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 제주의 봄은 영등할망과 함께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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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 제주의 봄은 영등할망과 함께 온다..”
  • 고현준
  • 승인 2020.03.05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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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제주올레21코스 제주해녀박물관-종달헤변도로, 천의 얼굴을 가진 '봄이오는 길'

 

 

지난 2월29일은 4년마다 오는, 하루가 더 많은 윤달 2월이었다.

이날 오전 “100년을 살아야 24회 맞이하는 윤2월 말일..귀한 날이므로 더 행복하세요” 라는 손태성 박사(기상학박사, 노자도덕경 강론 저자)의 메시지를 받았다.

따지고 보니 2월29일은 그렇게 참 귀하게 맞이해야 하는 날이었다.

사실 2월의 마지막 날, 제주올레의 마지막코스인 21코스를 걷는다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 밖을 보니 오전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비가 조금 그치면 이날 올레길로 나서려고 했으나 비는 더욱 세차지고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아침 일찍 제기대라는 별명을 가진 안건세 선생이 올레길에 합류한다고 해서 “함께 가려고 했지만 부득이 오늘은 쉬고 내일 간다”고 했더니 “자기는 올레만 걸으려면 꼭 이런다”며 정말 큰 한숨을 쉬며 올레와 인연이 없음을 많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는 날은 걷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지난 여름 비가 많이 내려 다음날인 일요일에 걸은 적이 있지만 비가 온 다음날 무릎까지 차 오른 물통 길을 신발이 다 젖도록 저벅저벅 걸었던 적이 있어 올레길에서의 비는 늘 긴장해야 하는 올레꾼의 난적이다.

난전 강법선 선생과 올레꾼 고광언에게도 “내일(3월1일) 가자”고 전달했다.

그래서 예정보다 하루 늦은 3월 첫날인 1일 제주올레 마지막 코스인 21코스, 오조리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종달리 해안도로 까지 올레길 걷기에 나섰다.

이날 처음 참여한 안건세 선생은 그날은 다음날 가지 못하겠다고 했다가 아무래도 아쉬웠는지..이날 아침 일찍 “함게 걷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이날은 그래서 4명의 올레꾼이 함께 걷는 첫날이었다.

올레꾼이 된 고광언으로서는 지난 2년여 1코스부터 걷기 시작한 터라 감회가 남다른 날이었다.

 

 

이날 제주해녀박물관에 도착한 시간은 10시42분.

출발에 앞서 제주올레 마지막 코스인 21코스 시작점이 있는 올레스탬프 앞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하프가 아니 풀코스(11.3km)를 걷는 작은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날 처음 만난 광경은 큰 배에 쓰였을 커다란 나무로 만든 키와 쇠로 만든 큰 닻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연대동산.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통신수단이었던 연대가 있던 동산이라 연대동산이라 불린다는 올레안내판이 가장 먼저 이곳을 안내했다.

 

 

이 동산을 지나 면수동마을로 들어섰는데 파랗게 익어가는 보리밭에 까치가 한 마리 앉아있었다.

올레길에서 이런 평화로운 정경과 만나면 올레길은 더 사랑스러워진다.

마을 안길을 지나자 ’낯물밭길‘이라는 묘한 이름의 길이 나타났다.

이는 면수동의 옛이름으로 ‘낯물마을에 있는 밭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21코스는 거의 모든 길이 밭길과 들길이 이어지는 코스였다.

그렇게 만나는 오래된 돌담과 어우러진 이 21코스의 밭길은 제주도의 오묘하고 고요한 아름다움이다.

이런 풍경은 제주가 아니면 절대로 볼 수 없는 길이라 그래서 더욱 고맙고 소중한 길이기도 하다.

 

 

이 길을 지나는 올레길에는 많은 무밭이 계속 나타나고 수확이 끝난 밭에는 남겨진 무가 산더미였다.

경제성이 없거나 못생긴 무는 그렇게 밭에 그냥 놓아둔다고 한다.

