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100년 전, 마을과 자손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용흥리 방사탑(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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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100년 전, 마을과 자손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용흥리 방사탑(西)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6.21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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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리가 중엄리에 속하던 시절 신엄, 중엄, 구엄을 포함한 4개 리 모든 주민이 힘을 모아 작업

용흥리 방사탑(西)

 

위치 ; 용흥리 마을 서쪽 용흥4길 입구에서 약 40m 지점 상뒷머를 위. 소나무 사이
유형 ; 민속신앙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용흥리_방사탑

 


용흥리 마을 지형상으로, 동쪽은 용머룰동산과 제한이동산이, 남쪽으로는 망동산이, 북쪽으로는 창구터와 뒷동산이 감싸고 있는 형상이나 서쪽은 비어 있어(마을 주민은 '외각(바다 방향)이 발롸서'라고 표현하였다. 발룬다는 것은 비추어 보인다는 뜻),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못하다고 생각되어져 왔다. 그런 허함을 보하기(보충하여 채우기) 위하여 상뒷마루에 나무를 가꾸어 무성하게 하고, 또한 돌로 마을 보호탑을 쌓았고, 성담을 에둘러 쌓았다고 한다.

약 100년 전 마을 어르신들이 마을과 자손이 잘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풍수지리 지식에 따라 마을의 지형적 형태를 똑바르게 갖춰놓으려는 뜻이 담긴 일이었다. 용흥리가 중엄리에 속하던 시절 신엄, 중엄, 구엄을 포함한 4개 리 모든 주민이 힘을 모아서 작업했다고 한다.

돌탑은 좌,우에 웅탑과 자탑을 각각 하나씩, 모두 두 개를 만들었는데, 웅탑은 상뒷마루 입구에 돌을 쌓아올려 만들었고, 자탑은 웅탑이 있는 데서 약 100미터 동북쪽, 하용권씨 집 지은 자리에 돌을 쌓아 만들었다.

웅탑이 돌을 종모양으로 단순하게 쌓아올린 것과 달리, 자탑은, 웅탑과 비슷한 높이를 층계를 설치하면서 쌓아올렸다.

그 두 돌탑은 동시에 만들었으며, 이 때 성담도 아울러 쌓았다고 전한다. 맨 아래에는 1m 정도 되는 큰 돌을 사용했고 그 위로는 작은 돌로 쌓았다. 높이는 2m가 조금 못 된다. 이 탑은 웅탑이다.(참고 ; 용흥리운동장/마을카페)


방사림으로 심어 울창하던 소나무들은 2013년 재선충의 피해를 받아 7그루밖에 남지 않았다.
《작성 111110, 보완 1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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