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는 마을과 자연을 찾아 스스로의 마음을 순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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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는 마을과 자연을 찾아 스스로의 마음을 순례한다.."
  • 고현준
  • 승인 2019.10.2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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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13코스 용수포구-낙천리 의자마을, 시간이 멈춘 순례자의 우정의 길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순례자를 보면 반드시 오셋다이(대접)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셨어. 그건 이 섬의 오랜 전통이야. 그러니 기쁘게 받아줬으면 좋겠어."

처음에 순례를 시작할 때는 헨로들이 특별하게 보였는데, 여행 막바지에 이르면서는 순례자들에게 정성껏 오셋다이를 베푸는 극진한 마음들이 더 특별하고 인상적이었다.

시코쿠에 오기 전 몇 년간 나는 어둠 속에 있었다.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않고, 체중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무언가 노력하기도 전에 포기하곤 해서 가슴이 텅 비어 있었다. 그간 잃어버렸던 빛 하나가 다시 가슴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1,200km, 45일, 20kg 배낭을 메고 걸었던 순례길은 걷기 좋은 산길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 포장도로, 어둠을 품은 좁은 터널, 뜨거운 태양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들판, 아찔한 해안가 절벽 등 다양한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 길은 굴곡진 내 삶과도 닮아 있었다. 때로는 노숙을 하며 배고픔과 통증, 추위에 맞서야 했지만 나는 해냈다. 나는 혼자 출발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끝까지 걸어낼 수 있었다. 나이, 국적, 직업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런 대가 없이 서로 나누는 마음만이 길 위에 존재했다.

내가 순례를 통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긍정적인 생각과 손톱만큼의 작은 희망이라도 그것을 믿고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순례자들은 이 길을 다 걷고 결원을 한 뒤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순례길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 발 더 나아갈 힘을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기는 내게 풍경처럼 자리 잡은 소중한 순간의 인연들을 담고 있다. 누군가에게 그 인연이 또 다시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누군가를 도우며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죽음이 순례길을 걷도록 이끌었지만, 지금은 풍요로운 마음을 나누기 위해 이 길을 걷는다. 88개 사찰을 도는 것만이 순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코쿠는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 인생이라는 길에 발을 딛고 걷게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발을 내딛고 있는 일상에서도 나의 순례는 계속되고 있다. -시코쿠를 걷는 여자(최상희 저)

 

 

 

제주올레13코스 시작점에는 ‘제주올레-시코쿠 오헨로 우정의 길’이라는 표지판이 하나 서 있다.

 

일본의 대표 고유 문화인 시코쿠 영지 88개소 순례길 ‘헨로길’ 코스 중 특히 자연의 매력이 빼어난 4개의 구간과 우정의 길로 맺어졌다.

총 길이 1400km에 달하는 ‘헨로길’은 홍법대사가 세운 시코쿠 내 88개 절을 찾아 순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800년대부터 걷기 시작한 역사적인 길이다.

또한 시코쿠 순례의 길은 풍부한 자연과 역사, 문화를 동시에 접하며 심신을 새롭게 하는 치유의 길로 재조명 받고 있으며, 사계절 내내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아름다운 식생과 더불어 따뜻한 시코쿠 사람들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이 시코쿠 오헨로 길은 최상희 라는 분이 쓴 ‘시코쿠를 걷는 여자’라는 제목의 책으로 또 유명해졌다.

위의 소개한 글도 그가 쓴 글 중의 일부다.

지난 26일은 가을을 맞아 시작점에서는 차가워진 날씨를 몸으로 느끼며 걷기 시작했지만 오후가 되니 날씨가 많이 풀려 걷기에는 너무 좋은 날씨였다.

 

 

 

절부암에서 시작하는 13코스는 중간 스탬프가 놓여있는 낙천리의 아홉굿 마을까지 바다가 보이지 않는 들길을 주로 걷는 길이다.