“너무 아깝다”고 말한 난전 강법선 선생은 “무를 가져다 생기리(무말랭이의 제주말)차를 만들어 먹으면 맛이 있다”며 기어이 몇 개를 주워 가방에 담았다.

돌담과 파릇파릇한 파란 색이 영롱한 길을 만들고 그 자연의 주는 고마움을 안고 걷는 올레길.

길가에는 벌써 유채꽃이 가득 펴 걷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벌써 봄이 아무도 모르게 오고 있다는 선물이었다.

세상은 코로나19가 무섭게 국민을 죽여가며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는데 봄은 그렇게 노란색 꽃으로 무장해 봄을 향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올레꾼 4명은 이날 그런 길에 흐드러지게 열려 유혹하고 있는 보리수나무(볼레낭) 앞에 서서 빨갛게 익어가는 보리수를 마음껏 따먹을 수 있었다.

이 21코스에는 가는 곳곳 보리수나무가 참 많았다.

걷다가 따 먹고,,걷다가 또 따 먹고..

올레길에는 그런 자연에서 먹는 즐거움이 가끔 만들어진다.

 

 

그런데, 별방진에 이르렀을 때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타나더니 유채꽃이 강물처럼 흐르는 유채밭을 찍고 있었다.

별방진을 따라 핀 유채꽃은 참 고운 자태로 피어 있었다.

물 흐르듯 고운 유채꽃은 마치 강물이 흘러가는 듯 했다.

이곳을 지나 다시 들길로 나서니 곳곳에 유채꽃이 반갑게 피어 유채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제 길은 해안도로로 이어진다.

조금 더 걸으니 석다원 앞 중간스탬프 포스트가 나타났다.

중간스탬프가 있는 석다원 앞에서 스탬프를 찍은 시간은 12시06분.

 

 

 

이 길에는 가는 동안 신동코지불턱도 있고,각시당이라는 당도 있었지만 불턱은 바다 가까이에 있어 가보지 못했다.

“이곳을 가 봤다”는 안건세 선생에 따르면 “이 불턱은 특별히 해녀들인 상군과 중군 하군들이 앉는 곳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는 곳이었다.

각시당은 영등할망(바람의 여신)에게 해녀들과 어부 그리고 타지에 나가있는 신앙민들의 무사안녕과 풍요한 해산물 채취를 기원하는 의례를 치르는 곳으로 고복자 신방이 모든 의례를 집전한다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다른 당들과 달리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종점을 향해가는 길은 환해장성길을 따라 걷는 바다 해안길로 안내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을 따라 걷는 길.

걷다보니 토끼섬이 멀리 보이고 올레안내판에는 ‘천연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된 문주란 자생지. 면적 160평방미터라는 간단한 안내판이 하나 서 있었다.

 

 

 

이 해안도로를 걷는 동안 만나는 바다는 천 가지 얼굴을 하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포구가 나왔다가 섬이 보이고, 모래밭이 나타났다가 긴 용암길이 나타나고..

바닷길의 묘미를 원 없이 보여주는 길이었다.

그렇게 걷다가 멀리 우도가 코 앞에 보이는 모래사장에 도착했다.

영등할망 바닷가다,

 

이곳 팔각정에 앉아 영등할망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영등할망은 한림 귀덕리 앞바다로 들어왔다가 건입포구로 나간다”는 사람(고현준)

“건입포구가 아니라 행원포구로 나간다”는 사람(고광언)

“행원이 아니라 우도로 나간다”는 사람(강법선)..

의견이 분분해지자 고광언은 선배인 토속 제주문화 연구가인 고광민 선생에게 물어보겠다며 전화를 했다.

“영등할망이 언제 어디로 들어와 어디로 나갑니까?”

“영등할망은 음력으로 2월 초하룻날 들어왔다가 2월15일에 나가지..”

“영등할망은 귀덕해안으로 들어온다는 의견도 있고 수원리 해안으로 들어온다는 얘기도 있어”

그러나 “영등할망이 나갈 때는 우도로 나간다”는 설명이었다.

