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포구의 여건 좋지 않았던 곳..하도리 옛등대(도대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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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포구의 여건 좋지 않았던 곳..하도리 옛등대(도대불)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3.05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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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게 되자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하도리 옛등대(도대불)터

 

위치 ; 하도리 포구 남쪽 치성 위
시대 ; 현대(1969년)
유형 ; 어로유적

 

하도리_도대불터(디제문)

 

박천형의 『서계(書啓)』에는 별방진에 대해서 “동쪽과 북쪽이 바다에 임하였고 성안은 화북이나 조천에 비해 조금 넓으며 동·서·남에 세 문과 성 안에 두 우물이 있으나 포구의 공간이 몹시 좁고 뾰족 나온 돌 모서리가 창같이 날카로워 배를 정박할 수가 없다.

횃불을 비치해 경보하는 것이 좋을 듯하며 성을 설치하여 방어하는 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닌 듯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도리는 포구의 여건이 좋지 않았던 곳이다.

하도리 도대불은 이 별방진이 허물어진 후, 포구에 맞닿은 북쪽 치성 위에 1969년 7월 15일 신동청년회 주관으로 설치하였다.

높이 120㎝의 직육면체 돌담을 쌓고 그 위에 높이 2m의 철제기둥을 세웠다. 그 꼭대기에 들고다니는 석유등을 놓게 만들었다.

풍선(風船)을 가지고 있던 선주들이 조금씩 석유를 내어 불을 밝혔다. 1979년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게 되자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하단부의 돌탑은 1996년 12월까지 남아 있었으나 1997년 별방진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없어졌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자 한금순, 학교가 펴낸 우리 고장 이야기)
《작성 110410, 보완 1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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