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대작 제주에서 만나다..섶섬이 보이는 풍경’등 故 이건희 컬렉션 12점 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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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대작 제주에서 만나다..섶섬이 보이는 풍경’등 故 이건희 컬렉션 12점 제주로”
  • 김태홍
  • 승인 2021.04.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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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화가가 본 서귀포 풍경·가족과의 추억, 오는 9월 이중섭미술관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천재화가 이중섭의 대표작품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총 12점의 원화가 제주도에 기증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9일 제주도청 본관 2층 삼다홀에서 온라인 브리핑을 갖고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인 삼성가(家)로부터 이중섭 화가의 대표 작품 12점을 기증받아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에 소장한다고 밝혔다.

기증 작품에는 지난 1951년 이중섭 화가가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 머물며 남겼던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비롯, ▲해변의 가족 ▲비둘기와 아이들 ▲아이들과 끈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등 유화 6점과 수채화 1점이 포함됐다.

이중섭 화가가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절 당시 연인이었던 이남덕 여사에게 보냈던 1940년대 엽서화 3점과 서귀포와 관련이 있는 ‘게(蟹)’와 가족, 물고기, 아이들을 모티브로 1950년대에 제작한 은지화 2점도 함께 전달됐다.

1951년 서귀포에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초가집 사이로 눌과 나목, 전봇대, 섶섬이 어우러져 제주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중섭 화가가 가족을 그린 그림들은 일본에 있는 부인과 두 아들과의 재회의 꿈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기증 작품에 포함된 ‘해변의 가족’은 초록색 바다를 배경으로 새들과 가족이 하나가 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아이들과 끈’ 작품은 아이들이 서로 끈을 통해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기증 작품은 이중섭 화가의 짧은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서귀포 시절, 가장 사랑했던 가족과의 추억을 담은 작품이라 의미가 남다르다”면서 “전쟁과 피난의 시련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 행복을 나눴던 이중섭의 작품이 코로나19 위기를 견뎌내고 있는 도민과 국민 여러분께 위로와 희망의 백신이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원희룡 지사는 “이중섭 화가의 귀한 작품을 기증해주신 삼성가에 감사드린다”며, “기증 작품을 지역문화 자산으로 잘 보존하고, 활용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 측은“이번 이중섭 화가 작품 기증은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뜻을 기리는 차원에서 기증된 것”이라며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지역 간 문화 격차를 해소할 수 있도록 지역 사회로 환원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기증 작품들은 이중섭 화가의 기일인 9월 6일을 전후로 특별 전시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삼성가(家)의 기증으로 이중섭미술관이 소장한 이중섭 원화 작품은 59점이 되며, 이중섭 서지 자료 및 유품 등 37점을 포함하면 소장 작품은 총 96점이 된다.

한편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9년 이중섭은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도화교사이자 영어교사였던 임용련으로부터 미술 지도를 받았다. 이중섭은 1937년 일본 문화학원 미술과에 입학한 이중섭은 1938년 일본 ‘자유미술가협회’전람회에 5점의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 1943년에는 작품 ‘망월’로 특별상인 태양상을 수상했다.

1943년에 귀국한 이중섭은 문화학원시절 사귀었던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와 1945년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일본인 아내에게 ‘이남덕(李南德)’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지어 주었다. 1948년에 아들 태현(泰賢)이 태어났고, 1949년에는 차남 태성(泰成)이 태어났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원산을 떠나 부산을 거쳐 1951년 1월 중순에 가족과 함께 서귀포로 피난 와 약 1년간 거주하면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 ‘서귀포의 환상’, ‘바닷가의 아이들’ 등 서귀포 시대의 명작을 남겼다.

1952년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으로 가게 되고, 이중섭은 1953년 주변에서 마련해준 선원증으로 일본에 건너가 가족들과 극적으로 상봉했으나 일주일 만에 귀국했다. 1955년 이중섭은 서울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어 작품도 적잖게 팔렸으나 제대로 수금이 되지 않았고, 일본의 가족을 만나러 가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이중섭은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1956년에는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어 영양부족과 간장염으로 9월 6일 서대문 적십자병원 무료병동에서 지켜보는 사람 없이 만40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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