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늙은 구름이 늙어 뼈된 송이 바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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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늙은 구름이 늙어 뼈된 송이 바위여!"
  • 고현준
  • 승인 2019.08.1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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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하프걷기)제주올레10코스, 송악산-하모체육공원..포효하는 동물의 왕 사자의 길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 말동 하여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 시조는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을 겪은 후 나이 70세가 넘어 청의 요구로 청나라로 인질로 끌려갈 때 김상헌이 쓴 글이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살았던 시대는 바로 그 난세 가운데서도 아주 특별한 난세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임진왜란(1592년)과 병자호란(1636년)이라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큰 전쟁을 온몸으로 관통했던 인물이었다.

특히 병자호란 때는 주화파(主和派) 최명길과 용호상박으로 격돌하면서 청(淸)에 대한 투쟁의 최선봉에 섰고, 치욕스럽게도 항복을 하게 되자 청나라의 서울 심양으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다 받았다.[이종문의 한시 산책]

 

청나라로 끌려가던 중, 김상헌은 의주에 도착하여 적장 용골대와 상면하게 되었는데 그는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그 옆에 누워서 대담하게 되었다.

용: 너의 왕이 남한산성에서 내려올 때 너는 왜 따르지 않았는가.

김: 나는 병이 들어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따라가지 못하였다.

용: 벼슬을 받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김: 늙고 병들었으므로 조정에서 벼슬을 주지 않았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느냐.

용: 네가 우리에게 수군을 보내지 말라고 임금에게 권한 것은 무슨 까닭이냐.

김: 수군을 보내지 말라고 임금에게 권했지만 조정에서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내 말 때문에 이루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임금과 신하 사이에 말한 것을 다른 나라 사람이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

이 대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김상헌은 70이 넘은 병든 몸으로도 적장의 위협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소신을 피력하였다.

의주를 거쳐 심양에 가서 청나라 형부관원의 심문에도 여전히 소신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므로 그들도 “참으로 어려운 노인이다”하면서 그 충절에 감탄하였다 한다. (산의품 블로그)

 

그런 그가 쓴 글이 다음에 소개하는 송악산이다.

 

송악산<松岳山>

 

由來此地 號瀛洲(유래차지 호영주)

예부터 이 땅을 영주라 불렀는데

 

環海名山 摠可遊(환해명산 총가유)

바다로 둘린 이름난 산 다 둘러 볼만해

 

天聳露臺 臨萬仞 (천용로대 임만인)

길 바닷가 하늘에 임한 노대

 

石盤雲骨 老千秋 (석반운골 노천추)

천년 늙은 구름이 늙어 뼈된 송이 바위여!

 

笙簫夜日 逢仙侶 (생소야일 봉선려)

밤낮 피리 부는 신선을 만날듯하고

 

簾幕春風 見蜃樓 (렴막춘풍 견신루)

주렴 휘장 봄바람 스치면 신기루가 보여

 

便學飄飄 成羽化 (편학표표 성우화 )

곧 표표히 날으는 신선의 술법을 배워

 

凌虛直欲 到蓬丘 (능허직욕 도봉구)

허공을 뚫고 올라 봉구에 다다를 듯 (산의품 발췌)

 

 

이 글은 남사록에 남아있다.

 

‘남사록’은 김상헌이 안무어사로서 임금과 비변사에서 내린 임무의 수행과 관련된 기록과, 제주도의 인문․자연환경 등이 자세하게 적혀 있고, 아울러 제주에서 느낀 감회를 표현한 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송시열은 서문에서 제주도의 풍토와 산물, 특히 공물의 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다.

서귀포시 지역과 관련된 내용은 1601년 9월~10월의 기록에서 보인다.

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첫 번째는 1601년 9월 22일 정청(政廳)에서 왕의 교서 반포 후 제주의 풍토(風土)를 기록하는 부분, 두 번째는 9월 24일과 25일 한라산 산신제를 거행하기 위해 한라산을 등반하며 적은 기록, 세 번째는 순무(巡撫) 일정 중 10월 13일부터 10월 17일까지의 기록이다.

첫 번째 김상헌은 김정의 『제주풍토록』, 임제의 『남명소승』, 최부의 『표해록』. 『지지』 등을 인용하여 제주의 건치연혁․풍속․기후․방언․토지상태 등을 기록하면서도 자신이 본 것과 다를 경우 그렇지 않다라고 하고 있다.