용수리마을로 처음 들어섰을 때 개발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시간이 멈춘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옛날 모습 그대로인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마을의 발전이라는 것이 지붕을 겨우 양철지붕으로 몇 개 바꾼 것이 전부일 정도로 마을 곳곳이 지난 몇 년간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영험해 보이는 초입의 웅장하게 날개를 편 나무 몇 개가 이 마을을 상징하고 있을 뿐이고, 골목길에 숨어있듯 나타난 대한예수교 장로회 라는 오래된 교회 건물이 이 마을의 현재를 말하는 듯 했다.

 

 

그나마 옛 집을 그대로 두고 하얀색으로 벽만 덧칠해 놓은 작은 갤러리 카페 하나가 정겹게 느껴졌다.

이 마을을 지나니 이제부터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들판이다.

중간에서 만난 순례자의 교회는 예전에 홀로 기도할 수 있는 교회라는 곳으로 알려진 곳.

아주 조그만 건물 하나가 새 단장 중이었다.

이 작은 교회는 좁은 문이라는 대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도록 돼 있었지만 한 젊은 남자가 홀로 부지런히 벽돌을 차에서 내리며 보수공사를 하는 중이었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용수저수지가 나타났다.

이 저수지는 예전에 가 본적이 없어서 한번 뚝 위로 올라가 봤다.

아직 철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드넓기만 한 저수지는 과연 장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을 억새의 흔들림이 수초들과 함께 물이 넘쳐나는 광경은 마음의 평화를 주기까지 한다.

길은 하얀 소독제가 가득 뿌려져 있는 길..

용수저수지 바로 입구에 기왓집이 한 채 서 있어 어떤 집인가 들여다 봤으나 마을에서 쓰는 건물인지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어지는 저수지 옆길로 걸으면서 보니..올레길이 바뀐 듯 이 길은 처음 걸어보는 길이었다.

낚시꾼도 보였고 수초 제거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분주했다.

용수리저수지를 따라 걷는 길은 그렇게 호젓하기만 했다.

 

 

 

 

용수저수지

1957년에 재방을 쌓아 조성한 저수지로 인근 논에 물을 대는 용도로 유용하게 활용돼 왔다. 이곳의 소나무숲과 갈대, 부들 군락지는 겨울을 지내러 오는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더 유명하다.(올레표지판)

 

이곳에 대한 설명을 보고 다시 하늘을 보니 하얀 구름과 함께 청량한 가을이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

이 길을 다 걸어 나와, 큰 길을 넘어 특전사 수필로 향하는 길 입구에 나무 의자가 줄 지어 만들어져 있었다.

이 나무 의자는 이 지역 곳곳에 다른 숲길에도 놓여 징검다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여러 곳에 다양한 용도로 놓여져 있었다.

 

 

 

특전사 숲길은 제주도에 주둔하던 제13 공수여단의 병사들이 제주올레를 도와 낸 숲길로 알려져 있다. 50여명의 특전사 대원들이 이틀간 총길이 3킬로미터, 7개 구간에 걸쳐 사라진 숲길을 복원하고 정비했다는 설명이 쓰여져 있다.

이곳 초입에 의자가 하나 여전히 나그네를 반기듯 외롭게 놓여있다.

예전에는 이곳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히기도 했는데..

이 특전사숲길을 다 나오니 5km 구간이라는 안내가 돼 있고 고목숲길, 고사리숲길이 계속 이어진다.

특전사숲길을 다 걸어나와 고사리숲길을 향해 걸을 때 올레길을 홀로 걷는 한 청년과 함께 길을 걷게 됐다,

서울에서 내려와 한달간 살면서 올레길 완주에 나선 청년이었다.

 

 

 

 

이날 일주일 때 7코스부터 걷고 있다는 고홍일씨(30세).

“올레길을 걸으면서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면서 “처음으로 말을 나눠본다”며 반가워했다.

