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여성만의 공간으로 최고..신풍리 검은데기불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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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여성만의 공간으로 최고..신풍리 검은데기불턱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4.11 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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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턱은 여성들이 언 몸을 녹이고, 옷을 갈아입는 탈의장이자 놀이터였다.

신풍리 검은데기불턱

 

위치 ; 신풍리 일주도로 ‘우물안개구리’식당 옆길 → 포구, 신풍리해녀 탈의장 200m 지점
유형 ; 어로시설(잠녀편의시설)
시대 ; 일본강점기

신풍리_검은데기불턱(김은희)

 

신풍리_검은데기불턱 전경



제주해녀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문헌을 살펴보면 고려 숙종10년(1105) 탐라군의 구당사로 부임한 윤동균이 ‘해녀들의 나체조업을 금지한다’는 금지령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 전부터 해녀가 존재했음이 분명하다.(뉴스쉐어 120511)


문화재청과 제주도는 해녀의 사회적 기능을 ▲대상군의 리더십 ▲노약자에 대한 배려 ▲공익에 대한 헌신과 참여 ▲민주적 의사결정 ▲공동어장 관리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로의 역할까지 여섯 가지로 규정지었다.


대상군의 리더십은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 전체 리더 격인 대상군 해녀가 다른 해녀의 작업을 안전하게 이끌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화합과 마을 전체의 공익에도 기여하는 점이다.


노약자에 대한 배려는 늙고 허약한 해녀를 위해 따로 마련한 할망바당, 신입생 해녀에게 그날 잡은 해산물 중에서 가장 크고 좋은 것을 선물하는 풍습(게석) 등이 해당된다.


공익에 대한 헌신과 참여는 수익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마을길 정비, 학교 건물 신축 등을 지원하는 사례를 꼽을 수 있다. 바다 한 구역을 정해 수익금 전액을 이장에게 주는 이장바당, 자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육성회비를 충당해주는 학교바당 같은 규정도 여기에 속한다.


민주적 의사결정은 문제 해결 방식으로 자유토론의 시간을 충분히 거친 후 모든 조직원이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만장일치제를 택하는 모습이다. 의견 차이가 심해 결론을 내지 못할 경우, 원로 대상군의 의견을 따르게 된다. 이런 모습은 자생적으로 발생한 민회(citizen assembly)를 떠올리게 한다.


공동어장 관리는 마을 앞 바다를 자신의 밭처럼 여기면서 다 함께 관리하는 노력을 의미하고,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로의 역할은 자원고갈, 황금만능주의, 불평등 사회구조 같은 전 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할 지속가능한 인류 발전 모델이라는 점이다.


문화재청과 제주도는 이런 이유를 바탕으로 “ 제주해녀가 모두 사라지면 물질 기술과 바다에 대한 지식, 그들의 합리적인 공동체 운영에 대한 지혜, 잠수굿이나 용왕굿 같은 풍습이 모두 사라진다. 제주해녀를 ‘살아있는 유산’으로 보존하는 조치가 한시바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고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는 제주해녀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제주의소리 161201)

이번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도 해녀가 페미니즘과 공동체 문화의 아이콘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해 최종 등재를 결정했다. 무형유산위원회는 제주 해녀문화가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점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점,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해 전승된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여성신문 161201)


신풍리에도 한때 100여 명이 넘은 해녀들이 있었다. 조합원은 해녀증이 발급되면 병원 무료진료도 되고 바다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조합을 탈퇴하는 순간 바다에서 나는 어떤 것도 잡을 수 없게 된다. 바다의 길이가 짧았던 신풍리는 서쪽으론 신천리와, 동쪽으론 삼달리하고 바다 경계를 두고 여러 차례 싸움이 있었다.


불턱은 제주해녀들의 쉼터이자 담화 공간이었다.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언 몸을 녹이고 옷을 갈아입기도 했다. 불턱에서 해녀의 정년이 정해지기도‘삼춘, 삼촌은 올해부터랑 바당에 나오지 맙서.’라고 해서 잠수회장이 고령 해녀에게 은퇴를 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고, 해녀 스스로 몸에 이상 등을 이유로 더 이상 바다에 나서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해녀간 불미스런 일이 생겨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상군해녀 직권으로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공동 작업인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은 오랜 세월을 통해 축적된 '동의'를 전제로 한다. 불턱은 공동체 문화의 대표적 공간이자 지친 해녀들을 위로했던 소중한 문화공간이지만 해녀의 감소와 탈의실 사용으로 이제는 이용하는 이들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제민일보 170221)


'게석'이란 해녀 용어 역시 불턱에서 만들어졌다. 옛날 작업에 서툰 똥군 해녀들을 응원하고 나이 많은 해녀들의 상실감을 채우는 '한 주먹'이다. 애써 채취한 물건을 몰래 그들의 망사리에 넣어주는 행동은 '공동체'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게석이라는 제주어 안에는 예부터 내려오는 나눔과 배려라는 아름다운 제주의 문화가 담겨 있다.


지난 2013년 제주도와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가 공동으로 진행한 '해녀문화유산조사' 결과를 보면 당시 기준으로 남아 있는 도내 불턱은 34곳에 그쳤다. 한 어촌계당 2~3곳, 많게는 5곳 이상 있었다던 해녀들의 기억에서 유추해볼 때 적어도 200곳 이상의 불턱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마저도 현재 이용 중인 불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관리상태가 미흡해 '소멸'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불턱 등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아직 커지지 않고 있다. 제주해녀문화는 2015년 국가어업유산 1호에 이어 지난해 우리나라의 19번째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대표목록으로 등재됐다.

등재 내용에 '불턱'이라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잠수장비 없이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물질'문화 △제주도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해녀, 지역공동체의 정체성 형성 등의 부연 설명과 여성 주도 문화라는 점에서 불턱의 의미는 매우 크다.


시대가 바뀌면서 돌 대신 시멘트 벽으로 바람을 막은 공간이 만들어졌고 다시 현대식 시설을 갖춘 '해녀탈의실'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불턱이 지닌 의미가 희석되기도 했다. 이제는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으면 보존·관리가 어려운 상황이 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제민일보 170221)


검은데기불턱은 신풍리 큰개 포구 앞에 위치해 있다. 신풍리 하동 탈의장에서 서남쪽 바다 쪽으로 보면 사각형 주택의 담처럼 보이는 것이 불턱이다. 원래는 담이 없었는데 마을에서 해녀수가 점점 늘어가자 일제강점기에 마을사람들을 동원하여 만들었다.

신풍리 바닷가는 큰 바위들이 없이 평평한 암반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지형지물을 이용한 자연 불턱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잠수들을 보고 왜정시대에 오홍국(吳洪國) 구장이 창안해 낸 모양이며 그의 주선으로 리민이 동원되어 쌓았다. 1970년대에 담을 더 높여 쌓았다.


이 불턱은 물질하고 나온 잠수들이 작업하기 좋은 위치에 설치되어 있으며, 불턱 입구에 벽이 있어 밖에선 보이지 않아 여성만의 공간으로 최고이다. 불턱은 여성들이 언 몸을 녹이고, 옷을 갈아입는 탈의장이자 놀이터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현대식 탈의장이 건립되고, 야외 불턱은 외면당하고 있으나, 검은데기불턱만큼은 보존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지역 사람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2006년 냇가의 풍년마을, 제주여성문화유적100. 김은희 글)
《작성 110703, 보완 1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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