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대다수 대중들은 이해할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작곡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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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대다수 대중들은 이해할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작곡가는.."
  • 고현준
  • 승인 2020.12.2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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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칠 문화칼럼(연재(완))한라산 속의 음악은 어떻게 진행이 되었을까?

 

본지 명예문화대기자인 강문칠 선생(작곡가, 음악평론가)이 최근 한라산 속의 음악은 어떻게 진행이 되었을까? 라는 음악으로 본 제주의 역사서로 볼 수 있는 연구서를 내놓았다. 이 연구서는 그동안 제주에는 전무하다 시피한 음악의 역사를 살피고 숨어있는 얘깃거리를 발굴함으로써 제주도 음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번에 발굴한 내용 중에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이 제주도에 직접 내려와 제주시에서는 제일극장에서 서귀포시에서는 서귀포관광극장에서 제주시민과 서귀포시민들을 대상으로 직접 애국가를 가르쳤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전까지는 올드랭사인 곡에 애국가를 맞춰 불렀는데 이후 현재의 애국가로 바꿔 부르게 됐다는 얘기도 새로운 내용이다. 제주도의 작곡가이자 퍙론가인 음악가가 조사한 제주도 음악사를 통해 제주도 역사를 새롭게 아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편집자주)

 

(앞에서 계속)

 

 

강문칠 작곡가

 

효돈중학교에 재직하는 동안 총각 신세인지라 별로 부담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어서 ‘한라산’ 이외에도 ‘한라산’ 줄기인 오름을 자주 다녔다. 그리고 낚시를 좋아해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곧잘 바다로 나가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멀리서 바라다 보이는 ‘한라산’의 다양한 모습에 감탄하였다. 사계절 변화하는 ‘한라산’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아서 외국의 미술전시관을 방문하여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을 감상하는 듯하였다.

(악보,‘영실’ 이영운 작사, 강문칠 작곡)

 

(악보, ‘제주관악인의 노래’ 강문칠 작사, 작곡)

 

上記의 악보는 제주관악인의 노래이다. 1991년도에 강문칠은 제주도 관악협회 사무국장이었다. 행사가 있을 때면 사무국장이 모든 잡다한 일들을 맡아 했다.


 당시 한국관악지도자 협회장은 남궁요열이었는데, 제주도에서 대회가 열린다고 해서 서울에서 제주까지 내려 오셔서 대회가 열리는 제주제일고등학교 운동장으로 오셨다. ‘제주관악인의 노래’는 강문칠의 작사, 작곡으로 발표가 이루어졌다.

또한 제주 '클라리넷 앙상블 B-M'에서는 해마다 강문칠에게 창작곡을 의뢰하여 발표를 해 왔다. 그래서 탄생한 곡이 ‘한라산의 4계’ 중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해마다 한곡씩 작곡을 하여 발표를 해 왔다.
 
 맨 첫 발표회는 2017년 5월 제주대 아라 뮤즈 홀이었다. 제주 클라리넷 앙상블 팀을 위한 곡이었다. 연주자들은 대학에서 전공을 한 성인들로 구성이 되었다. 현대음악인데, 無調로 작곡이 된 곡은 제주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곡이었다. 그러나 전공자들이기에 곧잘 연주를 해 주었다.

2018년, 2019년, 해마다 봄, 여름, 가을을 작곡 하고, 2020년에는 겨울을 할 차례인데, 코로나 19로 인해 연주가 밀려 있는 상태이다.

(강문칠 작곡, 제주 클라리넷 앙상블 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위의 작품은 제주도 내에서는 흔치 않은 사례에서 등장한 작곡 작품이다. 강문칠과 클라리넷 앙상블을 지도하고 있는 임대흥 선생과는 오현고등학교 음악부 동문이다. 동문회에서는 해마다 신년이 되면 ‘신년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연주회가 가까워지면 매일 저녁 마다 모교 음악실인 연습실로 모인다. 연습 시간 중간에 임대흥 선생이 강문칠에게 다가와서(같은 클라리넷 파트) “선배님! 우리 앙상블(B-M, Baroqu-Modern) 팀을 위하여 클라리넷 곡을 써 주십시오”하고 부탁을 하였다.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위촉곡은 무사히 전달되었고 연주회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한라산의 사계’라는 타이틀은 작곡가 자신이 생각해 낸 것이다.


 평소에도 강문칠은 한라산을 언제나 가까이서 바라보곤 하였다.
 중학교 2학년 가을을 맞이하여 학교에서는 1박 2일 일정으로 한라산 등반을 하였고, 비록 정상 까지는 못 갔지만 그때가 한라산을 가장 가깝게 다가선 시간이었다. 그 때의 일을 마음 한 가운데 간직하고 있다가 고등학교 3년 때에 음악부 학생 몇 명이서 ‘한라산’ 정상 탈환을 하였다.

(악보, ‘한라산의 사계’ 중에서 ⌜봄⌟ 강문칠 작곡)

 

작곡가는 대다수의 대중들은 이해할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다수의 인생길을 전부를 체험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자신 만의 좋아하고 신나는 길을 걸어가는 것 바로 그것이 작곡가의 길인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한라산’에 대해서 신체적인 운동으로  등산하는 곳으로 이해하는 것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확신과 그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에 ‘한라산’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한라산’을 그리게 될지, 많은 사람들이 ‘한라산’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생각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내 자신도 ‘한라산’이라는 단어를 어떠한 모습으로 작곡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연주가 될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가지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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