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안쪽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회곽도 갖춰..협재리 웃가름성(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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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안쪽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회곽도 갖춰..협재리 웃가름성(성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8.1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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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가을부터(혹은 1949년 봄부터) 한림면 전체 포함하는 성을 쌓았다고 한다.

협재리 웃가름성(성담)
 

위치 ; 한림읍 협재리 1817-1번지. 협재장로교회에서 동쪽으로 좁은 길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길 남쪽에 있는 밭의 경계
유형 ; 방어유적(성)
시대 ; 대한민국

 

협재리_웃가름성담

 

1949년 봄으로 접어들면서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 대령)가 설치되어 무장대와 주민을 분리시킨 후 토벌한다는 작전개념에 의거하여 모든 마을에 축성을 강화하였다.

한림읍(4․3 당시 한림면)은 다른 지역과 달리 마을별로 성을 두른 것이 아니고 당시 1948년 가을부터(혹은 1949년 봄부터) 한림면 전체 포함하는 성을 쌓았다고 한다. 면의 남쪽에 東西로 연결하는 성을 쌓은 것이다.

동쪽으로는 귀덕4리(현 신흥동)에서 시작하여 상대 명월, 월림, 월령리까지 거의 10km에 이르는 석성을 쌓았다. 협재리 웃가름성은 이 때 쌓은 성이다.

마을 끝집에서는 50~60m 정도의 거리에 있다. 한림면 전략촌 성은 폭 3m, 높이 5m로 가장 견고하고 거대하게 축성되었다. 그러나 성밖인 남쪽의 지대가 높아 방어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을 지키는 역할은 특공대대와 일반 민보단으로 나눠서 했는데, 특공대는 순찰을 돌고 민보단은 연락을 담당했다.

장성에는 안쪽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회곽도를 갖추었고 성 밖으로는 구덩이를 파서 해자를 만들어 가시덤불을 채워 넣었다.

그러나 1949년 1월 3일 무장대의 습격 때에는 가시덤불 위에 멍석을 깔고 성벽을 타 넘었다고 한다. 폭 3m, 높이 1.5~2m, 길이 70m 정도 남아 있다.

지금은 북쪽에서는 대체로 성을 확인할 수 있지만, 남쪽에서는 각종 잡초가 성 위를 덮고 있어 구별이 잘 안 된다.
《작성 1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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