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라는 돌,사람들이 못하는 일은 몸을 굽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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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라는 돌,사람들이 못하는 일은 몸을 굽히는 일..”
  • 고현준
  • 승인 2019.11.1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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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올레13코스, 낙천리 의자마을-저지리마을회관..음식이 맛있는 겸손의 길..

 

 

탈무드에 전해 오는 겸손에 대한 얘기가 있다.

 

하시디즘의 창시자인 이스라엘 벤 엘리젤(바알 셈 토브)은 이러한 말을 써서 후세에 남겼다는 이야기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진리라는 것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것은 마치 길에 굴러다니는 돌처럼 흔한 것입니까?”

“그렇다. 그러니 누구나 주울 수가 있는거야”

“그러면 왜 사람들이 그것을 줍지 않을까요?”

 

제자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엘리젤은 이렇게 대답했다.

 

“진리라는 돌을 주우려면 몸을 굽혀야 하네. 사람들이 못하는 일은 몸을 굽히는 일이야..”

바알 셈이란 신으로부터 특별한 힘이 주어진 사람에게 부여된 칭호였다.

그는 1만명의 헌신적인 재자를 거느렸고, 18세기에 동유럽에서 활약한 유대인 랍비였다.

 

한편 하시디즘이란 18세기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유대교도 사이에 일어난 신비주의적 경향의 신앙 부흥 운동으로 폴란드의 광부였던 이스라엘 벤 엘리에제르(Israel ben Eliezer)에 의해 창시되었다.

 

 

마을 곳곳에 1천개의 의자가 놓여있다는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 아홉굿마을은 경이로운 곳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마다 다양한 색깔을 한 특이한 의자를 놓아 특별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낙천리의 아홉굿 마을을 상징하게 된 의자공원..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에 걸쳐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1000개의 의자를 조성하고 2009년 7월에 전국의자닉네임공모를 통해 우수작 100명을 선정, 닉네임 새김작업 후 이들을 초청해 2009년 7월 31일 마을공원 선포식을 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또 아홉굿연못이라 불리는 곳도 있다.

‘아홉굿’이란 과거 풀무업(대장간)이 성행해 쇳물을 담아 솥, 쟁기 등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흙을 채취하면서 9개의 연못이 생겨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명성을 크게 누리지는 못해서인지 간단한 식음료를 판매하던 의자공원 휴게시설인 수다뜰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지난 번 겨울에 홀로 걸을 때 이곳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고 군고구마도 얻어먹은 적이 있어서 아쉬운 마음이 컸다.

 

지난 2일은 13코스 하프코스인 낙천리 의자마을에서 저지리 마을주민센터까지 걷는 올레걷기에 나섰다.

의자마을 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10시57분..

스탬프를 찍고 보니...

올레걷기에 나선 외국인 부부 모습이 보였다. 이들은 저지오름 정상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인사를 하고 의자공원을 관통하며 길을 지나는데 공원입구에 아홉곳 테마마을 안내판이 하나 서 있었다.

2003년에 테마마을로 지정됐으며 그 아홉굿 특색으로 구색, 구주, 구경이라는 단어가 눈길을 끄는 안내판이었다.

그래서 찾아본 낙천리가 소개하는 마을 소개 내용을 전한다.

 

 

낙천 아홉굿마을

 

“낙천구경”, “낙천구주”, “낙천구색” 들어보셨나요?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 아홉굿마을에는 아홉 가지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밤이면 풀벌레가 노래하고 장수풍뎅이가 창문으로 날아와 노크하는 천혜의 청정마을 낙천아홉굿마을.

아홉굿마을의 ‘굿’은 샘이라는 제주어입니다.

낙천리에는 아홉 개의 샘(굿)이 있습니다. 더불어 아홉 가지의 좋은(good)것이 있어 즐거운 마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고즈넉한 풍경과 아홉 가지의 즐거움을 만끽하시려면 낙천아홉굿마을로 놀러오세요.

 

마을소개

마을의 역사와 유래

 

하늘이 내려줬다는 낙천! 천가지의 기쁨을 간직한 마을. 물맛이 너무 좋아 사색에 잠기게 된다는 서사미마을(西思味村). 예전의 낙천리 지명이 서사미(西思味) 또는 서천미(西泉味)로 불려 왔습니다.

