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제주도 제염의 효시..종달리 제2수답공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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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제주도 제염의 효시..종달리 제2수답공덕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4.30 0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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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간척지 사업으로 성공된 첫 케이스..金仁和 북제주군수는 '종달리군수'라는 애칭까지 얻어

종달리 제2수답공덕비
 

위치 ; 종달리 814-5번지
유형 ; 비석(송덕비)
시대 ; 대한민국

종달리_제2수답공덕비와갈대밭

 

종달리_제2수답공덕비


종달염전(鹽田)은 제주도 제염의 효시인 동시에 소금생산의 주산지였다. 하지만 종달 제염업은 해방후부터 육지부 천일염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수지를 맞추지 못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래서 염전터를 수답으로 바꾸는 공사가 1957년부터 시작되어 격변하는 정치 상황 속에 공사가 답보상태를 거듭한 끝에 1969년에 32ha의 옥토가 만들어졌다. 이 사업은 제주도의 간척지 사업으로 성공된 첫 케이스다.

현장에 당시 도지사와 북제주군수에 대한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한라일보 2003년 10월 24일 한라산 학술대탐사 169회)

당시 金仁和 북제주군수는 사업의 진두지휘를 위하여 날마다 종달리 현장에 나오는 것이 일과가 되었기 때문에 '종달리군수'라는 애칭까지 얻었다고 한다.(지미의맥 79쪽)


마을 길에 있는 공덕비에는


《제15대 제주도지사 구자춘 송덕비》“바닷물 밀려들든 옛날 갯벌이 황금빛 물결치는 옥답이 되어 풍년송 하늘 높이 울려 퍼지니 높으신 그 은덕의 보람이어라. 이 기쁨 잊지 않고 언제까지나 자손만대 길이길이 간직하리라.”


《제12대 북제주군수 김인화 공덕비》“여기 버려졌든 넓은 갯벌에 영글은 벼이삭이 넘실거리고 보람찬 새 희망의 꿈을 이루니 높으신 그 은덕의 보람이어라. 이 희망 길이길이 언제까지나 자손과 더불어 간직하리라."


라고 새겨져 있다. 지금은 논농사도 수지가 맞지 않아 그만두었기 때문에 갈대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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