또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도 추가하여 기록했는데 당시 대정현의 일부에서 목화를 재배하고 있었다는 것과 별방(別防)에서 정의까지 사이에 염전이 몇 군데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한라산 등반 기록이다.

김상헌은 임금의 명을 받아 한라산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산을 오르면서 보았던 천불봉(千佛峯)ㆍ영곡(靈谷)ㆍ수행굴(修行窟)ㆍ칠성대(七星臺)ㆍ좌선암(坐禪巖)ㆍ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ㆍ존자암(尊者庵)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세 번째는 10월부터 성산 진해당에서 시작된 대정현과 정의현의 순력에 관한 기록이다.

김상헌의 순력은 정의현 객사, 서귀방호소, 천지연, 동해방호소, 산방굴, 대정현 객사, 대정향교, 송악산, 모슬포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때 점검했던 방어시설과 경승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601년 10월 성산 진해당에서 시작된 순력은 정의현 객사·서귀방호소·천지연·동해방호소·산방굴·대정현 객사·대정향교·송악산·모슬포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때 당시의 사회상과 경제상황·풍속·자연환경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남사록’은 17세기 초반 서귀포 지역의 자연환경, 풍속, 산물(産物), 방어시설, 경승 등을 고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이다.(향토문화전자대전)

 

 

올레를 걷다보면 이렇게 예기치 않은 역사와 함께, 비경들과도 만난다.

지난 17일은 제주올레10코스 중 송악산에서 하모리까지 걷는 코스였다.

오랜만에 홀로 나선 길,,

송악산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10분.

주차장에서는 이른 오전 이어서 그런지 텅텅 비어 있었다.

 

송악산은 언제 걸어도 절경과 비경이 넘치는 곳이다.

이날 올레를 걸으면서 사자를 2마리나 만났다.

하나의 사자는 송악산 입구에 바다를 향해 앉아 있는 장대한 사자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송악산을 기어오르는 사자상이었다.

 

 

송악산은, 오르는 길부터 나가는 길까지 눈길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비경이 넘친다.

처음에는 바다와 어우러진 산방산과 형제섬이 눈길을 사로잡는다면, 조금 더 오르면 나타나는 99봉이라는 송악산이 주는 웅장함이 더해진다.

이어지는 산책길은 더욱 환상적이다.

 

바다에 떠 있는 섬 2개.

가파도와 마라도가 선명하다.

이날은 시야가 좋지 않아 아주 가깝게는 보지 못했지만 눈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정도는 됐다.

 

파도가 우는 산이라는 이름의 송악산은 절이 절벽에 부딪쳐 우는 산 ‘절울이’이라고도 불린다.

송악산은 104m의 낮은 산이지만 동,서,남쪽 삼면이 바다로 시원하게 뻗어 나와 바다와 만나는 높이 10~15m의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룬다.

송악산은 주위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지며, 또한 이곳에는 화산 분출물인 송이(스코리아)가 많아 송오름 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남사록 등에는 송악산(松(소나무송)嶽(큰산악)山), 탐라순력도와 제주읍지에는 송악(松岳)이라고 표기돼있다.

또한 송악산은 ‘절울이’ 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파도의 방언인 ‘절’이 송악산에 부딪치면서 운다는 뜻이다. (제주전설이야기 때죽낭 블로그 발췌)

 

 

 

 

 

송악산 산책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길이다.

옆은 산이고, 옆은 또 바다다.

낚시꾼이 갯바위에서 고기를 잡고 있거나, 바다를 떠가는 배조차 그림처럼 나타난다.

이 길을 거의 벗어날 때쯤 나타나는 해안절경은 이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송악산을 벗어나오자 이제 다크투어리즘의 길로 이어진다.

말 한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광경은 이 길을 평화의 상징으로 만든다.

 

 

 

일제가 만든 고사포진지를 지나는데..

예전에는 고사포 잔해물이 남아 있었는데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이어진 숲속길을 다 나오니 제주4,3유적지 섯알오름이 나타났다.

추모각이 부족할 정도인 이곳에는 백조일손의 증거인멸의 장소라는 소개와 함께 당시 현장을 목격했던 이상숙 여사가 지원해서 재현된 것이라는 시설물이 전시돼 있었다.

