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제주를 대표하는 명당터.. 수망리 의귀리공동목장진드기구제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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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제주를 대표하는 명당터.. 수망리 의귀리공동목장진드기구제시설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6.15 0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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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장 부근 일대는 조선중기 '헌마공신' 김만일(金萬鎰)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반득전(班得田)'이 있다.

수망리 의귀리공동목장진드기구제시설

 

위치 ;남원읍 수망리 산158-1번지 일대 의귀리공동목장 내
유형 ; 생산기술유적
시대 ; 대한민국

의귀리_공동목장진드기구제장
의귀리_공동목장진드기구제장 전경

 


남원읍 수망리 민오름 일대 330만㎡에 달하는 의귀리공동목장은 조선시대에 9소장과 김만일 개인목장, 그리고 산마장(녹산장)으로 이용되던 곳에 일제시기에 형성되어 현재에 이른다.

「공동목장관계철」(1943)에 의하면, 의귀리에는 2개의 공동목장이 존재했다. 제1목장은 1933년 11월10일에 설립된 것으로, 1943년 당시 조합원수는 133명이었다.

이 목장은 민악(민오름) 하단부산158번지 일대의 초지대를 목장조합에서 매입해 형성된 후,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제1목장 경계 내에 있었던 한남리 산85번지와 수망리 산158-2번지에는 여름철 더위를 피하기 위한 피서림, 한남리 산84번지 면유지에는 급수장이 있었다.

특히 수망리 산158-1번지에는 물을 모으기 위한 집수장과 목장을 관리했던 목감의 임시거처였던 감목사(監牧舍)가 있었으나, 현재는 집수장만 남아 있다.


공동목장 내 민악 남사면에 있는 집수장 부근 일대는 조선중기 '헌마공신' 김만일(金萬鎰)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반득전(班得田)'이 있다. 이곳은 제주를 대표하는 명당터로 알려졌으며, 현재 이 명당터에 의귀마을공동장이 위치하고 있다.


한남리 산84번지와 수망리 산117번지는 남원면 소유의 토지였다. 제2목장은 현재 물영아리오름 부근에 위치한 더클래식 골프장 인근에 위치했었다.

'진구술' 목장으로 불렸던 이 공동목장은 1936년 10월 9일에 설립되었으며, 이곳을 이용했던 조합원들은 52명이었다. 진구술 공동목장은 52명이 단체로 소유했으며, 해방 이후 개인에게 매각됐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 우수한 말을 사육하던 마장 역할을 맡아왔다. 특히 의귀리 목장은 의귀리에서 교래리까지 광대한 목장을 '산마장'으로 말사육의 중심 역할을 해왔는데 의귀리 출신 김만일이 운영한 사목장은 국영목장을 압도했을 정도로 번창하여 1만여마리의 말을 사육하며 국란이 있을 때마다 국가에 헌마했다.

김만일이 말을 사육했던 장소는 9소장과 인근의 산마장으로 추측되고 있다. 마을지에 따르면 해당 지역은 지역은 현재의 반데기왓(반득전), 민오름, 물영아리 일대로 보이며, 9소장에서 말을 방목하기 시작한 이후 번창하면서 효종 9년(1658년)에 설치된 산마장 지역으로 방목지를 넓혀간 것으로 보고 있다.

산마장은 현재의 남원읍(9소장), 표선면(10소장), 조천읍(2소장) 등의 한라산 중턱 위쪽 200여리에 걸쳐 해발 400m이상의 초지와 산림지대에 분포돼 있었다. 그 후 숙종과 영·정조 때에는 침장, 녹산장, 상장으로 개편됐고, 녹산장내에는 갑마장이 들어섰다.


지금도 이곳은 목장지대로 우마가 방목되고 있다. 의귀리에서 번성했던 말 사육은 1960년대를 정점으로 1970년대부터 농기계와 자동차의 등장으로 사양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주종을 이루는 가축은 소로 바뀌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집집마다 거의 소를 사육했다.

노동력 제공에서 육우로 소의 용도가 바뀌면서 체구가 큰 외국산 육우 품종도 도입, 거의 모든 소들이 고기량이 많은 교잡종으로 바뀌어 제주 전체가 육우를 사육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도 이들 품종 후손 일부가 사육된다.

