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숨겨진 보물이..고려때 만든 '수산 한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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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숨겨진 보물이..고려때 만든 '수산 한 못'
  • 김평일 명예기자
  • 승인 2019.10.15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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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포커스)제주(탐라)가 원나라 지배 받을 때 몽고는 160필의 말을 수산평(넓은 들판)에 방목

 

 

제주애서 숨겨진 보물은 제주 전역에 산재하고 있는 크고 작은 못(연못)들이다.

제주는 지형 상으로 물이 고여 있는 큰 저수지도 없고 물이 흐르는 강도 없다.

물이 나오는 곳이 한정되어서 용천수가 나오는 해안가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마을들도 형성되었다.

 

제주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알려진 삼양, 고산, 대정, 종달, 천지연폭포주변 등은 용천수가 나오는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빼놓을 수 없는 물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모두가 가장 필요로 하는 기본 자원이다.

생명수인 물을 얻기 위한 조상들이 지혜는 제주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제주의 중산간에 형성된 마을에서는 물이 고이는 내창(시내)이나 물이 잘 빠지지 않는 곳에 땅을 파서 물이 고이게 하거나(못) 항아리에 빗물을 받아서 쓰기도 했다.

중산간 마을 주변에 크고 작은 못이 많이 만들어져 있는 것은 물을 얻기 위한 조상들이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제주에 인구가 증가하고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제주의 이곳저곳에 개발붐이 일어나 마을 주변에 산재해 있던 크고 작은 못(연못)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수도가 설치되고 물을 물 쓰듯 하는 시대에 살기 때문에 조상들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못(연못)이 벌레가 일고 모기의 서식터가 된다는 구실로 하나둘씩 없애버리고 있다.

조상들이 지혜로 이룩한 소중한 자원들을 후손들이 보존을 못할망정 훼손하는데 앞장을 서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요건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인식되면서 조상들이 어렵게 일구어 놓은 못(연못)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최근 제주의 마을에서 사라지던 못(연못)들이 재단장을 하고 있다.

마을에 있는 못(연못)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게 되어서 반가운 마음이 든다.

요즘 여행의 패턴(Pattem)은 과거와 다르게 다양화(多樣化)하는 추세다.

과거에 제주를 찾던 사람들은 폭포나 동굴 등 경승지를 찾았는데 요즘에는 한라산을 오르거나 제주 주변의 섬들, 숲길, 올레길, 마을길, 오름, 계곡, 문화재, 포구, 돌담, 동식물, 바닷속, 못(연못) 탐방 등 다양한 방향에서 제주의 가치를 찾아 제주를 탐방하고 여행을 하고 있다.

 

올레 길을 걷고 숲길에 매료되고 오름을 오르고 마른 하천(건천)인 냇가에도 사람들이 몰린다.

건천은 제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광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돌담에 푹 빠진 사람도 있고 제주의 나무와 풀, 동물, 바닷속 풍광 등으로 제주를 자주 찾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 제주 마을의 형성과 못(연못)에 관심을 갖고 제주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한적한 곳에 있어서 제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못(연못)을 찾아 여행담을 SNS 등에 올려서 제주의 숨은 비경을 알리고 한다.

그중 한곳인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있는 수산한못에 대한 내용 일부를 옮겨 본다.

 

"제주를 자주 오가다 보니 주변 지역명에 익숙해졌다.

그중 한 곳이 수산리다.

매번 지나다니기만 했지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SNS에서 수산한못이라는 곳을 알게 됐다.

제주에 ‘수산한못’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수상한 못'이라고 알아듣는다.

그 말도 크게 틀려 보이진 않는다.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다 제주에서 연못이나 호수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수산한못은 겉보기엔 고요한 저수지 같지만 역사적으로 오래된 곳이다.

1273년 고려 후기에 일어난 삼별초 항쟁으로 여몽연합군이 고려를 진압하게 된다.

이후 이곳에 일본 정벌을 위해 군마를 키울 목적으로 1276년 수산평에 ‘탐라 목장'을 설치했다고 한다.

수산한못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한 못의 ‘한'은 크다는 뜻이라고 한다.

지금은 공원처럼 주변을 정리해 쉬었다 갈 수 있는 정자와 벤치도 마련됐지만 한적해 함께한 일행 외에는 산책 나온 마을 분들을 마주친 게 전부였다."

 

 

 

제주에서 물이 고여 있는 저수지나 못(연못)에서 한라산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가 않다.

많지 않은 못(연못)에서 한라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못(연못)이 수산한못이다.

수산한못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인공 못(연못)이다.

 

수산한못이 만들어진 때는 고려시대이다.

13세기 몽고는 고려를 점령하고 제주도에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를 설치하여 100여 년 동안 제주를 다스렸다.

'탐라총관부'는 몽고가 1273년(원종 14) 제주도에 들어간 삼별초의 잔여세력을 진압하고 '탐라국초토사'를 두었는데, 이를 1275년(충렬왕 1)에 개칭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284년 '탐라국안무사(耽羅國安撫司)'가 설치되면서 '탐라국초토사'는 폐지되었고 1300년 '탐라군민총관부'로 이름을 바뀌어 불리다가 그후 탐라가 고려에 복속되면서 “만호부”가 설치되고 '탐라만호부'로 대치되었다.

 

몽고는 제주에서 말을 기르고 몽고의 일본정벌을 위한 병참기지 역할을 수행하게 하였는데 원나라가 쇠퇴하자 고려 공민왕23년(1374년) 최영 장군이 제주도에 내려와 몽고군을 토벌하면서 100년에 가까운 몽고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몽고가 제주를 지배할 때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로부터 지금의 조랑말(제주마 품종)이 유입되었다.

당시 제주(탐라)는 고려로부터 분리돼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는데 몽고는 160필의 말을 수산평(넓은 들판이라는 뜻)에 방목하였다고 한다.

 

말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저수지가 필요하므로 이 때 조성된 연못이 수산한못이다.

몽고의 지배가 끝난 후 수산한못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흔적만 남아 있었는데 2011년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못 주변 산책길을 걷노라면 못(연못)이 주는 아름다운 풍광과 신비스러움에 사람들을 매혹한다.

제주는 비가 많이 올 때만 들판에 물이 고이는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못(연못)이 아니고 인공으로 만든 수산한못에 물이 고이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점은 신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말들이 목을 축이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수산한못이 변신을 했다.

서귀포시 성산읍은 그동안 방치돼 왔던 “수산한못”을 사업비 5천만원을 들여 2011.9월 원형대로 복원했다.

수산한못이 빗물에 의해 토사가 유입돼 못(연못)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했는데 제방을 보수하고 식수통 설치, 잔디 식재, 우마 방역 장소 설치 및 연못내 토사를 제거해 연못을 복원했다.

"수산한못“ 복원은 자연생태를 원상대로 복원했다는데 의의가 있지만 더 나아가서는 과거 말 사육과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문화유산으로의 보존 가치가 높고, 인근의 수산굴과 마방목지인 수산 초원과 연계하면 관광소득원으로도 이용 될 수 있으므로 이에 알맞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원래의 자연습지 상태로 되돌아간 못(연못)을 재화를 들여서 복원한 것이 또 다른 자연생태습지 파괴가 아닌지 하는 질책도 쏟아졌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복원'일수도, '파괴'일수도 있다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겠다.

요즘 트렌드가 자연 그대로를 인데 지나치게 인위적인 모습으로 복원하는데 대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따가운 일침이기도 하다.

 

 

 

 

(이 기사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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