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땅 뚫고 나와 피는 2월의 꽃..변이종 은빛세복수초는 '슬픈 추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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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땅 뚫고 나와 피는 2월의 꽃..변이종 은빛세복수초는 '슬픈 추억' "
  • 김평일 명예기자
  • 승인 2020.06.1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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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17)다시는 은빛세복수초와 이별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원한다.

다시는 은빛세복수초와 이별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원한다.

 

 

제주에서 자생하는 들꽃들 이름 중에 제주만의 독특한 이름을 가진 들꽃들이 있다.

봄꽃의 대표격인 복수초와 할미꽃의 이름이 제주에서는 세복수초, 가는잎할미꽃이라고 부른다.

두 식물 모두가 육지부에서 자라는 식물에 비해서 잎이 가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복수초와 할미꽃이라고 부른다.

두 식물 중에서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리는 들꽃은 세복수초다.

세복수초는 눈이 내리는 2월부터 대체적으로 따뜻한 골짜기에서 꽃이 피는 들꽃이다.

눈 내리는 날 오름 골짜기에서 눈 속에 파묻혀 하얀 눈 밖으로 노란 얼굴을 빼끔하게 내 놓아 파르르 떨고 있는 세복수초를 만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런 날에는 세복수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들꽃을 촬영하는 사람들에게는 횡재(?)를 한 날이기도 한다.

설중 세복수초를 만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겨울에 흰 눈이 소복소복 내려 쌓인 골짜기에서 만난 설중 세복수초는 올 한해 큰 축복을 내려 줄 듯 하여 가슴이 뿌듯해진다.

이런 날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불어도 겨울이 더 반갑게 느껴지며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쾌재라도 부르고 싶어진다.

월척을 한 낚시꾼의 마음과 유사하지 않을까...

 

복수초(福壽草)는 ‘행복과 장수’를 기원한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진 들꽃이다.

사람들은 예부터 황금을 좋아한다.

황금(黃金)색을 너무나 좋아해서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帝王)인 《복희씨, 신농씨와 더불어 삼황(三皇)이라고 일컬음》 임금을 황제(黃帝)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복수초의 노란색은 황금색으로 황금색은 부(富)와 영광(榮光), 행복(幸福)을 상징하는 색이어서 새봄에 노란색 꽃이 복스럽게 피는 꽃이라 해서 복수초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한 해 동안 복을 많이 받고 오래도록 장수하라는 의미로 새해가 되면 복수초를 원단화 또는 원일초라 부르며 선물을 하는 풍습이 있고 중국에서는 복수초의 노란색 꽃을 잔에 비유해서 측금잔화(側金盞花)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눈을 뚫고 나오는 꽃으로 꽃이 피면 꽃 주위가 동그랗게 얼음이 녹아 구멍이 난다고 해서 ‘눈색이꽃’이라고도 하고 얼음 사이에 핀다고 해서 ‘얼음새꽃’ 또는 ‘얼음꽃’이라고도 한다.

눈 속에서 피는 연꽃과 같다고 해서 설연화(雪蓮花)라고도 부른다.

일본 북해도 원주민인 아이누족들은 복수초를 구노라고 부르는데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복수초에 관한 전설이 있다.

 

오랜 옛날 일본 안개의 성에 아름다운 여신 구노가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구노를 토룡의 신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했다.

토룡의 신을 좋아하지 않았던 구노는 결혼식 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아버지와 토룡의 신은 사방으로 헤매다가 며칠 만에 구노를 발견했다.

화가 난 아버지는 구노를 한 포기 풀로 만들어버렸다.

이듬해 이 풀에서는 구노와 같이 아름답고 가녀린 노란꽃이 피어났고 이 꽃을 구노(복수초)라고 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때부터 '영원한 행복' 이 복수초의 꽃말이 되었다.

 

티베트에서는 복수초와 닮은 식물들을 ‘노드바’라고 한다.

‘노드바’는 만년설이 덮인 바위틈에서 돋아나는 식물로 이 식물이 꽃을 피울 무렵이면 식물 자체에서 열을 뿜어내 3~4m나 되는 주변의 눈을 전부 녹여버린다고 한다.

복수초와 ‘노드바’가 다른 식물이지만 복수초를 ‘노드바’에 비유하기도 한다.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와 눈을 녹이며 노란꽃을 피우는 복수초가 ‘노드바’를 닮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복수초의 꽃말을 '슬픈 추억' 이라고 한다.

이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서양복수초가 아름다운 소년 아도니스가 산짐승의 날카로운 이빨에 물려 죽어가면서 흘린 붉은 피에서 피어났고 그래서 복수초의 꽃말이 '슬픈 추억' 이며 피를 상징하기도 한다.

복수초(福壽草)는 “Adonis amurensis Regel et Radde”라고 하는데 한자로 ‘복 복(福)’, ‘목숨 수(壽)’와, ‘풀 초(草)’자로서 “복 많이 받고 오래 사는 것”을 기원하는 뜻이 담긴 풀이라는 뜻이 있다.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비과 복수초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복수초속에 속하는 식물로는 가지복수초, 개복수초, 복수초, 세복수초가 있는데 이중에서 세복수초는 우리니라에서는 제주에서 자생하는 제주 특산식물이다.