고광민 선생은 “제주도의 봄은 영등할망이 나간다는 2월15일부터 시작된다”며 “제주에서는 그날 이후부터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자세히 알려줬다.

 

 

 

난전 강법선 선생은 그 말에 이어 “2월초 2월 중순이라는 얘기는 무역풍이 불어야 배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라며 “2월 전에 제주에 왔다가 무역풍이 불 때 큰 배들은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영등할망 전설이 이어진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덕분에 이날 우리는 영등할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

잠시 담소를 나누는 동안 차를 좋아하는 난전선생이 준비해온 보이차로 몸을 덥혔다.

이어진 길은 아름답기만 한 숨겨진 모래사장.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이곳 모래사장은 제주도의 또 다른 숨어있는 보배다.

주위에 인공적인 구조물이 없어서인지 아직까지도 그 아름다움이 유지되고 있는 곳이라 가끔 외국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일광욕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옆에는 하도해수욕장이 있어 그와 비교되기도 한다,

 

 

하도해수욕장은 하도리 마을의 해수욕장으로 백사장이 넓고 물이 깨끗하다는 올레설명이 있었다.

그 유명한 하도리 철새도래지가 있는 바로 앞이 하도해수욕장이다.

여름이면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도리를 지나며 하도철새도래지를 보니 수많은 철새들이 수초 앞 수면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하도해수욕장과 하도철새도래지를 가로 막아 만들어진 긴 다리를 지나 지미봉을 향하는 길.

다시 들길이 이어진다.

꼬불꼬불..

듬성듬성..

들길을 따라 걷는 올레길은 그 자체로 평안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돌담과 푸르름이 어우러진 길을 따라가다 지미봉 입구에 당도했다.

 

 

지미봉(지미오름)

 

가파르지만 길지 않아 20여분이면 정상에 오른다.

오름정상에선 360도 조망이 가능하다는 올레안내판이 서 있었다.

(표고 165.8m)

 

이날 우리는 지미봉 정상을 향하는 길이 아닌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지미봉 둘레길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미봉 둘레길은 마치 오솔길처럼 산책하기에 좋은 코스였다.

그리고 걷다보니 아주 커다란 습지가 하나 나타났다.

갈대가 무성해서 습지임을 아는 것이지만 이 길에는 또 용천수가 몇 개 나타나기도 했다.

마을에서 조금만 관리하면 음용해도 될 정도로 깨끗해 보이는 물도 있었다.

한쪽 물에는 소금쟁이가 물위를 거닐고 물속에는 고기도 보였다.

적어도 2급수는 되는 물이라는 뜻이다.

 

 

 

둘레길을 다 돌고 지미봉 입구에서 우리는 또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미봉까지 왔다는 것은 올레21코스의 거의 막바지라는 뜻이다.

이렇게 지미봉 구간을 지나 다시 해안도로로 나왔다.

제주올레21코스의 마지막 종점스탬프는 종달리 해안도로변에 있다.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우뚝하게 보이는 이곳은 멀리 보이는 다랑쉬오름을 뒤로 하고 유채꽃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었다.

드디어 이날의 종점인 해안도로 종착점에 도착했다.

종달리 해안도로 변에 있는 종점스탬프를 찍은 시간은 14시50분.

바로 지나가는 택시가 있어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한 채 서둘러 택시에 올랐다.

그리고 택시안에서 모두들 이날 “18.000보를 걸었다”고 했다.

 

 

우리는 숫자를 좋아한다.

어린 왕자가 어른들은 다들 숫자를 좋아한다고 싫어했지만 결국 숫자를 통해 의미를 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색깔을 좋아하기도 한다.

무슨 색을 좋아하느냐고 묻지 않아도 노란 유채꽃이 피는 봄은 마음을 설레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은 코로나19라는 무서운 바이러스가 온도가 올라가면 더 이상 퍼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약간의 위안을 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제주의 봄은 아직 봄이 오지 않고 있다.  ’춘래불사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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