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관청의 자재로 관덕정 본따 만든..김녕리 김녕정사(金寧精舍)터
상태바
[향토문화] 관청의 자재로 관덕정 본따 만든..김녕리 김녕정사(金寧精舍)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2.14 18: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설치되어 학문을 가르치던 사학(私學)의 터

김녕리 김녕정사(金寧精舍)터

 

지역 ; 구좌읍 김녕리 3626번지. 현재 서김녕리 마을회관에 위치
시대 ; 고려후기~조선전기
성격 ; 사학(私學)

김녕리_김녕정사터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설치되어 학문을 가르치던 사학(私學)의 터.

조선 인종1년(1545) 11월에 부제학 자리에 있던 임형수(林亨秀)가 제주목사로 좌천되어 부임했다가 다음해 10월 파직되어 떠났다.

그는 제주목사 재임중 김녕포구 위에 김녕정사를 건립했다. 관청의 자재로 관덕정을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향교의 유생(儒生)들로 하여금 글공부에 정진하게 하고, 학식과 덕망이 있는 사람을 학장(學長)으로 삼았다.

동서학당(東西學堂)으로 명칭이 바뀌기도 하였으나 철폐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인조5년(1627) 서학장 강계훈(姜繼勳)이 대정향교 훈도로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학장으로 취임했고, 학당 수리를 위하여 목사에게 목재 지원을 간청한 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1600년대 중반까지는 존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자 김동전, 구좌읍지 179쪽)

화재로 장부, 집기, 중요 기물이 모두 불타 없어진 후 복구를 하지 못했다.(구좌읍지 512쪽)

1600년경에 풍헌제도가 되면서 이 정사는 풍헌사무실로 사용하다가 1800년경에 관찰사의 청사로 사용. 1850년경에 관찰사청을 행원으로 이사하였다.

1900년경에는 평대리에 면사무소를 신축하고 모든 구좌면의 행정사무를 전담하였다. 이 청사는 일본인들이 한일합방후에 일본인 순사주재소로 사용하다가 타처로 주재소를 신축하여 감으로써 리 공회당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화재로 인하여 건물이 반소된 것을 수리했으나 고건물로서 유지하지 못해 철거하고 서김녕리 사무소를 건축하였다.(황철보님 글)

한편, 순조31년(1831)에는 이예연(李禮延) 목사가 화촌(지금의 구좌읍 세화리)에 좌학당(左學堂)과 명월촌에 우학당(右學堂)을 세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