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봄의 전령, 숫명다래나무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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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이른 봄의 전령, 숫명다래나무의 정체?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0.02.2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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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분리도 통합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어정쩡한 상태

때 이른 봄의 전령, 숫명다래나무의 정체?

숫명다래나무 (인동과), 학명 Lonicera coreana Nakai.

 

이번 겨울은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올 1월 서울 평균기온은 1.4도로, 1908년 기상 관측 이래 112년 만에 가장 따뜻했다고 합니다.

예년 같으면 가장 추워야 할 1월의 평균 날씨가 영상 1.4도였으니 만물이 회생하고 천지가 생동하는 봄이 이미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절기로는 입춘(立春)이 지났으니 이미 봄이 시작된 것입니다. 한강이 한 번 얼어보지도 않은 올겨울, 남녘에서는 벌써 꽃 소식이 들려옵니다.

지난 1월 말, 광주광역시에 들렀는데 곳곳에 봄기운이 완연했습니다. 임동 광주천변에는 영춘화가 이미 만개해 있었습니다. 무등산에 복수초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증심사 계곡의 약사사를 지나 새인봉 갈림길에 오르니 복수초가 피어 있었습니다.

행운과 장수를 의미하는 봄의 전령, 복수초를 1월에 만났으니 저의 올해의 꽃시계도 한 달이나 빨라진 셈입니다. 이제 한겨울 1월은 옛말이 되나 봅니다.

그곳에서 만난 야생화는 복수초뿐만이 아닙니다. 애기동백나무도 꽃이 만개했고 영춘화도 곱게 꽃을 피워 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비목나무도 꽃망울이 한창 부풀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봄의 전령이라고 흔히 말하는 복수초, 영춘화를 한꺼번에 만났으니 올해의 봄맞이는 너무도 일찍, 쉽게 이루진 셈입니다.

무등산의 봄의 전령들을 기쁨에 들떠 보는 가운데 뭔가 번뜩이는 새로운 것을 보았습니다. 야리야리하게 늘어진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에서 팔랑대는 새로운 나무꽃을 찾아낸 것입니다.

약간은 어둑하고 황량한 겨울 숲속에서 하늘거리는 작은 나비처럼 가지 끝에 붙어 있는 가녀린 황백색 꽃송이. ‘앗! 저건 또 무슨 꽃일까?’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듯했습니다. 알 듯 말 듯 쉽게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꽃이었습니다.

봄의 전령이라 할 수 있는, 이와 비슷한 나무꽃들을 떠 올려보니 올괴불나무, 길마가지나무 등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래도 길마가지나무처럼 보이는데 우선 어린 가지에 거친 털이 없고 매끈한 점이 사뭇 달랐습니다. 무슨 꽃일까? 바짝 궁금증이 생겨 이리저리 자세히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찍어 온 사진을 컴퓨터에 올려놓고 여러모로 검색한 끝에 알아낸 꽃 이름은 숫명다래나무였습니다. 숫명다래나무는 인동과에 속하는 나무로 일본의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이 1915년에 한국 특산종으로 학계에 발표한 종입니다.

꽃이나 형태가 길마가지나무와 매우 닮은 꽃입니다. 다만 숫명다래나무는 꽃자루가 길고 어린 가지에 거친 털이 없는데 길마가지나무는 잎자루가 꽃자루보다 길고 어린 가지에 거친 털이 무성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래 사진 ‘길마가지나무’ 참조)

길마가지나무 (인동과), 학명 Lonicera harae Makino. 어린 가지의 거친 털이 특징

 

길마가지나무와 숫명다래나무, 비슷하게 생긴 인동과의 두 나무는 근대 식물분류학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조선의 민간에서 불리던 이름으로 길마가지나무는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숫명다래나무는 『조선삼림수목감요』(1923)에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길마가지나무의 이름은 열매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길마가지나무는 하나의 꽃자루에 달린 2개의 열매 밑부분이 서로 합쳐지는데 그 모양이 짐을 나르기 위해 소와 말의 등 위에 얹는 길마가지와 비슷하게 생긴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황해도 방언이라 합니다. 한편 숫명다래나무라는 이름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 나오는데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며 전남 방언이라 합니다.

숫명다래나무를 한국 특산종으로 학계에 발표한 식물분류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은 식물 종(種) 간에 미세하게 다른 형태적 특성이 있으면 별개의 종으로 세분류(細分類)하는 경향이 강한 식물학자였습니다.

그는 전남 장성 백양산(白羊山)에서 채집한 표본에 근거하여 이 표본이 길마가지나무에 비해 어린 가지, 잎자루 등에 털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특징을 들어 별개의 종으로 분류, 발표한 것입니다.

숫명다래나무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국립생물자원관이 운영하는 ‘한반도의 생물다양성’이라는 인터넷 사이트 ‘국가생물종목록’을 검색해보니 길마가지나무의 이명(異名)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국립수목원이 운영하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의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숫명다래나무와 길마가지나무가 각각 정명(正名)으로 등재되어 별개의 종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즉, 숫명다래나무를 ‘국립생물자원관’은 길마가지나무의 이명(異名)으로, ‘국립수목원’은 별개의 종(種)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국가표준식물목록’ 기재문 끝에 ‘숫명다래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중략)... 최근 연구에 의해 길마가지나무에 통합되었다.’라는 애매한 설명을 첨가하고 있어 의문을 남겼습니다. 숫명다래나무의 종명이 없어짐에 따른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길마가지나무는 우리나라가 주된 분포지이기는 하지만 일본의 쓰시마섬에도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숫명다래나무는 한반도에서만 자라는 식물입니다.

따라서 숫명다래나무를 길마가지나무에 통합하면 한국 특산종이 하나 없어지는 것이고 따로 분리하여 종명(種名)을 부여하면 한국 고유의 한 종(種)이 생겨나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아쉬움 때문에 분리도 통합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어정쩡한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등산에서 예년보다 훨씬 때 이르게 꽃이 핀 봄의 전령사 숫명다래나무를 보고 길마가지나무와의 차이점 및 그 정체성과 특징을 살펴보며 느낀 생각입니다.

(2020.1월 무등산에서 만난 숫명다래나무)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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