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청렴의 나선(螺線)
상태바
(기고)청렴의 나선(螺線)
  • 오수현
  • 승인 2021.05.21 1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수현 서귀포시 관광진흥과
오수현 서귀포시 관광진흥과
오수현 서귀포시 관광진흥과

점심을 먹기 위해 일행과 함께 들른 어느 중화요릿집. 개중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짜장면을 주문하자 너도나도 덩달아 같은 메뉴를 고르는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이 불편한 상황 속에서 당신은 짬뽕 혹은 볶음밥을 시킬 용기가 있는가? 혼자서만 모난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던 당신은 짜장면이 다수의 지배적 의견임을 확인하고는 끝끝내 말을 삼킨다. 화창한 오후, 묵직한 침묵이 나선처럼 퍼져 나간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오롯이 실현되지 못하는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주류에 편승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소속된 환경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각이 주류와 부합한다고 판단할 때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한편, 비주류임을 확인하는 반대의 경우에는 입을 다물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이미 우세한 다수의 의견은 더욱 세를 키우고 열세인 소수 의견은 점차 힘을 잃어 격차가 벌어진다.

공무원인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집단의 지배적 가치관은 무엇인가? 길게 고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즉시 답이 나온다. ‘공직자는 청렴해야 한다’라는 명제가 바로 그것이다.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다양한 공직가치 중에서도 청렴에 가장 큰 무게를 두며, 청렴한 공직 기강 확립을 최우선의 과제로 여기는 이 사회는 청렴하지 못함을 배척한다.

‘저는 짜장면을 먹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쉽사리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것처럼, 청렴이 대세인 분위기 속에서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느낄 것이다. 공직 사회에 소속되고자 하는 한 부정부패를 표현할 자유 따위는 결코 존중받을 수 없다.

청렴이 공직 사회의 일상적 문화로 정착했음은 이미 자명한 사실이다. 그에 더해 꾸준히 행해지는 수많은 노력들은 청렴이 대세의 흐름이라는 여론을 고착화하고, 청렴을 향해 편중된 소용돌이를 가속화시킨다. 전 직원의 청렴 교육 이수 의무화 및 각 부서별 맞춤형 청렴 시책 추진, 공직자 개개인의 청렴관을 논하는 기고의 정기적 배포 등이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형성된 여론은 청렴이 곧 이 조직 전체의 일반적인 중론이자 통일된 가치관임을 입증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온갖 부도덕한 행위와 부정한 유혹이 조금씩 설 자리를 잃고 침묵을 지키게 만들 것이다. 당신이 만약 공직 사회에서 외면당하지 않길 원한다면 청렴의 나선 속에 함께 휘말려 순응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어 보인다.

20대 후반에 접어들어서야 시작한 첫 사회생활에 적응하며 우왕좌왕 지내다 보니, 잉크조차 채 마르지 않은 것 같았던 따끈한 신규 임용장을 받은 지도 어언 1년이 다 되었다 한다. 지난 1년간 나름 청렴한 마음가짐으로 성실히 공직 수행에 임해 왔다고 자부하지만, 돌이켜보면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뭇 생명이 기지개를 켜며 만물의 새 시작을 알리는 봄이 문턱까지 도달한 요즘이다. 나 역시도 계절의 변화를 핑계 삼아 청렴의 나선의 시작점, 그 소용돌이의 정 가운데에서 청렴의 가치를 퍼뜨리며 공직 사회의 반부패·청렴문화 선도에 앞장서겠노라 다짐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