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흔적 찾아 볼 수 없는..남원1리 금로포연대(멸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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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흔적 찾아 볼 수 없는..남원1리 금로포연대(멸실) 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7.30 0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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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진 소속으로 제주읍성에서 동쪽으로 195리, 정의현성에서 40리에 해당한다.

남원1리 금로포연대(멸실) 터

 

위치 ; 남원읍 남원1리 2482번지
시대 ; 조선시대
유형 : 방어유적, 통신시설

남원1리_금로포연대터(2490_8번지)

 

위미3리_금로포연대터 추정

 


남원리와 위미리 경계 지점이 되는 일주도로에서 해안 쪽으로 200m 정도 가면 연대가 있던 자리이다.

이 지역에서는 ‘연디벵디’로 불리고 있으나 1970년대 초기에 감귤원이 대대적으로 조성되면서 연대를 허물어 감귤원의 돌담으로 사용해버려 현재는 연대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제주의 방어유적)

문헌에 의하면 금로포연대는 당시 서귀진 소속으로 제주읍성에서는 동쪽으로 195리, 정의현성에서는 40리에 해당한다.

금로포연대에는 별장 6명, 봉군 12명이 근무했으며, 동→벌포연대(5.2km), 서→우미연대(2.3km)와 교신했다.


1760~1770년대에 간행된 탐라방영총람에 금로포(金露浦)연대, 정조년간에 간행된 제주병제봉대총록에는 금로포(金路浦)연대, 제주읍지에는 금로포(金露浦)연대, 1793년에 간행된 제주대정정의읍지에는 금록포(金祿浦)연대, 1842~1843년에 간행된 탐라지초본에는 금록포(金祿浦)연대, 1899년 간행된 정의군읍지에는 금로포(金露浦)연대라고 되어 있고 이 때 今廢라고 하였다.
《작성 120120, 보완 1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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