그 의미는 西는 조수리를 기점으로 서쪽으로 의미하는 것이며, 사미나 천미는 샘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 후 낙세미라고 불리어졌는데 이는 샘이 풍부한 고을이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이 살기 이전부터 뽀리동산과 저갈빌레 사이에 산돼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저갈물(猪巨물)은 낙천리의 심장이며 역사의 근원지입니다.

온갖 야생조류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오빼미(烏夜味) 아홉굿과 원시림이 우거진 이곳에 1660년 여산(礖山)송가금씨가 두 아들을 데리고 양질의 점토를 찾아 안착한 후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불미업(대장간)이 이뤄지게 됩니다.

불미의 주재료인 점토를 파낸 곳에 물이 고여서 우마와 아낙네들의 물허벅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으며 현재 농업용수를 조달하는 수원지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풍수

낙천리는 제주시 한경면 소재지인 신창리에서 동쪽으로 7km지점의 중산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낙천리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저지리와 청수리, 남쪽에는 산양리와 수룡동, 서쪽에는 고산리, 북쪽에는 조수리가 인접해 있습니다.

또한 마을 5km 인근에는 크고 작은 오름들이 많은데 동쪽의 저지악, 서쪽의 당산봉, 남쪽의 조수악(새신오름), 북쪽의 관포악 등의 오름이 있습니다.

마을주변은 비교적 높은 능선이 둘러쳐져 분지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 서쪽은 지형이 낮아 일시에 폭우가 쏟아 질 경우 마을로 유입된 물을 배수처리하고 있습니다.

의자공원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얘기하듯 다양한 얼굴을 한 의자를 보며 올레친구인 고광언과 나는 잣길에서부터 올레걷기에 나섰다.

 

잣길의 내력

이 잣길은 화산폭발에 의해 저지악과 이계악 등이 형성될 당시 흘러내린 돌무더기를 농토로 조성하는 과정에 용선달이 와 낙천리를 연결하는 통로가 만들어져 농공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여 왔음.

길의 옛 모습을 피부로 체험케 하고 선이들의 지혜와 역경의 실체를 터득케 하며 문명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는 체험학습의 장으로 조상하기 위하여 제주시의 지원으로 2011년 11월 886m를 복원, 올렛길 13코스에 편입시켰다는 안내판이 이 길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었다.

 

 

잘 만들어진 고운 잣길을 지나 들길로 나섰다.

좁디좁은 이곳 농로는 옛날 마소가 다니던 길이리라.

이제는 보기조차 힘든 옛날 농로를 따라 걷는 좁은 오솔길 또한 올레를 걷는 묘미를 깊게 했다.

13코스는 시작점인 절부암을 지나치고 나면 바다가 보이지 않는 중산간 길로만 이어진다.

이 길을 걷는데 나타난 조그만 연못..

‘용선달리’라는 제법 큰 석비가 하나 서 있다.

고영철 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은 낙천리의 여러 봉천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어 함께 소개한다.

 

낙천리 저갈물(봉천수연못)

 

낙천리는 마을이 분지 형인 동시에 토질이 점토질이어서 물이 잘 고이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마을 곳곳에 연못이 형성되어 있다.

이 물은 낙천리 마을의 중앙에 있으며, 설촌 이전에는 작은 연못이었는데 돼지들이 물을 먹고 파헤치다 보니 크게 넓어졌다고 한다.

그런 유래를 담아 연못에 돌로 멧돼지 식구를 조각해 전시했다. 지금은 수생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연못으로 관리되고 있다.

저갈물 옆 안내판 〈이 연못은 원시림이 우거진 아득한 옛날 자연적으로 형성된 빌레 웅덩이에 뭇짐승들이 물을 먹기 위하여 찾았는데 특히 멧돼지들에 의하여 연못이 크게 만들어졌으므로 선인들에 의하여 저거흘(猪巨汔)이라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이 못은 본리 설촌이 계기가 되었고 상수도가 없던 시절 야간에는 성인 남녀들이 땀을 씻는 공동목욕탕이 되었으며 본리 애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향수의 장이다.〉

연못 동쪽 가에 현무암을 조각해 만든 물확이 2개 있다. 하나는 옛날 것이고 크기가 세곱절쯤 더 큰 다른 하나는 최근에 재현한 것이다. 작은 것은 한쪽 면 안으로 바닥까지 경사지게 해서 바닥면은 반달 모양이다.

