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바다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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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바다를 알 수 없다.."
  • 고현준
  • 승인 2020.05.0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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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온평포구-표선해수욕장 제주바다와 돌담이 어우러진 다양성의 길

 

 

올레를 걸으며 만나는 계절의 변화는 흥미롭다.

일주일 전에는 겨울이었는데, 일주일이 지나자 봄이 와 있고, 곧 여름으로 접어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겨울옷을 입고 걸었는데 무척 더운 날도 있고 봄인가 하여 얇은 옷을 걸쳤는데 추운 날과도 만난다.

지난 4월18일 올레3코스를 걸을 때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겨울이었다.

그리고 4월25일 하프코스 나머지 구간을 걸을 때는 더운 봄 날씨였다.

 

 

올레길은 그런 다양성이 좋다.

지루하기만한 들길을 걷기도 하고 그렇게 걷다가 바다를 다시 만나면 속이 훤히 트이기도 한다.

제주올레 3코스는 들길을 걷다가 해안도로와 이어져 4코스까지 바다가 길게 이어지는 돌담과 바다가 아름다운 곳이다.

중간중간 동네마다 다른 모습을 한 돌담을 주의 깊게 보았다.

환해장성이 있는 3코스는 자연미가 더 아름다운 구간이지만 인위적으로 성처럼 만들어놓은 길도 나타난다.

바다색은 형형색색의 다른 모습을 보여줘 걷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오래전에 제주바다를 노래했던 시인이 있다.

70년대 당시 제주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시인으로 데뷔한 문충성 시인의 제주바다라는 시다.

 

 

제주바다1

-문충성

 

누이야 원래 싸움터였다

바다가 어둠을 여는 줄로 너는 알았지?

바다가 빛을 켜는 줄로 알고 있었지?

아니다 처음 어둠이 바다를 열었다 빛이

바다를 열었지 싸움이었다

어둠이 자그만 빛들을 몰아내면

저 하늘 끝에서 힘찬 빛들이 휘몰아와 어둠을 밀어내는

괴로워 울었다 바다는

괴로움을 삭이면서 끝남이 없는 싸움을 울부짖어왔다

누이야 어머니가 한 방울 눈물 속에 바다를 키우는 뜻을 아느냐 바늘 귀에 실을 꿰시는

한반도의 슬픔을 바늘 구멍으로 내다보면 땀냄새로 열리는 세상

어머니 눈동자를 찬찬히 올려다보라

그곳에도 바다가 있어 바다를 키우는 뜻이 있어

어둠과 빛이 있어 바닷속

그 뜻의 언저리에 다가갔을 때 밀렸다

밀려오는 일상의 모습이며 어머니가 짜고 있는 하늘을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바다를 알 수 없다

누이야 바람 부는 날 바다로 나가서 5월 보리 이랑

일렁이는 바다를 보라 텀벙텀벙 너와 나의 알몸뚱이 유년이 헤엄치는

바다를 보라 겨울날

초가지붕을 넘어 하늬바람 속 까옥까옥

까마귀 등을 타고 제주의

겨울을 빛는 파도 소리를 보라

파도 소리가 열어놓는 하늘 밖의

하늘을 보라 누이야

 

제주 바다1-문충성 시집에서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4월 중순의 날씨는 거의 겨울철이었다.

이날은 바람이 아주 세게 불어 맞바람을 맞으며 걷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꾸로 걸었으면 아주 좋았을..그런 날씨였다.

바다가 성을 내고..마치 뭔가를 박살이라도 내려는 듯 하얀 포말을 드날리며 밀려왔다.

4월 하순이 되어서, 바다는 다시 언제 그랬느냔 듯 상냥했다.

제주바다가 주는 풍치는 그래서 더 신비롭기만 하다.

토요일마다 걷는 올레.

다양함이 넘치는, 단 한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제주올레는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돌담

-김광수

 

밭과 밭 사이 돌담은 한 떼의 바람을 파먹기도 하고

내던져 버리기도 한다 숭숭 뚫린 구멍사이로 아무

바람이나 접근하지 못한다 바람 거세어 갓 고개

내민 푸른 새싹들 뭉텅뭉텅 목 잘라버리면 고이는

아픔 덩어리 참지 못하여 누군가 눈물 흘릴 것이므로

돌담은 아무 바람이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작고 여린 바람만 받아들인다 바람은 돌담 앞에

아르면 더 짓쳐가야 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를

잠시 고민해야 한다 그러다 부드러운 몸짓으로 돌담을 뚫고 들어간다 돌담은 아픈 그 누군가를 위해 묵묵히 서 있다 나는 밭과 밭 사이에서 그 조그마한 진실을 배웠다.

(서정시 제주도에서..}

 

 

제주를 노래한 제주 시인들의 시는 겉으로 보여지는 시가 아니다.

재주인의 삶이 그대로 시어에 녹아있다.

제주올레3코스는 바다와 파도와 바람과 돌담과 제주사람들의 투박한 삶이 투영돼 있는 길이다.

어쩌면 그 중 일부는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길이기에 아픈 마음을 달래며 걸어야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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