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가장 많은 주민 학살 목호의 난 진압..법환동 범섬(목호토벌최후전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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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가장 많은 주민 학살 목호의 난 진압..법환동 범섬(목호토벌최후전투지)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4.26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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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장군에게 쫓긴 목호의 지도부 석질리필사 등이 마지막으로 피신한 곳이 범섬이다

법환동 범섬(목호토벌최후전투지)

 

주소 ; 서귀포시 법환동 산1-3.
시대 ; 고려말(1374)
유형 ; 전적지

법환동_범섬(blog해수).

 

범섬.

 


범섬은 북위 33°12′50″, 동경 126°31′01″에 위치하고 면적은 84,298㎡이다.

섬의 전체 모양은 남북이 0.58㎞, 동서가 0.45㎞여서 남북이 긴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이며, 단면은 60~100%의 급경사를 보이고, 저면암질 안산암이 수직으로 된 주상절리를 이루고 있다.

섬 전체는 단애를 이루고 정상을 이루는 중앙부는 비교적 넓은 평지를 이루고 평지 중앙부 남쪽 가장자리에 용천수가 있다.

서해안에는 폭 1~1.5m의 파식대가 길이 100m 이상으로 발달해 있고, 남동해안에는 높이 20~30m, 폭 40~50m, 길이 15~20m의 커다란 해식동굴이 발달해 있고, 남서해안에도 높이 10m, 폭 20m, 길이 40~50m의 긴 해식동굴이 발달해 있어, 이들 해식동굴의 천장에는 6각, 8각형의 주상절리 단층면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원나라에서 파견되어 제주를 다스리던 목호들을 토벌하기 위해 제주에 온 최영 장군에게 쫓긴 목호의 지도부 석질리필사 등이 마지막으로 피신한 곳이 범섬이다. 최영 장군도 배 40척을 몰고 범섬을 압박했다.

결국 초고독불화, 관음보 등은 투신 자결했고, 석질리필사는 가족과 함께 항복했다. 최영은 항복한 석질리필사도 처형하였다.

범섬 전투가 끝난 후에도 동아막의 목호들이 수백명을 거느리고 계속 저항했다. 이에 최영은 장수들을 거느리고 성을 쳐부수고 도망하는 무리를 샅샅이 찾아내어 전부 죽였다. 이렇게 해서 삼신인 이래 가장 많은 주민이 학살된 목호의 난은 진압되었다.


범섬은 421호 천연보호구역(2000년 7월18일 지정)이기도 하다. 범섬의 식물상은 북측 단애에 상록활엽수림이 좁게 나타나 구실잣밤나무, 종가시나무, 참식나무, 후박나무, 사철나무, 동백나무 등이 우점하고 , 상부는 참억새를 중심하여 멍석딸기, 병풀, 아욱메풀, 잔대 등으로 대표되는 초지를 이루고 있어, 총 142종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특히 거문도와 북제주군의 한경면 용수리에서만 자생하는 것을 알려진 물푸레나무과의 박달목서(Osmanthus insularis Koidzumi)가 자생하여 주목된다.

천연기념물 흑비둘기의 서식지이며, 많은 미기록 생물과 신종생물의 출현이 예상되는 풍부한 생태계로 인하여 반드시 보존 관리하여야 할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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