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안으로 뚝뚝 떨어져 ‘그녀의 눈물’이라는 신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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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안으로 뚝뚝 떨어져 ‘그녀의 눈물’이라는 신화로..
  • 고현준
  • 승인 2019.08.15 2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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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제주올레10코스는 제주도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응축된 화석의 길

 

산방산 이야기

“옛날 500 장군이 있었는데 이들은 제주섬을 만든 설문대할망의 아들들로 주로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면서 살아나갔다. 하루는 500 장군의 맏형이 사냥이 제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 나머지 허공에다 대고 활시위를 당겨 분을 풀었다.

그런데 그 화살이 하늘을 꿰뚫고 날아가 옥황상제의 옆구리를 건드리고 말았다. 크게 노한 옥황상제가 홧김에 한라산 정상에 바위 산을 뽑아 던져 버렸는데, 뽑힌 자리에 생긴 것이 백록담이고 뽑아 던진 암봉이 날아가 사계리 마을 뒤편에 떨어졌는데 이게 바로 산방산이라 한다.“

 

제주올레 10코스는 산방산을 한바퀴 빙 돌며 산방산이 거대한 하나의 산이라는 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산 옆구리를 돌아가며 걷도록 둘레길로 만들어졌다.

이번에 걸어보니 예전에는 화순-용머리해안-사계리까지,, 형제섬이 보이는 해안도로를 따라 송악산 까지 이어지는 길이었으나 올레10코스의 용머리해안길은 코스에서 사라져 아쉬움을 줬다.

산방산 또한 오름 탐방이 금지돼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7호로 지정돼 2021년 12월31일까지 공개 제한지역으로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곳곳에 서 있었다

이곳 산방산 둘레길에는 예전에 추사가 걸었다는 추사유배길도 따로 안내돼 있었으나 이곳 그 화려했던 안내 시설물은 햇볕에 다 바래서 읽을 수조차 없도록 방치돼 있었다.

 

산방산은 신생대(新生代) 제3기에 화산회층(火山灰層) 및 화산사층(火山砂層)을 뚫고 해중에서부터 분출하면서 주변 지역과 함께 서서히 융기하여 현재와 같은 산 모양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백록담과 산방산은 그 생성 과정이나 시기가 전혀 다르지만 한라산 정상의 분화구와 둘레가 같고, 산방산의 암질과 백록담 외벽(남서벽)의 암질이 같은 조면암질로 이루어져 있다.

산방산에 있는 산방굴은 100여 평쯤 되는 동굴 안에 부처를 모시고 있어 ‘산방굴사’(山房窟寺)라고도 칭한다. 굴 내부 천장의 암벽 사이에서 떨어지는 물은 산방산을 지키는 여신 산방덕(山房德)이 흘리는 눈물이라는 전설도 있다.

 

산방덕 여신 전설(山房山 女神 傳說)

 

산방덕은 산방산(山房山)의 여신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산방산 암굴에서 태어나 인간 세상으로 나왔으나,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 실망하여 다시 산방산으로 들어간 뒤 스스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바위에서 쉴 새 없이 물방울이 떨어져서 바위 밑에 샘물을 이루었다.

이것을 사람들은 인간 세상의 죄악을 슬퍼하여 흘리는 '산방덕의 눈물'이라고 한다. 산방덕과 관련한 이야기는 지역이나 전승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양상을 보이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형태로 전해 오고 있다.

산방덕은 원래 산방산에 있는 굴 속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산방덕'이라고 부를 만큼 자의식이 강한 여성이었다.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의 인연을 거부하는 것은 산방덕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바위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위만큼 인간에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존재처럼 보이는 것도 없으니, 인간답지 않은 인간을 영원히 질책하는 의미에서 산방덕은 스스로 바위로 변한 것이다.

【전승 내용】

(1) 옛날 용모가 뛰어난 처녀가 산방산에 살면서 스스로 '산방덕(산방댁)'이라고 불렀다. 그 뒤 부자인 고승(高升)과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관원이 그를 겁탈하려 하자 산방산으로 들어가 스스로 돌로 변해 버렸다.

고승과 살던 유허지는 지금의 안덕면 화순리 마을 통천과원(洞泉果園)이라고 한다.

(2) 산방덕은 산방굴사의 여신으로서 인간계에 환생하여 고승과 가연을 맺어 살았다. 호색가인 주관이 그 미모를 듣고 고승에게 죄명을 둘러쓰게 하고 여인을 겁탈하려 하였다. 산방덕은 인간계에 환생한 것을 한탄하여 다시 암굴에 들어가 화석이 되었으며, 그녀의 솟아나는 눈물이 산방굴사의 물방울이 되어 샘으로 흐른다.