물확에 대한 안내판 〈물확(구시통)은 1920년경 古人들의 지혜로 처음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연못의 오염방지와 먹는 물 절약에 크게 기여하였음. 물부족을 경고하는 시대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시범사례라 할 수 있다.

◉공동작업을 통한 협동체제 증대 ◉농업부산물에 의한 오염 예방 ◉세척제 남용에 의한 오염 예방 ◉순차적 세척작업에 의한 먹는 물 절약 설치했던 곳 ; 저갈물, 오빼미, 새물, 세미왓〉

 

낙천리 오빼미물(봉천수연못)

 

오빼미물은 ‘아홉굿물’이라고도 한다. 특히 마음의 벽을 허물고 물 부족 현상을 극복하고자 했던 주민들의 노력이 가득 밴 곳이다.

이 물은 1922년께 낙천리 뿐만 아니라 조수·청수·저지 등 4개 마을 주민들이 공동작업을 통해 판 것이다.

물통은 9군데로 구분돼 고여 있을 정도로 비교적 규모가 큰 못이었으며 가뭄때면 물수레로 장관을 이룰 정도였다. 못 바닥은 진흙이다. 물빠짐이 거의 없다.

지금도 수량이 풍부해 왜가리·논병아리 등이 찾아온다. 농로확장으로 인해 못 면적은 600㎡로 예전보다 크게 축소됐다. 인적도 뜸하다. 그러나 근래에는 새들의 쉼터로 새로운 쓰임새를 찾은 셈이다.(제민일보 001226)

'오빼미아홉굿'이란 연못이 9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밤 늦게 물을 길어 나르는 행렬이 까마귀떼 같다하여 '오빼미물'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현장의 안내판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연못명 ; 오빼미(烏夜味)아홉굿. 이 물은 옛 여인들의 고통과 애환이 서린 곳이다. 한경면 산간 4개 리 여인들이 밭일을 끝내고 밤이면 물허벅을 진 행렬이 까마귀떼처럼 몰려 들었기 때문에 명명된 이름이다. 아홉 개의 물통 중 일곱 굿은 풀무사업으로 형성되었으며 두 개의 큰 굿은 4개 리 리민이 공동개발하여 식수로 사용하다가 1995년 하나의 저수지로 통합 농용수로 사용하고 있음.〉

물이 귀한 제주에서 물항에 물이 없으면 허벅을 지고 물을 날라야 했다. 물도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먼 길을 여러 번 왕복하여야 했다. 낙천리에서는 그런 애환을 연못 이름에 붙인 것이다.

오빼미물은 현재는 1개의 연못으로 통합되어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고, 대신 인근 '새물'이란 곳에 인공으로 9개의 연못을 조성하여 놓았다.

연못 서쪽 입구에는 옛날 여인들이 물구덕을 부려놓던 물팡이 남아 있다.

못 입구에 세워졌던 공덕비는 마을회관 앞으로 옮겨졌다. 이 공덕비는 의관 김창오(議官 金昌五)와 훈장 김응석(訓長 金膺錫)의 공을 기린 것이다.(제민일보 001226)

 

 

 

 

‘용선달리’라는 비가 서 있는 이곳 연못은 물이 마르지 않는 용천수다.

하지만 물이 주는 포근함과는 달리 관리가 안돼 있는 모습이 못내 아쉬웠다.

그곳에 쉬어가라고 놓인 평상에 앉아서 보게 되는 이 연못은 조그만 더 방치하면 곧 토사가 쌓여 물이 말라버릴 것 같은 위기에 처한 듯 보였다.

고광언은 “풀만 조금 베어내도 훌륭한 연못이 될텐데..곧 없어질 것 같다”며 안타깝게 생각했다.

 

다시 길을 걷는데 이번에는 커다란 나무 하나가 우리 앞에 우뚝 섰다.

지난 1982년 제주시가 정자목으로 구분해 보호수로 지정한 팽나무로, 당시 수령은 360년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이 훌륭한 나무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어진 올레길은 뒷동산 아리랑길로 안내하고 조금 더 걸어가니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이런 올레길에 나타나는 의자는 이 지역 주민들의 작지만 고마운 배려다.

