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탐라국시대 최대 취락지구 중심부 추정..용담2동 탐라시대마을유적(국가 사적 5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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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탐라국시대 최대 취락지구 중심부 추정..용담2동 탐라시대마을유적(국가 사적 522호)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3.2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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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적은 기원전 200년에서 기원후 200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용담2동 탐라시대마을유적(국가 사적 522호)

 

국가 사적 제522호(2012년 5월 지정)
위치 ; 제주시 용담2동 2696-2, 2696-24번지. 동산마을 표석 있는 곳.
시대 ; 탐라전기(기원전200~기원후200년 추정)
유형 ; 선사시대 주거유적

용담동_탐라시대유물(한겨레)

 

용담2동_유물산포지5지구 우물

 

이곳은 해안에서 약 1.5㎞ 떨어져 있는 평탄지대로 주택신축을 위한 사전발굴을 하던 중 발견된 것으로 2011년 2월부터 5월까지 연립주택 신축예정지 2필지 2258㎡에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탐라국시대 최대 취락지구 중심부로 추정되는 유적과 함께 다량의 유구와 유물이 출토되었다.


제주고고학연구소의 시굴조사에서 수혈 주거지 29기, 원두막 형식의 굴립주 건물지 2동, 부엌 등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불다짐소성유구 3기, 수혈유구 56기 등 100여기의 유구와 홈돌, 갈돌, 갈판, 돌도끼 등 500점 이상을 발굴했다.


★굴립주 ; 옛날 건축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지반을 그대로 기단으로 사용했다. 이 때 기둥을 지반에 구멍을 파서 세우는데 이러한 기둥을 굴립주(堀入柱)라고 한다.


유구란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흔적을 말한다. 유구는 이미 조사된 용담동 송국리형 취락유적의 일부로 판단되고 있다. 특히 굴립주 건물지는 지금까지 확인된 굴립주 건물지의 주혈 배치와 달리 양 끝단 중앙부분의 주혈기둥이 확인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유물은 직립구연토기, 원형점토대토기, 삼각점토대토기, 발형토기, 적갈색토기 개체분, 파수부토기 등과 외지산의 회청색타날문토기, 와질토기, 연질토기 등이 확인됐고, 마제석부, 유구석부, 석착, 홈돌, 고석, 갈돌, 갈판 등의 석기류, 석기 제작시 이용된 몸돌과 석재, 격지 등의 석기와 방추차와 고배형토기 등 토제품, 철제삼각만입촉 등 철제품, 장신구인 관옥 등이 출토됐다.


이번 발굴된 유적은 지금까지 가장 큰 마을로 평가되던 삼양동유적지보다 많은 유구와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용담동 일대 유적들 중에서도 유구 밀집도가 매우 높게 나타났다.

주거지의 선후관계, 출토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제주도 송국리형 주거지 연구에 있어 매우 좋은 학술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유적은 기원전 200년에서 기원후 200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탐라국 형성 과정과 그 중심지의 읍락구조를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제주고고학연구소 관계자는 “이번에 발굴된 유적은 초기 철기시대인 탐라국 초기(BC3~AD3세기)의 것으로 보인다”며 “인근의 지석묘와 용담동 고분 등을 고려할 때 탐라시대 큰 세력이 거주한 마을 유적지로 추정된다”고 말했다.(한겨레, 제민일보, 제주일보, 한라일보, 제주의소리 2011년 5월 10일)

한편 용담동은 평탄지대에 해안으로부터 솟아나는 용천수의 이용이 매우 용이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선사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산포지 5곳이 이미 확인됐고, 고인돌과 다수의 소규모 발굴 등이 이루어진 유적군을 갖고 있다. 이는 구제주시를 중심으로 동쪽의 삼양동유적, 서쪽의 외도동유적과 함께 제주도 북부에 위치하는 최대의 선사시대 유적군이 확인되는 곳이다.


용담동일대의 고고학적 조사는 1959년 서울대 김철준 교수에 의해 제주시 일원에 분포하는 고인돌 조사에서 시작됐다. 제주도의 고인돌은 대부분 한반도의 기반식과 개석식에 해당하는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용담동은 외도동, 광령리와 함께 지상 위석식 고인돌이 확인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후 월성로, 용문로, 먹돌로, 다호마을, 제주국제공항 일대에서 다수 유적이 발굴됐다.


특히 용담동에는 청동기 및 초기철기시대 (B.C10세기~A.D 전후로 추정)에서 탐라전기에 속하는 많은 유적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를 미루어 오랜 옛날부터 ‘한천’을 중심으로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http://cafe.daum.net/aoraj)

2011년 5월 10일 답사에서 보니
위 기사에서 언급한 사항 외에 우물 유적도 3곳이 있었고, 남쪽 경계선 옆에서는 대략 20㎝×10㎝ 크기의 탄화된 나무도막(숯) 3개가 흙에 묻혀 표면만 드러나 있고 그 구역에는 넓은 부분에 걸쳐 흙이 붉게 탄 채로 남아 있었다.

위 내용을 종합해 보면

용담2동 탐라국유적의 개요
위치 ; 용담2동 2696-2 일대 3필지(2258㎡)

시기 ; 기원전200년~기원후200년(400년간)
발굴(시굴)조사 시기 ; 2011년 1~2월
유적의 중요성 ; 탐라국시대의 중심부 추정, 유구밀집도 높음
발굴조사팀 ; 제주고고학연구소(소장 황석규)

발굴 성과
①수혈주거지 29기
②원두막 형식의 굴립주건물지 2동
③불다짐소성유구 3기
④우물址 4개소
⑤수혈유구 56기
⑥석기류 ; 마제석부, 홈돌, 갈돌, 갈판, 몸돌
⑦토기류 ; 방추차, 고배형 토기, 직립구연토기, 원형점토대토기, 삼각점토대토기, 발형토기
⑧철기류 ; 철제삼각만입촉
⑨장신구 ; 관옥

용담동 탐라국유적이 사적지정 권고를 받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위원장 지건일외 10명 중 9명 참석, 만장일치)의 결정(2011년 6월 24일) ; 보존 조치 + 사적 지정 권고

사적으로 지정된 토지는 21필지 10,279제곱미터이다.

2014년 3월17일부터는 바로 서쪽에 붙은 토지인 2697번지 외 5필지(5,909제곱미터)에 대해 시굴조사에 착수하였다. 조사 목적은 탐라시대 생활상 복원이다. 2014년 4월 15일 마무리 예정이다.(제민일보, 제주일보, 제주매일 140319)

《작성 110510, 보완 1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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