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화북1동 가릿당(본향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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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화북1동 가릿당(본향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2.2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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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갈라 온 당’이라는 의미의 ‘가짓당’이 ‘가릿당’으로 전화했다는 설이 있다.

화북1동 가릿당(본향당)
 

禾北洞 本鄕(가릿당)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1247-6.
시대 ; 조선
면적 ; 약 26㎡
소유자 ; 화북동 마을 복지회관
관리자 ; 마을 신앙민

 

 


화북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이다.

화북동 본향에서는 ‘큰도한집’, ‘동고칫할망’, ‘서고칫할망’의 3신위를 모시는데, 큰도한집은 마을 사람들의 생산, 물고를 관장하는 본향신이고, 동고칫할망과 서고칫할망은 부스럼을 치료해 주는 치병신이다.

그런데 본풀이에는 해신요왕또, 돌윗당 오금상또, 큰도한집, 정주문요왕또, 삼천백매또 등 여러 신위가 등장하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목축신인 오금상또를 모시는 ‘윗당’이 폐당되면서 화북동 본향에 합당되었고, 화북의 동동네, 서동네에 있던 ‘자운당’, ‘삼동낭할망당’ 등의 일뤠당들도 폐당되면서 역시 화북동 본향에 합당된 것으로 짐작된다.

화북동 본향은 ‘가릿당’이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가지 갈라 온 당’이라는 의미의 ‘가짓당’이 ‘가릿당’으로 전화했다는 설이 있다.


화북동에 대한 기록으로는 ‘1270년 고려 원종 11년 경오 11월에 삼별초군이 탐라를 정벌하려 할 때 동제원(東濟院)에서 관군과 일전(一戰)을 하였다’라는 기록이 문헌상으로 알려진 화북경(禾北境)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또한, 1300년(충렬왕 6) 제주에 10현을 설치할 때 제주를 동서로 구분하여 이도(二道)를 설치하면서 서도에 처음 별도현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기록들로 보아 적어도 600여 년 전부터 화북동이 세워졌다고 보여지며, 신당의 건립도 이때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일은 정월 7일, 17일과 매달 3일, 7일이며, 신당에 갈 때는 메 세 그릇을 준비한다. 현재는 화북동 주민 일부만이 다니는데 꼭 제일을 지키기보다는 택일해서 다니는 경우가 많다.


화북동 본향은 수림형 본향당의 형태를 띠며 해신당으로 밭 남쪽 구석에 작은 신목이 있으며, 신목 앞에 잡석을 쌓아 제단을 만들었다.

원래 제장 주변에는 돌담이 있었으나 현재는 무너진 상태이며 송악나무와 까마귀쪽나무에 명실이 많이 걸려 있다.

2013년 3월2일 답사 때에는 새로운 명실과 제물로 올렸던 싱싱한 과일이 사진과 같이 많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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