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칠 문화칼럼)늦게 핀 수선화
상태바
(강문칠 문화칼럼)늦게 핀 수선화
  • 강문칠
  • 승인 2012.04.15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문칠(전 제주예총회장,음악평론가)


 

 

4월 초순, 산책을 하다가 길가에 숨어 있는 수선화를 발견했다. 평소 수선화를 좋아하던 탓에 가던 길을 멈추어 사진을 찍는다.

따스한 봄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핀 수선화, 왜 겨울이 다 끝난 시점에야 꽃을 피우는가, 이제 더 이상 겨울은 없는데, 이제야 맑은 얼굴을 세상에 내밀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바람이 조용한 어느 봄날에 핀 너무나 아리따운 너의 자태,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지난 겨울 동안 너와 같이 어여쁜 얼굴을 전혀 볼 수가 없었는데, 또 다른 곳을 보니 이제 막 봉우리를 피우려는 꽃을 본다. 수선화는 차가운 겨울에 피는 꽃으로 알고 있는데---그리운 너 수선화야, 봄에 만나는 꽃도 나름으로 곱고 아름답구나.

 

수선화가 반드시 추운 겨울에 피어야만 수선화가 아닐 게다. 그렇다 하여 철이 지난 꽃도 아닐 게다. 지금에도 보는 이의 마음 한 켠에 살포시 안길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제철에 피지 않은 꽃이라 해서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도 맡아 있는 일들에서 합당하지 않은 일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해야 할 일을 못한다 해서 만족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 듯, 꽃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튼실하게 갖출 것은 다 갖추었네, 흙에서부터 솟아 올라오는 꽃잎들, 생기와 활발함은 반할 지경이다. 마치 자기가 서야할 곳을 알고 살아가는 것처럼 열정이 무섭다---

 

발길을 돌려 자주 다니는 찻집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또 다른 수선화가 나를 기다린다. 수선화를 한 묶음으로 말린 것이 있다. 그것을 볼 때 마다 수선화의 죽음을 생각한다. 죽어서도 아름다움을 간직한 모습을 본다. 마치 지금도 수선화의 싱싱한 향기가 나를 사로잡는 것 같다.


마치 수선화를 통해서 한 인간의 인생을 보듯, 물끄러미 한참이나 꽃을 바라본다. 죽어서도 향기가 있는 수선화의 아름다움,


찻집에는 언제나 꽃과 음악을 말하는 주인이 있다. 상냥하며 미소가 예쁜 여인이 나를 반긴다. 예술을 토론하는,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꾸만 말린 수선화의 모습에 시선이 간다. 살아 있을 때도 아름답기도 하며 그 향기가 특이한 꽃, 죽어서도 생전에 보다 향기를 더 하는 꽃의 매력, 인생과도 같이, 한 인간의 앞과 뒤를 상상하게 하는 꽃의 의미에 감사한다.

 


늦게나마 믿음이 가는 사람들과 수선화를 닮은 여인과 따뜻한 차를 마시며, 예술을 토론하는 자연스러운 자리가 있음을 감사하게 여긴다.

지금 밖은 따스한 봄기운이 가득하다.
지금 밝게 피는 수선화는 늦게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다, 일찍 봄을 맞이하고픈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