(3) 아랫마을 번내(현 화순리)에 고성목이란 천민 계층의 부자가 살았는데 미모의 산방덕을 첩으로 삼았다. 어느 날 관원이 고성목의 기세를 꺾고 산방덕을 차지할 계책을 꾸미는 것을 알아차린 산방덕은 훨훨 날아 산방산으로 들어가 산방산의 신이 되었다.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산방덕이의 전설이 동굴안에서 뚝뚝 떨어져 ‘그녀의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산방산..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해안가에서 용머리 퇴적층과 이어져 있는 조면암 형질의 종모양의 종상 화산체이다. 해발 345m에 이르는 산 자체가 거대한 용암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조면암질 용암의 절대연령치는 포타슘-아르곤 연대측정 결과 약 70~80만년에 이른다고 한다.(위키백과)

 

지난 10일은 제9호 태풍 레까마가 오기 전날이라 바람이 많이 불었다.

이날 고광언과 함께 둘이만 걸었던 10코스는 무더위와 싸우는 여름철 올레길이었으나 땀이 나면 센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줘 무리 없이 송악산까지 걸을 수 있었다.

시작점인 화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스탬프를 찍는데, 지난주에 수첩을 사려 들어갔던 올레안내소 아주머니가 나와 “더운데 수고하시라"고 격려해 주셨다.

화순금모래해변길을 걸으면서 고광언은 “이곳 모래가 좋아 예전에는 공사판에서 많이 불법으로 퍼다가 사용하면서 모래가 많이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이날 보니..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서인지 해수욕장에는 한사람도 수영을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물놀이시설과 그 옆에 마련된 족욕탕에는 사람이 꽤 있었다.

시원한 물이 여름을 적셔주는 느낌이 들었다.

한여름 해수욕장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아무리 태풍이 온다고 해도 참 쓸쓸한 일이다.

월라봉에 있는 유반석을 바라보는 무반석이 있는 작은 동산 입구에는 썩은다리 탐방로와 화순곶자왈 탐방로라는 안내판이 다음 코스를 안내했다.

이곳 작은 동산에 오르면 화순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걷다 보면 멀리 산방산과 용머리해안도 조망된다.

형제섬이 아스라이 다가오는 이곳에서는 가파도와 마라도는 물론 송악산까지 눈앞에 다가온다.

화순곶자왈로 들어서서 걷는데 유독 아름다운 꽃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예쁘게 핀 접시꽃이었다.

숲속에서 만난 이 꽃은 더위에 지친 우리들의 마음을 편히 해줬다.

 

 

 

산방산을 돌아가면서 걷도록 된 둘레길에는 절 등 종교시설이 2-3개 보였고 눈 앞에 펼쳐지는 산방산의 또 다른 절경이 산방산의 품격을 높이고 있었다.

마치 서울의 도봉산이나 북한산을 보는듯..여기저기 우뚝 우뚝 기묘한 모습으로 표정을 달리해 놀라움을 줬다.

거대한 돌덩어리들이 길가에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나오니 또 거북바위 하나가 누워있기도 했다.

산방산 옆구리를 따라 도는 이 둘레길은 올레길을 만끽하는 느낌을 준다.

둘레길을 걸어나와 마을 안길로 들어서니 그제서야 멀리 종모양이라는 산방산이 제 모습으로 나타났다.

 

 

 

산방산을 뒤로 하고 사계리마을에서 처음 만난 놀라운 비경은 큰 나무였다.

마을 입구에서 발견한 거대한 아름드리 폭낭(팽나무)..

나무둘레 3m 높이가 12m에 이른다는 이 나무의 수령은 놀랍게도 수령이 390년이라고 안내돼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신령스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품위로 가득 하다.

 

이 길을 따라 나오다 만난 용천수 큰물..

3년전 이곳을 걸을 때는 이 큰물에서 세수도 하고 안에 앉아 쉬기도 했었지만 이번에 보니 토사가 가득 쌓여 있어 보기에 흉물스러웠다.

안덕면에 물어보니 “용출되는 수량이 적어 방치된 상태”라고 했다.

“예전에 마을에서 목욕탕이라도 만들려고 했지만 물이 많이 나오지 않아 포기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밖에는 ‘용천수 큰물’이라는 안내판도 세우고 집까지 만들어 겉으로는 화려하게 꾸몄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심각한 상태였다.

이렇게 토사가 쌓이면 결국 물길을 막아버릴 것이고 그러면 이곳 용천수는 영원히 말라버릴 것이다.

안덕면에 보존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전했고 담당 팀장은 “토사라도 치우겠다”고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큰물이 있는 5km 지점이라는 곳을 지나는데..길가에 호박꽃이 작은 호박을 열매 맺고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돌담과 어우러져 그조차 나름 고운 자태로 나가왔다.

