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봉공원에는 그들이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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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등봉공원에는 그들이 살고 있다 .."
  • 고현준
  • 승인 2020.04.2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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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등봉공원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의 문제점 2/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1999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시작된 도시공원 일몰제로 원래 목적대로 개발되지 않는 도시공원이 도시계획시설에서 일제히 해제된다. 즉, 전국의 수많은 도시공원이 개발사업의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제주도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제주 시내에 있는 오등봉공원은 자연생태계와 경관이 매우 좋은 곳이며 신화와 전설이 풍부한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으로 2000세대 가까운 아파트단지가 추진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최근에 오등봉공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였다. 이 조사결과를 토대로 3회에 걸쳐 오등봉공원 개발계획(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의 문제점을 싣는다.(제주환경운동연합 제공)


오등봉공원의 중심, 한천

오등봉공원 안 한천의 모습
오등봉공원 안 한천의 모습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오등봉공원 안에는 오등봉과 한천이 자리 잡고 있다. 한천의 경우 제주시 도심 지역의 하천들이 하천정비사업에 의해 원형을 잃었지만, 다행히도 옛 원형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더욱이 오등봉공원 구간 안에 포함된 한천의 모습은 한천 최상류인 한라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모습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수려한 경관과 생태계를 갖고 있다. 오등봉공원의 핵심이 한천인 이유이다.

 

 

 

오등봉공원의 대규모 아파트단지는 한라도서관, 제주아트센터 위아래 쪽 녹지지역으로 한천과 바로 붙어서 배치될 계획이다. (네이버 지도 캡처)

 


오등봉공원의 산책로는 한천변의 울창하고 기다란 상록활엽수림 가운데로 나 있다. 수많은 시민이 이 산책로에서 휴식하며 산책하고 있다. 그만큼 한천이 없었다면 오등봉공원의 가치는 떨어졌을 것이다. 이번에 계획되고 있는 오등봉공원의 대규모 아파트단지 개발계획도 이 한천이 없었다면 매력이 크게 줄었을 것이다.

이 계획의 핵심은 한천에 최대한 근접하여 2000세대 가까운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한천 자체는 건들지 않는다고 하여도 예전의 한천 모습은 변할 수밖에 없고 거기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생명도 떠날 수밖에 없다. 공원도 사실상 아파트단지의 사유화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최근 조사에서 오등봉공원 내 한천의 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울창한 상록활엽수림을 품어 안고 있는 한천


한천도 제주도의 여타 하천처럼 물이 쉽게 스며드는 조면암으로 지반이 이루어져 대부분 구간에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큰 소(沼)들이 형성되어 있어서 생태계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의 경관은 한라산의 최상류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기암괴석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내고 있다.

오등봉공원 안 한천 기슭의 구실잣밤나무 거목. 잘린 밑동에서 나온 가지가 굵게 자라서 거목이 되었다. 마치 곶자왈의 울창한 맹아림을 연상케 한다.

 

한천이 건천임에도 불구하고 깊고 큰 규모의 하천 계곡을 형성한 이유는 한라산에서 내린 많은 빗물을 하천 하류로 급속하게 수송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많은 빗물이 큰 계곡을 통해 순식간에 바다로 흘러가게 한 것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큰비가 올 때마다 한순간에 강력하게 쏟아지는 물이 큰 암석들을 연속적으로 하천 바닥의 암석을 마모시키면서 절경이 형성되었다. 이 때문에 한천은 절경으로 가득 차 있다. 오등봉공원의 한천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예로부터 영주 10경 중 하나인 영구춘화에 해당하는 절경인 방선문(들렁궤)이 있다. 한천의 하류인 용연은 영주 12경 중 하나인 용연야범이 있다.

또한, 한천은 하천이지만 숲을 품어 안고 있다. 한천의 양쪽 기슭에는 울창한 상록활엽수림이 형성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제주도 하천의 특징이기도 하다. 건천이지만 우기 때마다 내리는 빗물과 위에서 내려오는 영양물질로 인해 하천 기슭에는 상록활엽수들이 번성하고 있다. 한천의 기슭도 상록활엽수가 거목으로 성장하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종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의 나무는 밑동이 잘린 후 가지가 굵어지면서 거대한 맹아로 자라났다. 곶자왈의 맹아림(2차림)과 유사하다. 옛날, 선조들은 마을과 가까운 이 한천의 거목들을 잘라서 집도 지었을 것이고 가구도 만들었을 것이고 자신이 묻힐 관도 짰을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용되다가 벌채가 금지되면서 잘린 나무 밑동의 가느다란 가지들이 거목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러한 종가시나무와 구실잣밤나무 거목들뿐 아니라 녹나무, 때죽나무, 사스레피나무, 천선과나무, 예덕나무, 상수리나무, 곰솔, 굴피나무, 덧나무, 참식나무, 생강나무, 왕초피나무 등 여러 수종이 하천변을 따라 긴 띠 형태의 숲을 형성하고 있다. 나무 아래에는 자금우, 백량금, 겨울딸기 등 키 작은 나무와 석위 등 양치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원앙(자료 사진-현장에서 찍은 사진 아님)
오등봉공원에서 발견한 원앙의 똥(맨 하단)과 먹이 먹었던 흔적(종가시나무 도토리 잔재물

 


한천을 찾는 천연기념물, 원앙 떼의 발견


한천의 양쪽 기슭에 울창한 상록활엽수림이 형성되어 있다면 한천 안에 크고 작은 소(沼)들은 각종 양서파충류와 곤충의 서식처이며 조류와 포유류의 식수 공간이기도 하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의 최근 조사에서도 (沼)에서 북방산개구리와 제주도롱뇽을 발견하였다. 기온이 올라가면 유혈목이, 누룩뱀 등의 파충류 등 많은 생물이 출현할 것이다.

