한의 목란, 한 나라의 상징인 국화가 한 개인을 상징하는 꽃에 밀려나 있지만, 귀한 대접을 받건 못 받건 의연한 자연 속 야생의 함박나무꽃은 오늘도 그 고운 자태를 간직한 채 높고 깊은 숲속에서 홀로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남북 간의 세상사 돌아가는 일도 함박나무꽃처럼 의연한 자세로 희고 맑고 환한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원해봅니다.


(2019. 6. 24 화악산에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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