올레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곳에 앉아 쉬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을 다 내려오니 닥모르오름이 나타났다.

 

 

 

저지악, 저지오름이다.

 

해발고도 239m, 비고 104m인 분석구 오름으로 오름 정상에 깊이가 약 60m인 원형분화구가 발달해 있다.

예로부터 저지리 일대에 다나무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저지오름이라 부르고 있으며 닥물오름, 닥모루오름, 새오름 등의 속칭을 갖고 있다.

2007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아름다운 숲길이 있으며 할망당과 효자동산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구축한 진지동굴이 분포하고 있다.

제주올레 13코스의 마지막 정점으로 오름의 정상에서는 문도지, 마종이,남송이오름 등 뒤로 한라산과 오름군락이 끝없이 펼쳐진다.

 

 

저지오름을 오르는 뒤쪽 주차장으로 가는길..

많은 관광객들이 차를 타고 부지런히 이곳을 찾고 있었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생명상)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저지오름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저지오름 전망대로 오르거나 분화구 둘레길을 걷는 길, 저지오름 둘레길 등 다양한 코스가 만들어져 걷는 사람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름전망대를 향해 올라갔다.

조금 걷다 쉬고..또 오르고..그런 고바위길을 올랐다.

야자수잎 매트가 깔린, 길을 걷는 푹신함을 느끼며 우리는 저지오름 첫 번째 전망대에 도착했다.

드넓게 펼쳐진 마을 정경을 바라보며 즐기다가..이어 능선을 따라 오름분화구를 한바퀴 돌았다.

저지오름의 분화구는 아주 넓고 깊은 거대한 모습이었다.

힘들여 높이 오른 탓에 다리에 힘이 풀려 분화구를 안내하는 계단 아래는 내려가 보지도 못했다.

오름 둘레를 도는 능선을 따라 두 번 째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안좋아 선명하지는 않았지만..한라산을 중심으로 금악오름과 당오름이 좌우에, 다시 늦으리오름과 이시돌오름이 두 번째 좌우에 서서 한라산을 중심으로 찍은 사진과 함께 놓여져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지오름 정상에는 평상이 2개 놓여있다.

이곳 평상에서 쉬고 있던 외국인 부부는 우리가 도착하자 먼저 일어섰고..

조금 내려오자 아이들과 함께 산책 나온 가족의 모습도 보였다.

숲길이 펼쳐지는 오솔길..

저지오름을 내려오는 길은 그 숲길이 단연 압권이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심은지 얼마 되지 않은, 줄지어 심어놓은 나무가 모두 죽어가고 있어 걱정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조팝나무를 심었었는지 누렇게 잎이 변해 다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토양이 안 맞았던 것일까..?

내년 봄이면 살아날까 하는 기대는 해 보면서도..

이 어린 나무들은 적어도 올 가을 까지는 거의 다 죽은 상태였다.

그렇게 저지오름을 내려오는 길을 마지막으로 13코스를 마저 다 걸었다.

종점에 도착한 시간은 13시33분..

 

제주올레 13코스 종점이자 14코스와 14-1코스 시작점은 저지리마을회관에서 저지정보화마을(웃뜨르미센터)앞으로 이전돼 있었다.

마을을 둘러보니, 저지마을은 이제 음식으로도 유명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 식당 몇 곳은 이미 줄지어 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찾는 사람들이 많았고 우리가 찾았던 국수집 고기국수는 제주토종 고기국수로 만들어져 정말 맛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맛있게 제주토종 고기국수를 먹으면서..저지오름이라는 아름다운 숲과 함께, 중산간의 숨은 마을 저지리는 이제 음식으로도 승부하고 있는 것 같아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올레길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모습을 한다.

한번도 똑같은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끔은 올레코스도 바뀌어 있어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많은 제주를 다시 보게 만든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아주 풍부한 가을은 아니다.

나무도 아직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단풍이 들고 나무가 마른 가지로 변하면 곧 겨울이 오리라.

올레를 걷는 일은 늘, 겨울이 오기 전 바로 그 가을의 모습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올레를 걷는 일도, 한 랍비의 말처럼 몸을 굽히는 겸손한 자세라고 한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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