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한국인 건축가 박진후 선생이 설계..삼도2동 구제주시청사(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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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한국인 건축가 박진후 선생이 설계..삼도2동 구제주시청사(멸실)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4.29 0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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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0월 16일 준공되었다. 당시 건립된 몇 안 되는 근대건축물이다.

삼도2동 구제주시청사(멸실)

 

위치 ; 삼도2동 1022-3번지
유형 ; 근대건축
시대 ; 대한민국(1959)

삼도2동_구제주시청사
삼도2동_구제주시청건물


제주시는 1955년 9월 1일 읍에서 시로 승격되었다. 1958년 6월 8일 이곳을 시청사 부지로 결정했다.

이곳은 조선시대까지 제주시 정치의 중심지였던 제주목관아를 옆에 끼고 있고, 일제시대에는 세무서, 경찰서 등이 모여 있던 곳이어서 정치 행정의 중심지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위치였다.


한국인 건축가 박진후 선생이 설계했다. 건축물이 건립된 1950~1960년대는 사회적으로는 혼란기였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시기에 제주에서는 최초로 시멘트벽돌조로 건축했다. 지붕은 목조 트러스이다.

건물은 거의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지붕을 위에서 보면 우진각 지붕을 기본으로 해서 용마루가 U자로 이어져 있으며 그 안에 다시 우진각 지붕이 있는 형태이다. 1959년 10월 16일 준공되었다. 당시 건립된 몇 안 되는 근대건축물이다.


1980년 3월 12일 구도청사로 시청사가 옮겨가게 되자 1988년 개인에게 매각되었고 현재 매장 및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근대건축물로서 보존 가치가 크다.


건축학계 등은 옛 제주시청사에 대한 보전·활용방안 마련을 주문했지만 지난 2005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제주시청사와는 달리 사유지라는 이유로 추진하지 않았고, 2012년 12월 말 철거됐다.

철거 장면을 지켜본 고영준씨의 증언에 따르면 외부는 석조건물이고 계단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으나 내부는 대부분 목조였다고 한다.


2013년 4월에 건물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했는데 부지 주변이 탐라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제주도 북부 최대 유적군을 이루고 있는 지역임에도 이번 발굴에서 이 시대의 주요 유구·유물이 조사되지 않았다. 출토된 유물은 기와류와 자기류 16점과, 화폐류 3점이 전부다. 이는 근현대를 거치는 동안 각종 공사로 이 일대가 상당부분 훼손돼 원형을 잃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발굴된 유구 중 옛 제주면사무소로 이용했던 부분은 조사대상지 남쪽으로 2단의 기단석렬이 배치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나타났다. 발굴팀은 기단석렬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재배치된 것으로 판단했지만 내부 초석 일부는 조선시대 후기의 기존 건물지를 일부 그대로 이용했던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옛 제주시청 부지는 조사대상지 전부분에 걸쳐 확인됐고, 건물을 축조하기 전 조사대상지 전반에 걸쳐 매립작업 등이 선행된 것을 확인했다. 출토된 유물은 기와류와 자기류, 그리고 화폐류 등 종류가 단순하고 발굴 수량도 적었다.


기와류는 목관아지에서 출토됐던 조선전기 어골문계에서부터 근현대의 기와까지 다양하게 출토됐고, 자기류는 조선시대 백자에서 일제시대 자기까지 출토됐다.

그러나 일제 자기가 대부분을 이뤘다. 화폐류는 대한제국에서 일제강점기까지 통용됐던 동전들로 확인됐다. 이처럼 시기를 달리하는 유물들이 섞여서 출토되는 이유가 여러 시기의 건물지가 같은 자리에 연속적으로 지어졌다가 해체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근무했던 공무원들의 이야기나 호적등초본 발급 등 민원을 위해 출입했던 수많은 제주도민의 애환이 서려있는 추억거리와 숨어있는 이야기들이 철거와 함께 사라져 가슴 허전한 아쉬움만 남는 곳으로 변모해가고 있다.(미디어제주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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