조류의 경우 찌르레기, 멧비둘기, 흰배지빠귀, 꿩, 제주 휘파람새 등이 상시적으로 보인다. 특이한 것은 원앙(천연기념물 327호)이 집단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주변과 밀폐된 지형을 좋아하는 원앙은 울창한 계곡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이처럼 도시 내 공원에서 발견되는 예는 많지 않다. 원앙이 주먹이로 삼는 종가시나무 등의 도토리가 풍부하고 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소(沼)가 많아서 이곳을 자주 찾는 것으로 추정된다.

육안으로는 물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원앙 5마리만 발견하였지만, 공원 내 2km 구간에 걸쳐 하천 곳곳에 있는 ‘소’를 중심으로 수많은 원앙 배설물을 발견하였다. 배설물만 보아서는 정확한 수를 추정하기 어렵지만, 배설물의 양을 보았을 때 집단으로 오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정밀조사가 필요한 이유이다.

실제로 문헌 자료(2006, 한라산의 하천)에도 원앙은 1998년 2월 168개체, 1989년 141개체, 2000년 2월 700개체, 2001년 2월 400개체가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고 다른 하천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래 개체 수가 높은 편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 이후 문헌 조사로는 기록된 적이 없지만, 여전히 원앙이 집단으로 날아오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원앙 등 먹이가 풍부하고 절벽이 많은 탓인지 환경부 멸종위기종 1급인 매도 수시로 발견할 수 있었다.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예정지인 곰솔림에서도 맹금류가 다른 조류를 먹은 흔적을 몇 군데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한천을 포함하여 오등봉공원 전체가 매의 활동 범위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원앙 떼와 매 발견을 통해서 오등봉공원 내 한천이 일반 도시 하천에 비해 생태계가 매우 건강함을 알 수 있다.


오등봉공원의 역사문화적 가치


오등봉공원은 생태적 가치만 뛰어난 곳이 아니다. 오등봉공원의 핵심인 한천 일대는 고대시대의 생활공간이었다. 고대시대 제주도의 가장 큰 마을 중 하나가 한천 하류에 있었다. 한천변 일대에서 신석기·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주거지·고인돌·석곽묘·제사유적 등과 고대시대의 생활유물들이 발견됨으로써 이곳이 선사시대부터 대규모 집단 취락지였음을 알 수 있다. 오등봉공원 주변에도 지석묘 등 고대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 주변 일대가 고대시대 생활공간임을 알 수 있다.

고대시대 유적터뿐 아니라 오등봉과 그 일대는 일제 강점기 시절의 진지동굴(갱도) 5개가 오등봉공원 일대 역사 유적지도(출처:오등봉공원 조성사업부지내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2019))

 


 분포하고 있다. 가슴 아픈 식민지 시대의 유적이 자리 잡고 있다. 진지동굴 중 4곳은 오등봉에 분포하고 있고 1곳은 한천 기슭에 분포하고 있다. 특히 한천 기슭에 분포하는 진지동굴은 짧게나마 시설부지 안에 들어간다. 

이러한 유적뿐만 아니라 오등봉공원 내 한천 곳곳에는 신화와 함께 제주 선조들의 삶이 깃든 여러 지명이 있고 거기에 얽힌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있다. 한북교에서 고지교까지 2km가 조금 넘는 구간이지만 이 안에는 제주 선조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제주 건국신화에 나오는 설문대 할망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이곳의 중요성을 더해주고 있다.


* 설문대 할망의 이야기가 담긴 ‘족감석’

설문대 할망 족두리석

 

족감석은 오등봉공원이 시작되는 고지교 바로 아래에 있는 큰 바위이다. 제주의 창조 여신인 설문대 할망이 머리에 쓰고 다니던 족두리라고 전해지는 바위다. 설문대 할망이 마을 사람들에게 비단 100동으로 소중의(겉옷 안에 입는 내의)를 만들어주면 제주 바다에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제주-목포)를 놓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을 사람들이 부지런히 옷을 만들던 중에 비단이 부족 하자 아무래도 옷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설문대 할망이 실망하여 급히 자리를 뜰 때 이곳에 쓰고 있던 족두리를 남겨두고 갔다고 하여 ‘설문대 할망 족도리바위’라 불리고 있다. 한 골이 모자라 제주에는 호랑이 같은 맹수가 안 난다는 아흔아홉골 설화처럼 제주인이 변방으로서 느꼈던 설움과 한계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오등봉공원 내의 일본군 진지동굴

 


또한, 족감석은 제주인의 종교문화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 버금가는 1만 8천의 신이 있다고 하는 제주에서 민간신앙은 예나 지금이나 절대적이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도 아이가 넋이 나면 어머니는 설문대 할망 족두리석 앞에서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그러면 아팠던 아이가 금세 나아서 뛰어놀았다고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주민들이 이 바위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는 실화가 있다. 2007년 태풍 나리 때 족감석이 20미터가량 밑으로 떠내려갔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주민들이 2008년에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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