가지복수초, 개복수초, 복수초는 제주에서는 자생을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 되고 있다.

복수초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오는데 세복수초는 잎이 먼저 나온 후에 꽃이 핀다.

2016년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에서는 그 해 제주를 대표하는 2월의 꽃으로 '세복수초'를 선정했다.

세복수초는 낙엽활엽수림대에서 살아가면서 제일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인데 나뭇잎이 나오기 전 햇빛을 충분히 받아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만들어 나뭇잎이 나오기 전에 종족을 번성시키는 식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복수초는 햇볕이 충만해지는 시간인 오전 10시 이후에 활짝 핀 세복수초를 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 추울 때 꽃이 피는 식물들은 추위를 이기는 그들 나름의 지혜로 꽃 모양을 둥글게 하여 마치 집광판처럼 하고는 해를 따라 돌면서 빛을 받아 온도를 올리는데 세복수초가 여기에 해당하는 풀꽃이다.

세복수초는 햇볕을 좋아하는 꽃으로 오름의 분화구나 오름 사면의 따뜻한 골짜기에서 군락을 이루며 살아가는 풀이다.

세복수초는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올라와 눈을 녹이고 꽃이 피는 풀로 강한 생명력을 말할 때 비유되기도 하는 풀이다.

세복수초가 필 때는 주변에서 피는 꽃들이 거의 없어서 독보적인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복수초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수행하는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풀꽃이다.

 

 

제주도환경자원연구원은 지난 2007년 5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제주 전역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제주에서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특산식물 중 93종의 자생지를 확인했다고 밝힌바 있다.

이 가운데 세계적으로 제주에만 분포하는 특산식물은 한라물부추, 제주고사리삼, 은빛세복수초, 한라장구채, 한라벚나무, 제주양지꽃, 섬바위장대, 솔비나무 등 56종이었고, 제주를 포함해 우리나라 일부 지역에만 분포하는 한국특산식물은 구상나무, 각시족도리풀, 누른종덩굴, 변산바람꽃, 모데미풀 등 32종이라고 한다.

그중에서 바위좀고사리, 제주개관중, 옥녀꽃대, 섬오갈피나무, 흰등심붓꽃 등 5종은 최근 외국에도 분포한다고 보고돼 이를 제외했는데 현재 제주에서 자생하는 특산식물은 모두 88종이다.

특산식물들은 해안가에서 부터 중산간 지역의 곶자왈이나 오름과 해발 600m 이상의 한라산국립공원안에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특산식물중 일부는 수십 개체만이 확인되는 등 개체 수가 극히 한정적인 식물들이 있는데 중산간 이하의 지역에서 자라는 특산식물들은 자생지가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데다 접근하기 쉬워 도채의 위험성이 높고 한라산 고산지대의 특산식물들은 제주조릿대의 확장 등 자연적인 요인으로 훼손 가능성이 높아 대책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산식물은 제주 또는 우리나라만이 가진 고유한 자원으로 학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기 때문에 체계적인 종 보존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제주도환경자원연구원에서 발표 한 특산식물 중에는 은빛세복수가 포함되어 있다.

은빛세복수는 세복수초의 변이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복수초의 꽃 색이 황금색인 노란색인데 비해서 은빛세복수는 흰색이거나 흰색이 감도는 은색이기 때문이다.

은빛세복수는 식물학자인 이영노 박사에 의해 명명된 들꽃으로 한동안 은빛세복수로 불렀으나 지금은 세복수초에 포함이 된 들꽃이다.

은빛세복수를 처음으로 만난 때는 본격적으로 야생화 사진 촬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2000년 중반경이다.

눈 내린 산사의 풍경을 찍기 위해서 눈이 내린 길을 따라서 관음사로 가고 있는데 눈 속을 뚫고 올라 온 세복수초들이 보인다.

눈을 뚫고 올라 온 꽃들이 너무나 신기하여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는데 노란색 꽃이 아닌 흰색 꽃이 핀 들꽃 한그루를 만났다.

야생화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던 때라 노란색 세복수초와 흰색 꽃이 핀 들꽃을 서로 다른 들꽃으로 알고 사진을 담았다.

흰색 꽃이 핀 들꽃이 은빛세복수초라는 것은 들꽃 촬영을 시작하고서야 알았다.

 

들꽃 촬영에 푹 빠진 후 몇 년 동안 봄이 되면 그 꽃을 보려고 그 꽃을 처음 만났던 옛 장소를 찾곤 했다.

찾아갔을 때마다 하얀 이빨을 들어내어 올해도 찾아줘서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몇 년 동안 보아 오던 은빛세복수초가 어느 핸가 이사를 가 버렸는지 소식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매년 보아온 죽마고우(竹馬故友)같은 들꽃인데 작별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이별을 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도, 그 장소 부근으로 출사를 가게 되면 은빛세복수초가 생각난다.

은빛세복수초를 잃은 후 오랫동안 은빛세복수초와 같은 들꽃을 만나지 못하다가 몇 년 전 모처에서 은빛세복수초를 다시 만났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 때 작별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은빛세복수초를 생각하면서 다시는 은빛세복수초와 이별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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