 

 

 

드디어 사계항까지 걸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그만 걷고 다음에 걸어도 된다고 하니..

고광언은 더 걷자고 해서.. 사계항 편의점에서 시원한 삼다수 한모금을 마시고, 송악산까지 가서 오늘의 올레걷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사계항은 코앞에 형제섬과 송악산이 눈에 들어오는 이곳 초입에 사람조형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내용을 읽어보니..

1991년 4월19일 제주에 도착한 고르마조프 러시아대통령이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20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사계리를 방문했다는 안내가 돼 있었다.

부인 라이샤 여사와 함께 이곳 사계리어촌계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을 직접 시식했다는 것.

이 조형물은 제주해녀와 라이야 여사의 부조물이었다.

 

 

 

사계리해안은 언제 봐도 신비롭기만 하다.

해안이 모두 그 옛날 이곳으로 흘러들었던 용암의 흔적으로 가득 했다.

이 사계리 해안은 코끼리와 사람의 발자국이 남아있는 자연화석박물관이기도 하다,

바다를 보니, 큰 바람을 타고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람을 타고 쏜살같이 바다로 나아가는 그 정경을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며 즐기고 있었다.

이들은 “바람이 더 많이 불어야 좋다”며 “이런 날 서핑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바닷가 해안에는 쓰레기가 가득 했다.

바다에 쌓여있는 쓰레기를 볼 때마다 바다환경지킴이들을 생각한다.

이곳처럼 쓰레기가 많이 쌓인 곳에는 당연히 바다지킴이들의 활동이 필요한 곳이다.

 

 

 

앞으로 해수옥장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계리해안..

하얀 파도를 배경으로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기만 한 곳.

아마 이곳을 해수욕장으로 만들게 되면 현재의 자연스런 화석같은 제주 본연의 아름다움은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개발만이 발전이라고 이를 능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개발주의자들은 모든 자연을 다 돈으로만 환산하게 되는 모양이다.

이곳처럼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은 개발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자연 그대로를 그대로 놓아두는 보전 우선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형제해안로라는 이름의 이 사계리 해안도로는 국토부가 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다.

이 해안도로는 제주도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응축돼 있다.

산과 바다, 그리고 먹먹하기만 한 자연, 하얀 파도..

바다색과 어우러진 산방산과 용암지대와 하얀 모래사장 등등..

해안도로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나는 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라고 지칭한다.

과연, 제주도의 해안도로 중 가장 아름다운 곳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지 송악산 입구에는 관광객들로 가득 했다.

의자에 앉아 잠시 쉬면서 보니, 송악산을 걸어서 오르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송악산 위로는 차를 타고 갈 수 없도록 해서인지 이곳이 더욱 빛나고 있는 셈이다.

제주도의 모든 해안도로도 이처럼 차량통행을 막고 사람들을 걷게 만들면 동네도 살고, 관광객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송악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코 짧지 않은 거리지만 송악산을 찾는 사람들은 송악의 끝까지 걷는다.

관광객들은 편하기보다는..

이처럼 발품을 팔아서라도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가려고 한다.

자연을 파괴하며 길을 넓히는 것만이 상책이 아니라는 점을 그들의 걷는 모습에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라산을 오르는 일도 마찬가지다.

걷기는 건강에도 매우 좋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산을 오른다.

제주도는 걸으면서 제주의 자연을 그대로 보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다,

 

 

 

우리는 송악산 입구에서 오늘의 올레걷기를 마쳤다.

정확히 오후 1시였다.

10시부터 걸었으니 꼭 3시간을 걸었다.

콜택시를 부르고 택시에 오르니..

공무원을 하다가 명퇴한 후 개인택시를 한다는 기사였다.

머리와 수염이 온통 하얗고 덥수룩한 그는 “면도를 하면 얼굴에 독이 올라 수염이 자라면 가위로 자른다”고 했다.

송악산 입구에서 화순까지 1만3천원..

그는 “사실 미터기로 계산하는게 맞지만 미터기로 계산한다고 하면 올 사람이 없다”며 이해를 구했다.

몹시도 더운 날이면 사실, 여름에 올레길을 걷는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올레걷기를 몇 달간 쉬기도 했다.

그러나 난전선생은 “올레는 여름이건 겨울이건 추울 때 더울 때 모두 걸어야 한다”며 올레는 사시사철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운 날..

올레는 숨이 막히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저런 사유로 올레 걷기를 멈출 수는 없다.

고광언은 이날 따라 “경찰생활을 하며 30여년동안 제주도는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올레를 걷다보면 올레가 아니면 전혀 만날 수 없는 길을 걷게 돼 제주를 더 많이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며 “올레를 만든 사람들이 참 위대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올레는 이처럼 걸어봐야 올레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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