의귀리공동목장의 주요 역사유적 및 지명으로는 진구슬목장과 경계를 이루는 중잣, 의귀마을 목장의 남쪽 경계인 하잣이 있다. 잣은 의귀 마을 목장 지역이 조선시대 산마장 지역으로 말을 방목하는 경계를 구분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말이나 소가 다른 지역으로 이탈하지 못하도록 울타리 역할을 했다.

목장내 구역을 구분하는 간장담은 현재 시멘트 기둥과 철조망을 이용하지만 예전에는 주민들을 동원해 담을 쌓았다. 마을 공동목장은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집집마다 기르던 소를 봄부터 가을까지 방목하던 중요한 공간이었다.


의귀마을공동목장내 중요한 자연식수원으로는 '물나는 이멩이'가 있다. 이곳은 목장 주변 유일한 샘물로서 매우 중요했다. 샘물은 목장이나 화전생활의 급수원으로 뿐만 아니라 매년 목장내에서 치러지는 백중제를 지내기 위해 쓰이는 정한수로 쓰이기도 했다.

제를 모시기 2~3일 전에는 일반 주민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성을 들인 후 이 물을 길어다가 제를 지냈다고 한다. 백중제를 지냈던 장소는 '장제동산'으로 그 위치는 현재 마을 공동묘지 뒤쪽 언덕이다.

10년 전까지 목초지였지만 가축사육두수가 줄면서 현재는 소나무가 무성한 산림지역으로 바뀌었다. 백중제는 마을목장에 사육농가를 중심으로 매년 음력 2월20일에 목장내에서 지내는 등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목장내 물 공급원으로 봉천수를 파기도 했다.

여름철 흐르는 물을 담아두었다가 소들이 먹을 수 있도록 민오름 동남쪽 등 목장내 3~4곳에 만들었다. 현재는 상수도 발달로 1곳만 활용되고 있다.(제민일보 150309)


마소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제주어로 부그리,부구리)는 마소 사육에 있어서 반드시 없애 주어야 할 기생충이다. 부그리는 봄에 알에서 깨어나면 풀잎을 따라 계속 올라가서 풀 끝에 매달려 있다가 지나가는 동물에게 살짝 옮겨간다. 그리고는 다시 위로 계속 올라간다.

더 올라갈 곳이 없으면 정착한다. 대체로 마소의 다리 틈이 그들의 가장 좋은 거처이다. 마소의 피를 빨아먹어 몸이 커지면 저절로 떨어진다. 이쯤이면 부그리의 몸은 크기와 모양이 마치 피마자 씨앗처럼 된다.


예전에는 철판으로 톱날처럼 만든 것을 둥글게 구부려 직접 긁어서 떼어 주기도 했고, 살충제인 DDT를 베헝겊주머니에 담아 소의 다리 틈에 톡톡 다독여 주듯이 두드려 분말이 소의 몸에 묻게 해서 구제했었다.

구제약에 물을 희석하여 헝겊에 희석된 구제약을 묻혀 문질러줌으로써 진드기를 직접 없앴었고, 그 후에는 구제약에 물을 희석하여 우마를 목욕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다, 분무기가 나온 후로는 구제약에 물을 타서 직접 살포하였다.


구제 시기는 초지 조성 전 5월초에 실시하였고, 초지조성 후에는 단오 이후 구제를 하거나, 여름 내내 한 달에 한 번 구제를 하기도 했다. 진드기 구제시에는 조합원을 동원하여 켓담을 쌓아 우마를 몰아들이는 데 쉽도록 했다. 즉 켓담은 필요할 때마다 쌓기도 하고 허물기도 하였다.


의귀리 공동목장에 있는 진드기구제장은 70년대 이후 행정지원 받아서 축조하였으며, 마소를 한 줄로 몰아서 구제약(약품은 옥스독스를 사용했다)이 희석되어 있는 물통을 통과하도록 만든 것이다. 한 마리씩 통과하면 자동으로 구제되는 방법이다.

시멘트로 벽 2개를 나란히 세워 마소가 지나갈 틈을 만들고 가운데는 깊게 해서 마소가 지나가면 약제를 희석시킨 물에 몸을 완전히 적셔서 마치 목욕시키듯이 소독을 하는 방식이다.

구제장 옆에는 빗물을 모아두는 물통이 설치되어 있다. 지붕까지 설치했는데 지붕이 왜 필요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생긴다. 한 달에 한 번 실시했다.
《작성 111016, 보완 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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