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김해김씨(金海金氏) 정착, 정실마을 형성..오라2동 정실본향당(도노미본향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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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김해김씨(金海金氏) 정착, 정실마을 형성..오라2동 정실본향당(도노미본향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1.19 0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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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 전체의 생산, 물고, 호적, 장적(생명과 건강, 재산,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오라2동 정실본향당(도노미본향당)

 

위치 ; 제주시 오라2동 601-4번지의 남동쪽. 정실(도노미)마을 정수암 옥련천 남쪽
시대 ; 조선~현대
유형 ; 민간신앙(본향당)

오라2동_정실마을도노미본향 입구
오라2동_정실마을도노미본향

 


정실 마을은 1567~1608년경(조선 선조 때) 김해김씨(金海金氏)가 여기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당도 이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산, 물고, 호적, 장적(생명과 건강, 재산,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정실마을경로당 서쪽으로 조금 가면 내(川)가 있고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 옛날에는 식수로 사용했던 정수암(옥련천)이라는 샘이 있다.

옥련천 바로 위로 큰 팽나무가 보이고 그 밑에는 10평 정도의 궤(용암동굴, 바위그늘)가 있는데 이곳이 도노밋당이다. 약 33㎡ 정도의 궤를 신의 좌정처로 관념한다.

조록나무, 돈나무, 먼나무 등 상록활엽수들이 바위그늘위를 덮고 있다. 주변은 팽나무 군락지이다. 조록나무를 신목으로 삼고 있다.

이 궤는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화약보관소로 이용되었는데 이 때에는 당이 폐쇄되었고, 일본이 패망하면서 이곳에 무기들을 쌓아두고 도망하였는데, 이후로 이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아프기 시작하여 마을 사람들이 신당의 신들이 노한 것으로 판단하여 다시 신당을 정비하고, 제를 올리자 아이들이 말끔히 나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이야기제주)

4․3 당시에는 정실마을 주민들이 숨어 살기도 했던 곳이다. 이곳에 숨었다가 잡히거나 희생됐다는 이야기는 없다.(현장의 안내판) 제단은 잘 다듬은 현무암 판석으로 정성들여 만들어 설치했다. 마당 가운데에는 돌을 둥글게 둘러서 불 때는 곳을 만들어 놓였다.

본향당신은 할망․할으방 부부를 모셨는데, 원래 이곳에 좌정한 신은 하르방신인 김씨하르방인데, 송씨할망이 이곳을 지나다가 김씨하르방을 만나 같이 좌정하게 된 것이라 한다.

김씨하르방은 산신으로서 수렵을 하던 신이었는데, 송씨할망이 짐승의 피 냄새를 싫어해서 할아버지를 바위그늘집 바깥으로 자리를 밀어냈다고 한다.

할망은 조숫물삼대바지삼신불법할마님또(송씨할망)이고, 할으방은 김씨영감산신대왕통정대부이다. 조숫물은 한경면의 마을 이름이다. 신목은 조록나무로 잎과 가지가 무성하다.

당에 갈 때에는 메 2그릇, 백지 10장, 명실 1타래, 돌래떡, 과일 2종 등을 제물로 가지고 간다. 제일은 정월 3일, 7일, 13일, 17일, 23일, 27일이며, 진성기의 무가본풀이사전에는 정월 첫축일(丑日)이라고 되어 있다.

그 때 당에 가서 신에게 세배를 한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 오라2동 정실 본향을 마을의 신앙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2년에 한 번씩은 마을 주민들이 모여 당제를 지낸다.

당맨심방은 강재길이었는데 1990년대말에 돌아가셨고 대가 끊겼다.(오라동향토지, 제주여성문화유적,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지금도 음력 정월 3일 또는 7일, 13일 중에서 택일하여 마을제와 함께 제를 지내고 있다. 예전에 비해서 제를 지낼 때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는다. 지금도 꽃(造花)을 꽂아 놓기도 하는 등 늘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본풀이 ; 동도노미경신(정실?)본향할마님. 조숫물삼대받이 사신용궁큰딸애기 삼신불법할마님또, 할으바님은 김씨영감산신대왕 김씨영감통정대부.
《작성 2011-01-30, 보완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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