예비검속 섯알오름 학살터라는 이름의 이곳에는 아직도 소녀와 함께 하는 파랑새라는 작품이 여전히 서 있었다.

 

 

 

 

 

이곳에서 중간스탬프를 찍었다.

10시55분이었다.

다음 길은 알뜨르비행장..

 

“‘알뜨르’는 ‘아래 있는 넓은 들’이라는 뜻의 제주어이다. 일본은 1929년부터 10년동안 이곳에 20만평 규모의 비행장을 건설하고 중일전쟁후 오무라의 해군 항공기지를 옮겨 와 40만평으로 확장했다“는 올레안내판이 이곳을 소개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어이지는 거대한 밭들..

이곳에 예전에는 군사공항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알뜨르에는 아직도 그 옛날 일본군이 사용했다는 전투기 격납고가 그대로 남아있다.

올레길은 이 비극의 알뜨르를 지나 해안도로로 이어진다.

 

 

길고 긴 밭길을 지나 하모헤수욕장이 보였을 때 항구로 예쁜 꽃 색깔을 한 배 한척이 들어오고 있었다.

가파도와 마라도를 오가는 선박이리라..

그렇게 도착한 하모해변..하모해수욕장은 현재 해수욕장이 폐쇄된 상태다.

모래가 자꾸 사라져 해수욕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는 모습이 화장실에서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랜 기간 관리를 안해서인지 화장실 안에 휴지는 하나도 없었고 화장실에서 사용한 물은 밖으로 줄줄 새고 있었다.

번지르르하기만 한 보기에 좋은 화장실 건물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보니 야영하는 사람도 많았고, 이 화장실 앞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이곳 화장실은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바로 옆 해변에는 자유롭개 뻗어나가는 줄기식물인 순비기나무가 너무나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왔다.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발길이어서일까..

넓게 뻗어가는 그 모습이 신비롭기만 했다.

 

 

 

매미는 줄기차게 울어대고..

하얀 포말이 부서지는 바닷가를 따라 걷다보니.. 드디어 하모체육공원 종점에 도착했다.

스탬프를 찍은 시간은 12시24분..

3시간을 조금 더 걸은 셈이다.

 

이곳에서 택시를 타서 송악산으로 갔다.

기사에게 “산이수동이 동이름이냐”고 물었다.

“동 이름이 아니라 이 동네이름이 산이수동”이라고 했다.

고영철 제주도문화유산답사회장은 “1600년대 중반에 설촌된 산이수동(山伊水洞)은 원래 이름이 ‘산이물동네’였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포구의 이름도 ‘산이물개’이다.

‘생이물’이라고도 불렸었는데 이를 한자로 표현하여 마을 이름을 ‘조수동(鳥水洞)’이라고도 하였다.

2009년 지금의 모습으로 단장하였는데 네모난 샘이 있고 2개의 둥근 물통을 만들었다. 주변은 기계로 잘 깎은 현무암을 전면에 깔았다. 샘 옆에는 물허벅 진 여인 석상을 세웠다.”고 소개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마을특성 및 실태조사(서귀포시) 자료에 따르면 “산이수동은 송악산 북쪽에 자리한 동네. 산 밑에서 물이 솟아나는데 이 샘을 산이물, 생이물 등으로 부르다가 370여 년 전 마을이 생겨나면서 동네이름 으로 불리게 됐다”고 전하고 있다.

 

산이물로 들어서는데..

송악산의 자태가 새롭게 다가왔다.

마치 사자가 앉아있는 형상으로 보였던 것이다.

사진을 몇 번 찍어봐도 여지없는 사자상이었다.

거대한 사자의 모습이었다.

 

송악산 산책길에서도 사자 한 마리가 산을 오르고 있더니..

그곳에서도 사자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혹시나 하여 제주도에 있는 사자상이 있는가 해서  모두 찾아보니..

한 블로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송악산 뒤쪽 측면에도 2개가 있었고 우도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올레를 걸으면서 발견한 2개의 사자상에 대해서는 언급한 글이 없었다.

이 모든 사자상이 또한, 애월해안도로의 포세이돈의 얼굴처럼 좋은 볼거리가 됐으면 한다.

제주올레10코스는 역사적으로는 김상헌이라는 인물을, 이번에 처음으로 사자 2마리를 찾은 것이 큰 보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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