이 청년의 직업을 물어보니 "건축구조를 공부했으며 호주유학까지 하고 한국에 와서 일을 하다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내년에 독일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쉬다보니 낭비하는 시간이 많아져 독일로 가기 전에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 싶어 올레를 걷자고 마음먹었다”는 것.

우리 둘은 한경면 청년들이 올레꾼을 위해 마련해 놓았다가 지금은 없어진 무인카페 앞 의자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올레를 걷다보니 올해 퇴직한 아버지와 함께 꼭 올레를 걷고 싶다”며 “지난 번에 제주에 왔을 때는 차를 빌려 다니느라 유명지만 찾아다녔지만 남는 게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혼자 올레를 걸어보니 정말 제주도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걸 느꼈다”며 올레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루에 한 코스씩 걸으며 잠은 도착한 곳에서 숙소를 정하고 쉬고 다음 날 또 걷고 있다”고 했다.

 

고향은 아니지만 제주 고씨라는 말에 삼성혈도 가 보고, 혼인지도 올레길에 있으니 가 보라고 권한 뒤 성산지역 숙소는 탐모라여행자센터에 가 보도록 소개해주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우리가 도착한 중간스탬프가 있는 목적지인 낙천리 의자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는 “혼자 올레를 걸을 때는 시간이 정말 가지 않아 힘들었는데 함께 얘기하며 걸으며 이곳까지 오니 금방 온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의자마을 탁상에 앉아 준비해간 김밥을 나눠먹으며 나는 그의 장도를 격려해 줬고 그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나는 뒤로, 그는 다시 앞으로..

잠시 같은 길을 걸었던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고, 그의 미래를 보는 것 같은 그 헤어짐이 못내 아쉽긴 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나는 젊은 그에게 “나이가 들어보니 우리가 사는 인생에서 10년이란 세월은 아무 것도 아니다. 독일에 가면 선진국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배우고 돌아오도록 해라.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라”라고 말했던 것 같다.

올레를 걸으면서 만나는 인연은 실로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지는 아주 작은 만남이지만 그 인연으로 인해 역사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사실 올레를 걸으면서 사람을 만나도 서로 서먹한 인사를 나눌 뿐, 그도 나도 대화를 나눌 만한 분위기가 아니라면 스쳐 지나가는 올레꾼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날 만난 고홍일 씨는 드물게 만난 인연이라 소중히 소개하고 싶었다.

그와 함께 걸으면서 꾸지뽕 열매도 따 먹고 볼레도 따 먹고 길가 땡감과 남의 집에 빨갛게 익은 대추도 따 먹었는데..

그는 “자기는 걷기만 했지 도시에 살아서 아무 것도 몰라 먹어보지 못했다”면서 야생의 여행을 즐거워했다.

인생 뭐 있나..즐겁게 또, 매일 열심히 살면 되지..

그러다 힘들어지면 올레라도 걷고..그러다보면 또 다른 해결책도 나오는 법이다.

 

 

이날 용수포구에서 10시5분에 출발하여 낙천리 의자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13시20분이었다.

3시간여 즐겁게 걸으며 오랜만에 올레꾼과 함께 대화까지 했다.

세계의 많은 트레일코스에는 순례의 길이라는 이름이 많이 붙는다.

제주올레는 마을과 자연을 찾아 스스로의 마음을 순례하는 길이다.

올레를 걷는 많은 사람들은 올레길에서 제주를 더 많이 발견하고 제주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된다고 전한다.

올레가 제주를 더 많이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올레를 걷지 않고서는 제주를 알았다고, 또는 제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올레를 걸어야 이제 제주를 조금 본 것 같다고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제주올레가 올레꾼들만 걷는 길이 아니라야 하는 이유다.

제주올레는 가장 먼저 제주사람이 다 걸어봐야 한다. 그래야 제주가 달리 보이고 제주를 지켜낼 수 있다.

올레를 걸으면서 육지에서 오는 사람보다 제주에서 걷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상상하면서 걷는다

그러나 아직 제주올레길은 너무나 한적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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