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바다밭의 경계..삼달2리 바다밭경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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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바다밭의 경계..삼달2리 바다밭경계석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5.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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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 2개의 직선연장선이 어장 경계선..암반 위에 사각뿔대 모양의 시멘트 구조물 2개가 있다.

삼달2리 바다밭경계석

 

위치 ; 성산읍 삼달2리 분드리포구 앞 암반(여) 위
유형 ; 어로관련시설
시대 ; 미상(일제강점기 추정)

삼달2리_바다밭표석
삼달2리_바다경계표석 전경

 

삼달2리는 북쪽의 분드리포구로 신산리와 경계를 짓는다. 포구 앞에는 밀물 때 어느 정도 물에 잠기는 암반이 펼쳐져 있는데 이 암반 위에 사각뿔대 모양의 시멘트 구조물 2개가 있다.

이것은 해녀들의 바다밭(어장)을 구분해 놓은 것이다. 표석은 암반 위에 사각뿔대 모양으로 거푸집을 만들어 그 속에 자갈·모래·시멘트를 섞은 것을 넣어 굳힌 것으로 보인다.

밑면 가로·세로의 길이 각각 55㎝, 윗면은 각각 30㎝, 빗면은 90㎝로 되어 있으며, 윗부분에는 깃발을 꽂을 수 있도록 지름 6㎝의 구멍이 뚫려 있다.

마을 주민의 말에 따르면 신산리와 삼달2리의 바다밭 다툼이 심했었기 때문에 이 표석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표석 2개의 직선연장선이 어장 경계선이다.

다른 마을의 경우 바다밭의 경계는 대체로 조선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졌으며 그 중요한 원인행위는 시체 치우기였다.

행원-한동, 위미리의 지꾸섬 차지, 함덕-신흥, 건입-화북 등의 바다밭 경계짓기에서 그런 사례가 있다.

그러나 신산리와 삼달2리의 경계구획 원인행위는 무엇이었는지 미상이지만 대체로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으로 보이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생산물 채취가 중요 원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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